-오, 지혜 어딨니
봄 되면 꽃보다 길이다. 언 땅 해토하면 곳곳 보도블록 빼두루막 올라온다. 신발코가 가장 먼저 알아챈다. 305호 할아버지 고무흡착 중풍환자용 지팡이가 거기 박혀 빠지지 않는다. 할아버지 도와드릴까요. 대답하지 않는다.
작년 가을 꼬마당단풍 세 그루 물들었을 때. 유난히 단풍 고왔을 때. 그 노인 보행은 그 정도가 아니었다. 지팡이 짚고 어디든 오갔다. 어느날 그가 단풍나무 밝게 물든 잎 아래 섰다. 근데 갑자기 지팡이 들어올렸다. 지팡이로 사정없이 잎들 후려쳤다. 잎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할아버지 왜 그러세요. 왜 나무를 치세요. 무슨 일 있으세요. 화난 일 있으면 바닥을 치세요. 바닥도 아프겠지만. 말려도 멈추지 않았다. 바닥에 잎들 쌓였다.
오늘 당신은 시든 비비추 틈을 쑤시고 있어 어디 있는 거야 당신은 마지막 푸른 과꽃에게 둥근 석조 새 물통의 웅덩이를 떠다니는 노란 잎에게 말하네
-마가릿 애트우드, ‘언젠가’
지팡이는 봄 되니 변했다. 마비된 왼쪽 다리 지탱하기 위해 지팡이 아래 고무가 달렸다.
봄 오면 길 본다. 그 노인 이제 보조보행기 밀며 간신히 한 발씩 옮겨 걷는다. 꼬마당단풍 나무는 싹이 난다. 원형 분수대를 둘러싼 길. 중세의 마을처럼 커다란 대리석으로 이뤄져 있다. 봄 오니 군데군데 깨져 있다. 유모차에서 내린 여자애. 바지 부분이 불룩한 게 아직 기저귀를 못 뗀 거 같다. 근데 말은 제법 잘한다.
분수대 돌며 걷다가 깨진 대리석 보고 멈춘다. 아빠 여기 깨졌다. 탕탕 윙 위잉. 아빠 다 고쳤다. 깨진 돌 만날 때마다 똑같이 한다. 아빠는 아이 뒤에서 그랬어. 잘했어. 지혜가 다 고쳤네. 우리 지혜가 다 고쳤네.
그 지혜라는 게 어딨는 거야 음악은 또 어디에 있고 분명 여기 어디 근처에 있을 뿐인데 뒤에서 노래하던 이들 더는 없어 이제 옅은 노란색으로 변장하고 속삭일 뿐 그들은 지팡이를 짚었고 저 멀리서 말하지 오, 예 지혜 제라늄에게 물어봐
-마가릿 애트우드, ‘언젠가’
분수대 조각 겨울 나니 조금 여윈 것 같다. 해쓱하다. 깨끗이 청소된 바닥. 철제 난간에 붙어있는 ‘감전주의, 수영금지’.
경고문에서 페인트 칠 엷어져 떨어진다. 바랭이풀 같다. 자전거 타는 애들두 없다. 보행보조기 의자에 간신히 주저앉은 노인은 이제 네 바퀴 사람이 되었다.
봄은 변장한 젊음을 하고 온다. 두세 살 여자애가 고쳐논 길. 깨진 대리석 앞에서 어김없이 멈추고 쪼글트고 앉아 그 ‘깨진’ 균열을 자세히 들여다보던 아이.
아빠, 깨졌다. 퉁탕퉁탕 윙윙. 내가 다 고쳤다. 아빠가 잘했네, 지혜. 할때마다 깨진 길 붙어보였다.
아버지의 마지막을 보았다. 호야킨 소로야의 바다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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