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개기월식 중
점점 그림자에 먹혀간다. 그 달 초랑하다 못해 날카롭다. 그런데 슬쩍밖에 못 봤다. 창 열 힘두 없다.
눈길 들어 보니 뭔가 걸려있긴 했다. 아끼던 옷걸이. ‘미성라사’라고 불도장 새긴 옷나무걸이.
라사는 비단 라羅, 비단 사纱. 달은 수십 년 전 그 옷걸이 같다. 거기 걸려있던 피륙이자 어떤 허물. 봄비단뱀의 것일까. 개기월식 중 슬슬 사라지는 형체.
다색판화보다 단색에칭에 눈 걸어두던 나날들. 눈길 한 번 던지게 해주실래요. 얼마예요. 얼마인가요. ça coûte? Combien ça coûte? 잠 안 오면 창 열고 불 켜진 집 세보곤 한다. 파리 토요일 농부 마켓. 눈길 끄는 잼과 식초 같은 물건 보며 하던 말. 콤비앙 사 꾸뜨? 불빛 향해 그 눈길 던질 때. 이 먼 말 알아들은 듯 스르륵 열리는 창도 있다. 커튼 뒤 흰 그림자. 가는 실 엮은 듯 아릉아릉하던 그림자. jeter un coup d'œil. 눈길 한 번 던져도 되나요.
앞으로 나는 프랑스어를 배울 것이다 그리고 제철 나물을 인공 무릎을 5백 살 팽나무를 선원들의 돌림노래와 매듭을
-한여진, ‘바람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고 사람은’
비단 라羅에는 눈 목目이 옆으로 누워 있다. 비단 사纱는 가는 실 멱纟과 적을 소少로 이루어진다. 가는 실 멱.
가끔 도서관 가는 엘베 타면 이런 안내 방영된다. 엘베 문은 얇은 줄을 인식 못합니다. 조심하세요. 혹시 뒤에 비단허물 같은 게 있나 괜히 뒤돌아보게 된다.
마르크 샤갈 흑백석판에서 본 농노. 혼자 있거나 타인과 만나 내 안의 농노가 불현듯 발현될 때. 나는 부끄러움으로 후끈하다. 왜 이렇게 작을까.
가는 실 흔들린다. 얇은 줄 말문에 낀다. 조각조각 부스러기 쌓인다. 창을 열 힘두 없다. 창문 윈도우는 바람의 눈이라는데. 수치감 환풍해낼 기운조차 사라진다.
그저 무력한 작은 조각 ‘까치또’. 이건 어디서 들은 말일까. 작은 파편이라는 이 말은 사랑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는데. 이 작은 파편들두 잘 껴안고 있으면 뭐가 될까.
그것들을 다 모으면 집을 지을 것이다 뜨끈한 방바닥에는 고구마와 토란을 숨겨놓을 것이다 그런데 할머니 삶은 어떻게 살아야 해, 물으면
-한여진, ‘바람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고 사람은’
저 달 나무옷걸이 너머 고산지에서 감자 캐고 물 길어오고 얼음 녹여 차 끓여 만년 설산 보며 뒤돌아 앉은 여자들. 그 불빛 새나는 창문 그림자는 그 여자들의 현시일까.
wind-ow. Ow는 눈, auga라고 한다. 시선이 지나가는 공간. 거기 흔들리는 작고 가는 멱실. 인지되지 못하는 얇은 줄. 눈길 한 번. 꼬옥 한 번만.
아주 바싹 찰싹 꽁꽁 붙들어야지
-한여진, ‘바람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고 사람은’
#한여진시인 #프랑스어 #wisewoman’s ru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