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골드야 용서해줘
삼월 두렵다. 두려워서 고개 들기 어렵다. 의무예요. 십자가의 길을 하세요. 상처를 보세요. 이웃을 돌보아요.
봄나물 무치다 거기서 십자가 본 여자 누굴까. 향신성 식물. 그럴수록 십자화 과 꽃 맺는다. 겨자, 냉이, 청경채. 갓. 네 개의 꽃잎 십자형 이룬다. 겨울 이긴 봄 채소 풀들.
그중 냉이는 *양치기의 지갑이라는데. 쌉싸름한 것이 죄의 속성을 닮은 것 같다. 잊고 잊던 혓바늘 깨우는 맛이랄까.
엄마는 휴게실 빨간 소파에 앉아 있어요. 제가 팔을 쓰다듬었는데, 팔이 차갑게 식어가는 효모 넣은 반죽처럼 촉감에 생기가 없는 듯 느껴져요.
-마렌 부스터, 상실의 고고학
심지어 도로 소화전에서 십자가 본 젬마 있다. 알마는 심지어 매일 뚝딱대는 도마에서 칼의 상처가 낸 십자가 본다.
헐거워진 서랍 손잡이. 그걸 조이려고 십자 드라이버 쓰다 흠칫한 클라라도 있다.
클라라는 요즘 맥 빠진다. 우리 엄마 요즘 부쩍 심해. 동작이 연속되지 않고 끊어져. 서랍 앞까지 가서 여는 동작 까먹고 팔 들고 몇 시간이고 있어.
깜짝 놀라서 엄마 뭐해. 왜 그러고 있어. 부르면 나를 때릴려고 해.
근데 참 이상해. 내가 중학교 가사 시간에 놓은 십자수는 기억해. 그걸 꺼내보려고 가서는 그 앞에서는 까맣게 잊어버려. 몇 시간이고 똑같은 동작으로 서 있는 거야. 그걸 아직도 가지고 있다는 게 사무치게 속상해.
말 붙이는 날 너 누구냐 너 악질이지. 막 때려. 이것봐. 여기 멍든 거. 때리다가도 엄마 이거 보려고 여기 온 거지. 십자수 보여주면 다시 옛날 엄마로 돌아가. 먹지도 자지도 않아. 너 음식에 독 탔지. 너 사기꾼이지. 정 떼고 곧 가실 것 같아.
이웃을 돌보아야 해요. 리타가 좀 드시라고 갖다드린 냉이무침 결국 이렇게 된 거다. 너 나 죽이려고 여기 독 섞은 거지. 그 쌉싸름한 맛이 결국.
이상해. 그게 뭐라구. 무수한 십자 모양 형상화한 해바라기에 불과한데. 실 슬슬 삭아내린 그 세월이 얼마야. 엄마가 이러다가 가실 날두 머지 않은 듯해.
성소마다 십자가 그 연혁, 공간, 빛의 방향. 여건에 따라 다 다르다. 그러나 대부분은 목재 십자가다. 산불에 살아남은 검게 탄 리끼다 소나무. 그걸로 만든 십자가일까. 이건 올려다보는 리타의 소망이 만든 십자가다. 그냥 나무다. 합성목일 수도 있다.
신도시에서 유일한 정발산. 거기 소화 헬기 떴다. 산불났던 때 타버린 소나무 언덕. 김연수 소설가가 거기 써붙였던 호소문 팻말. 이 나무는 상징적으로 꼭 보존해야 합니다. 벌목하지 마세요.
누군가 타버린 나무 엮어 그 둘레 울타리 친다. 분꽃 과꽃 맨드라미 가꾼다. 그 나무로 지게 만들고 시 한 편 코팅 해 걸어놓는다. 빗물도 그 글씨는 지우지 않았어. 아 정말 그랬어.
이듬해 벌목되지 않은 그 나무에서 신기하게 싹 돋았다. 이런 역사 있는 나무 십자가라면 얼마나 좋을까.
테레사는 뱃사공들 나룻배 묶을 때 쓰는 밧줄 십자가 본 적 있다. 행주 나루에서일까. 지금은 삭아 없어졌거나 증축 중 사라졌다는 십자가.
