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뎀나무 일기

-빗금

by 시인 이문숙

1.

라디오에서 나오는 애면글면은 맛나 어린 아들 잃고 피요르드 빛나고 그렇다고 자책이 착하고 좋은 거 아니래 자책도 죄책도 읽다만 책의 한 페이지 읽은 뒤에는 닫아 그냥 잠 오면 자 그러면 켜논 라디오 저 노래 누가 끄지 라디오가 불쌍해 혼자서 지글지글


2에 빗금.

여보세요 저를 그만 꺼주세요 바깥 은행나무 알아들을까 그때 검은지똥바뀌 울까 너무 앞서가지 말래 누군가는 끄게 되어 있으니까 개똥지빠귀 울면 라디오 노래 절로 안 들려 지워져 S에 /


빗금 친 라디오 피요르드 빛나 고통은 지나가고 아름다움 안 남아 안에 빗금 남아


*라캉, 인간은 욕망과 무의식으로 분열된 주체, 빗금 친 주체이다.


2.

북극버들은 겨울 무려 10개월 동토에 살아 그럼 어떻게 살아 잎에 왁스 같은 걸 뿜는대 거울처럼 볕 반사해 몸 얼지 않게 자길 가꾼대 모양난대 그 버들 알아 어떻게 알아 작고 땅딸보지만 잘 살아 배려가 다 좋은 건 아니래 본인에게도 나쁘지만 상대방에게도 해롭대 잘해주면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대 받은 사람은 어떻게 갚나 근심 앞선대 여름 두 달로 겨울 열 달 견딘 그 버들만큼만 하래 영화 파벨만스 파벨만은 놀림감 베이글만 아이스크림이 갈매기 똥이래


3.

을지로 3가역 내린다 뒤따라 내린 여자 은빛 알루미늄 여행가방 왼쪽 발꿈치 친다 그 여자 가버린다 어떻게 사과두 안하구 가요 이렇게 끊어질 듯 아픈데 이미 친 걸 어쩌라구요 그 여자 제 갈 길 간다 또르륵 바퀴는 멈추지 않는다 충실하다


4.

새장골은 새장 있던 마을 아니다 보호수 느티나무가 두 그루 있다 새장은 사정의 와전 활쏘기 했던 곳 많은 사람들의 말이 지명을 만든다 노점 14 연옥은 그곳에서 마늘 사면 마늘 갈아준다


5.

녹차 향기 보성 쪽파 3000원 지금부터 3000 3에 빗금 2000에 팝니다 여기 임연수 제 대학교 첫사랑입니다 지금부터 연수야 미안해 두 마리 5000 5에 빗금 4 4000원에 팝니다


6.

전봇대 아래 늘 밤 까는 할머니 밤의 라디오 아니다 어린 아들 잃은 그 노래 아니다 검은 봉지에 수북한 밤 손톱 속 반달 없다 칼 하나 밤 한 봉지


#상담일기 #심리상담 #욕망과무의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