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악몽과도 같았던
눈 앞이 온통 붉다. 코에는 피비린내. 머리가 웅웅 울린다. 다리를 지지하던 부목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제비는 직감했다. 이것이 이 생의 마지막이다.
억울하다.
인간의 손에 붙들려 다리의 자유를 잃고, 뒤늦게 집에 돌아오니 뱀이 새끼를 물어가고 있었다.
억울하다.
어린 새끼들은 며칠 뒤면 날아갈 터였다.
억울하다.
부러진 다리 덕분에 무기를 하나 잃었다. 힘을 잃은 발은 뱀의 눈조차 파낼 수 없었다.
억울하다.
억울하다.
억울하다.
슬프다…….
눈 앞에 붉은 빛. 이건 피로 감춰진 햇빛일까.
제비는 느리게 눈을 감았다 뜬다.
모르겠다. 얼마 남지 않은 숨. 몽롱한 머리. 가슴에서 차오르는 슬픔과 지독한 고통이 머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뱀, 아니다. 거대하다. 구렁이.
그것이 나타났을 때 제비는 제 목숨이 어디서 끝날 것인지 알았다. 눈을 감는다. 슬프다. 내 새끼들. 가여운 어린 것들. 그것들을 지키지 못 했다. 약해진 몸뚱이가 먹이가 되는 것보다도 그것이 억울했다.
- 제비야.
귓가를 울리는 소리는 의미로서 머릿속에 전달된다.
제비는 다시 눈을 뜬다.
저를 부른 이를. 눈에 담는다.
붉다.
붉은 눈.
불길하게 빛나는 그것의 눈과 마주한다. 싸늘해가는 몸에 긴장이 몰려온다.
위험하다.
본능이 말하고 있었다.
- 제비야. 네 억울함을 보았다.
- 제비야. 다시 한 번 살아보지 않겠느냐.
- 제비야. 새끼들을 다시 보고 싶지 않으냐.
제비야. 제비야.
한꺼번에 들려오는 목소리는 의미가 다 달랐다. 제비는 그 뜻을 모두 알아들었다.
뱀에게 원수를 갚을 수 있는 힘을 주마.
살아서 새끼들을 다시 만나게 해주마.
못된 인간이 죄값을 치르는 모습을 보여주마.
고통 속에서 제비는 몸부림쳤다.
몸의 고통, 정신의 고통. 모든 것이 고통이다.
당신 말이 맞소. 나는 그 모두를 원하오. 세상에 모든 것을 갚아주리다.
아픔에 떠밀린 속마음을 구렁이가 예리하게 읽어냈다.
- 그래야지.
흐린 시야에 언뜻, 구렁이가 웃는 것을 본 것 같았다.
- 네게 힘을 빌려주마.
그리고 제비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
- 눈을 떠라, 제비야.
제비는 눈을 떴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자연스럽게 일으킨 몸은 제비의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위화감이 없었다.
제비는 알았다. 손발을 어떻게 움직이는지, 어깨를 타고 떨어지는 머리칼을 어떻게 정리해야하는지 알고 있었다. 알 수 있었다. 영문 모를 일이었다.
눈을 깜빡여본다. 익숙한 감각이다. 코를 찡긋거린다. 낯선 감각이다. 입을 벌렸다가 오무린다. 어색하다. 그런데도.
이것이 제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구렁이는 제비가 제 몸을 살피는 것을 말 없이 지켜보았다. 제비는 구렁이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았다. 두렵기만 하던 그것의 눈빛이 지금은 무섭지 않았다. 이것 역시, 영문 모를 일이었다.
마침내 제비가 고개를 돌려 구렁이를 바라본다. 검은 눈이 구렁이와 마주치자 잠시 붉게 빛난다. 번뜩 지나치는 붉은 시야에 제비는 눈을 뜨기 직전까지 느껴졌던 고통을 떠올렸다. 통증이 생생하게 돌아오는 느낌에 몸서리친다.
- 느꼈느냐.
"이게 무엇입니까."
제비가 말했다. 제 입에서 나오는 인간의 언어가 어색하고 동시에 익숙했다. 어떤 말씨를 써야할지,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자연스럽게 와닿았다.
