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흔들리지 않는 육아는 가능한가요?

by 유혜정

흔들리지 않는 육아는 가능한 걸까요.
지금, 흔들리지 않고 육아를 하고 계신가요.


나는 부모가 되기 전까지
‘흔들린다’는 감정이
이렇게 자주 찾아올 거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아이를 낳고
육아를 시작한 순간부터
나는 끊임없이 선택해야 했다.


무엇을 먹일지,
어떻게 재울지,
언제부터 책을 보여줄지,
어떤 놀이를 해야 할지.


그리고 그 선택들 옆에는
언제나
수많은 교육 이름들이 함께 놓여 있었다.


몬테소리,
발도르프,
프뢰벨,
하브루타,
요즘은 바깥놀이까지.


조금만 검색해도
아이에게 좋다는 방법은
끝없이 쏟아졌다.


문제는
그중 어느 하나도
완전히 틀렸다고 말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모두 옳아 보였고,

그래서 더 불안해졌다.


자연스럽게
같은 질문을 반복하게 되었다.


이 방식이
우리 아이에게 맞을까.
지금 내가 하는 선택은
괜찮은 걸까.


쏟아져 나오는 육아서와
스터디, 강의를
모두 따라가기에는
시간도, 체력도, 여유도 부족했다.


육아법을 공부하기에도
아이와 함께해야 할 일은
너무 많았다.


그림책도 같이 읽어야 했고,
놀이터와 키즈카페도 가야 했고,
오감놀이와 각종 체험 활동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하루는
언제나 빠르게 지나갔고,
나는 늘
무언가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 같은
기분으로 하루를 마쳤다.
아이가 잠든 뒤에야
그날의 선택들을
하나씩 떠올리면서.


불안한 마음에
강박적으로 공부할수록
아이에게 기대하는 것도,
요구하는 것도
조금씩 늘어났다.


발달 지표에서
하나라도 늦어 보이면
괜히 마음이 급해졌고,
유튜브를 켜고
답을 찾기 시작했다.


그때는 몰랐다.
그 불안이
아이의 상태에서 온 게 아니라,
기준 없이 선택하고 있던
내 마음에서
나오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렇다.
과거의 내 모습이다.


여기에 더해
주변의 말들은
마음을 더 흔들어 놓았다.


“아직 어린데
왜 벌써 사교육을 시키냐.”
“너무 앞서가는 거 아니냐.”


그 말들이
틀렸다고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무시할 수도 없었다.


갈피를 잡지 못한 상태에서
이 말들은
충분히 부담이 되었다.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과는 별개로
육아를 하며
내 자존감은
조금씩 낮아졌고,
마음은 자주 흔들렸다.


배울 만큼 배우고,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고 있음에도
아이의 일 앞에서는
방향을 잃은 사람처럼
느껴졌다.


전문가에게 물으면
답은 늘 비슷했다.


“아이마다 차이가 있어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말은
선택의 순간마다
나를 다시
혼자로 돌려보냈다.


결국 다시 돌아오게 된 사실은
하나였다.


내 아이에 대해
가장 오래,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은
부모인 나라는 것.
그리고

그 기준을 세울 책임 역시
결국
부모인 나에게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 글은
정답을 말하기 위한 글이 아니다.


다만
흔들리는 순간에도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기준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이야기의 시작이다.


이후의 글들에서는
내가 어떤 선택 앞에서 흔들렸고,
어디로 돌아왔는지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적어보려 한다.


선택 앞에서 잠시 멈췄을 때,
다시 돌아올 자리가
되어줄 수 있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