십자형. 십자가. 클라라 엄마 십자수. 갓 냉이 봄동배추 청경채. 십자화 과 식물들. 이 정도면 웃으며 십자가 증후군이라고 명명할 수도 있겠지. 봄날 질병 코드에 새로운 병명으로 분류해도 그래 맞다 하겠지.
이런 철제 스틸 십자가라면. 용기 내어 올랐던 고공농성장. 그들이 디뎠던 철판을 녹여 만든 십자가. 체공녀들의 분투 처소.
바다에 떠다니던 플라스틱 쓰레기들. 칫솔 어망 밧줄 비닐 천막. 그걸 주물로 떠서 만든 십자가라면. 그 아래 앉으면 지구 아프지 않을 텐데. 8시 소등 없어도 샛별 볼 텐데.
남미의 어느 나라. 자식 잃은 엄마들 집집 열쇠 녹여만든 추모비나 동상처럼.
절식하려고 국수를 소분해 놓는다. 몇 가닥 엇갈려 십자화 만든다. 십자를 만들어본다. 식탁 위에 펼쳐놓은 삼월 보속. 펼쳐진 책 한 페이지처럼.
추위와 사이 안 좋은 나에게 친구 수산나가 준 말린 메리골드 꽃차. 너무 색 고와 뜨거운 물 붓기 어렵다. 그때마다 죄 짓는 마음. 미안해 메리골드야. 날 용서해줘.
멕시코에서 금잔화라고 불리는 메리골드는 망자를 맞이할 때 뿌려두는 꽃. 금잔처럼 노란 꽃. 다른 세상에서 잠시 이 세상 방문하는 망자에게 길 밝혀주는 등불.
나무의 희생. 철의 죽음. 플라스틱의 부활. 밧줄의 대속. 메리골드의 공여.
소면에 냉이무침 한 젓가락 올려 먹는다. 그러다가 십자를 또 생각한다. 정말 삼월 십자가 강박증이네. 하지만 사실 이런 생각하는 내가 고맙다. 살피고 찾는 내가 좋다.
펼친 책 속 아이는 말한다. 치매 외할머니는 요양원 침대에서 씻는 거 먹는 거 거부하고 죽음 앞 놓여 있다.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게 금잔 같은 노란 눈 뜨고 있다.
국수는 뭐로 만드는 거예요. 저녁을 먹다가 포크로 찍어서 자기 얼굴 앞에 들고는 저에게 물었어요. 밀로. 타작하고 빻아서. 너희가 유치원에서 해본 것처럼 밀가루로. 제가 대답했어요.
-마렌 부스터, 상실의 고고학
치매 요양원에 엄마랑 면회 갔던 아이는 국수 포크로 돌돌 말아들고 엄마에게 묻는다.
그러면 국수는 ‘죽은’ 거네요. 아이 말에 저는 차마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어요
-마렌 부스터, 상실의 고고학
식탁 위 찬찬히 본다. 냉이의 죽음. 국수의 죽음. 메리골드의 죽음. 꽁치의 죽음. 감성돔의 죽음. 오오오오, 왜 이렇게 죽음 많아야 해.
상냥하기도 싫은 날의 죽음. 엄마 빨간 바지의 죽음. 삼월의 십자수. 십자화 과. 마음의 십자가.
상실의 고고학이라는 그럴싸한 제목과 달리 책의 원제는 ‘아빠 죽는다 엄마 역시Papa stirbt Mama auch’이다. 혼자 아이 키우며 부모 돌보는 여자의 마지막 진실은 이렇다.
치매 앓는 사람들에게는 우리가 아이에게 다가갈 수 있게 하는 상냥함, 격려, 꾸미지 않은 기쁨이 최고로 좋은 것이어요.
-마렌 부스터, 상실의 고고학
*shepherd's purse
*김종생 요셉, 삼척의 봄. 어렸을 때 금촌 황골, 수용소 초가집 이어 살던 두 번째 함석지붕집. 비 오면 음악 소리 났다. 그때부터 비를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다.
#사순절 #치매 #요양원 #웰다잉 #할머니로 살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