- 너를 위해 남겨둔 고통이다.
구렁이가 낮게 웃었다.
- 네 목적을 잊고 싶지 않을 때 유용할 것이다.
그것이 웃는다. 제비는 어깨를 움츠린다. 어쩐지 소름이 끼쳤다.
"내 목적?"
제비는 중얼거렸다. 잠시 백지가 되었던 머릿속에 문득 복수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복수."
- 새끼들과 너의 삶을 빼앗은 것들에 대한 복수지.
제비는 떠올렸다.
인간의 손에 어거지로 붙들렸을 때의 두려움. 억지로 다리가 부러졌을 때의 찌릿한 고통. 원망. 이 이상 어떤 일을 당해도 달아날 수 없으리라는 절망. 퉁퉁한 손이 제 다리를 매어줄 때의 어리둥절함. 약의 쓰라림.
- 애초에 네가 늦지 않았더라면 새끼들은 무사했을 것이다.
새끼들의 비명같은 울음소리. 어떤 새끼는 이미 목이 꺾여 소리조차 내지 못 했다. 진투 중 뱀이 내팽개친 새끼의 파편은 붉었다.
원망스럽다.
저주한다.
돌려받겠다.
제비의 눈이 붉게 타올랐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뱀의 이빨에 꿰뚫렸던 머리가 지끈거렸다. 하이얀 손으로 검은 머리털을 해집는다. 으으, 하는 신음이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왔다.
"돌려줘."
제비가 말했다.
- 돌려주마.
구렁이가 답했다.
"내 새끼들."
제비는.
- 너의 삶을.
구렁이를.
"돌려줘."
- 돌려주마.
바라본다.
눈이 붉었다.
- 기억 났느냐.
구렁이의 목소리가 연수를 깨웠다. 이를 악물며 고통을 참는 연수의 눈이 붉었다.
"기억 났다."
연수가 답했다.
- 새끼들을 보고 싶으냐.
"……몰라 묻느냐."
연수의 목소리가 떨렸다. 움켜쥔 주먹. 붉은 빛이 일렁인다. 그 모습을 본 구렁이가 고개를 주억인다.
- 준비가 되었구나.
- 그럼 알려주마. 새끼들을 만날 방법을.
연수는 아득히 눈을 감는다. 가야할 길이 멀었다.
한 시진 남짓 지나서 돌아온 연수를 반기는 이는 없었다. 남아있는 하인들은 연수를 피했고, 놀부는 앓다가 잠들어 있었다. 연수는 느릿느릿 놀부의 옆에 앉았다.
놀부는 한창 때의 사내다. 몸은 투실하고 손은 투박했다. 얼굴에는 심술이 덕지덕지 묻었다. 젊음으로 가릴 수 없는 못남이 곳곳에 도사렸다.
연수는 놀부를 내려다본다. 언제나처럼 고요한 시선이었다.
내리 한 달이었다. 하루 중 떨어져있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다. 처음에는 연수가 적극적으로 놀부의 곁을 찾았으나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놀부가 매달려왔다.
역겨운 이였다. 색을 탐하고 욕심이 많고 게을렀다. 가까이 가면 늘 진득한 살냄새가 났다. 저만 아는 이기심에 인상을 찌푸리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연수는 조심스럽게 그의 머리를 쓸어넘겼다.
완전히 미워할 수가 없다.
나긋함은 지어낼 수 있었다. 혐오감은 감출 수 있었다. 증오와 원망은 눌러야 했다. 때로 느끼는 짜증은 드러내도 괜찮았다. 허나.
연수는 가볍게 한숨을 삼킨다. 슬픈 눈은 검었다. 놀부의 머리를 쓸던 손을 거두어 가슴 앞에 모았다. 후. 길게 숨을 내어쉰다.
다른 모든 감정을 가눌 수 있었다. 그러나 동정은 어찌해야 할까. 알 수 없었다.
어리석은 가슴을 두드리면 이 마음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죽음의 고통과 공포를 되살리면 이 마음을 짓누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연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