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
연수는 심술궂게 웃는 놀부를 조용히 바라본다. 놀부는 연수가 침묵하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옹심과 흥부를 흉 보느라 즐거웠다. 연수는 그런 놀부를 보며 말도 안 되는 기시감에 휩싸인다. 어미가 얼마나 고생했건 신경쓰지 않고 먹이를 받아 먹는 새끼들. 저들끼리 어떻게든 경쟁해서 조금이라도 더 먹겠다고 애쓰는 그 어린 것들의 입이, 자꾸만 떠올라서.
욕심이 많다느니 심술이니 하는 것들은 인간적인 개념이다. 짐승들 사이에서도 분명 못된 것들은 있었지만 그것으로 그것을 정의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그저 그럴 뿐이고 상대하기 싫으니 피하는 것이다. 때로는 영영 가기도 하지만 때로는 어울리다보면 잊히는 그런 것이었다.
인간은 달랐다. 욕심이 많으면 욕심이 많은 대로, 심술궂으면 심술궂은 대로 낙인이 찍힌다. 놀부는 심술궂었고, 어리석었고, 욕심쟁이였기에 그것이 이름이 되었다. 마을에서, 하인들 사이에서 놀부의 이름은 놀부가 아니었다. 몹쓸 욕심쟁이 대감. 성질 고약한 양반. 그런 것이다. 그것이 이름이 된다.
이름이란 것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그것은 기억을 담고 있다. 현재를 정의하고, 삶을 결정하고, 이내는 미래가 된다. 연수가 연수가 된 이후로 제비로 살아갈 수 없게 된 것처럼 놀부에겐 제 이름에 걸맞는 삶이 있었다.
그렇게 살아왔다. 그렇게 살아가야 했다. 그렇게 살게 될 것이었다.
연수는 입술을 오므리고 눈을 내리깐다. 생각에 잠긴다. 놀부는 그런 연수의 기색도 모르고 자기 이야기에 바쁠 따름이다.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어차피 새끼들은 어미의 동향 같은 것에는 크게 관심이 없으므로.
구렁이는 말했다.
동짓날 밤 놀부를 자신에게 데려오라.
연수는 직감했다.
이것이 놀부를 잡아먹을 작정이구나.
제비이기에 알 수 있었다. 구렁이는 알을 노리는 뱀 같은 모양을 취하고 있었다. 몇 번이고 보았기에 익숙했고, 몇 번이고 당했기에 전율했다. 그러나 덤벼들지 못한 것은,
네 새끼들을 보게 해주마.
약속 때문이었다.
연수도 알았다. 구렁이는 신묘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제비를 인간으로 만들 수 있는 힘으로 새끼 제비 영혼 하나 건져오지 못 할까. 무슨 수를 쓰는지는 몰라도 방법이 있을 것이었다.
다만,
구렁이의 힘은 불길했다.
때때로 덮쳐오는 죽음의 고통과 공포가 말했고, 마주칠 때마다 일렁이는 구렁이의 붉은 눈이 알려주었다. 저것의 힘은 분명 무언가 무시무시한 것이다. 단순한 호의로 제비를 돕는 게 아니다. 구렁이가 빌려준 인간의 지혜가 아니라도 알 수 있었다.
놀부는 한참을 홀로 떠들다 다시 잠에 들었다. 오랜만에 일어나 떠들었더니 도무지 기운이 없다며 방문 밖으로는 고개도 내밀지 않았다. 매번 이런 식이었다. 연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데 놀부는 혼자서 말이 많았다. 새끼들도 이렇지는 않은데.
연수는 잠든 놀부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새끼들은 바라는 게 있을 때면 어미를 보고 짹짹거렸으나 어미가 멀리 가면 저들끼리 엎치락 뒤치락하느라 바빴다. 제비가 어릴 적에 그랬듯이 함께 노는 것이다.
연수가 본 놀부는 늘 혼자였다. 겉보기는 연수에게 말을 거는 듯하였으나 연수의 말을 듣지도 거동을 살피지도 않았다. 연수도 처음에는 이러니 저러니 대꾸를 해보았으나 이제와서는 포기한지 오래다. 무슨 말에든 그렇구나 대꾸하면 놀부는 혼자서 지지배배 떠들었다.
지지배배.
지지배배.
이것이 새끼들과 다를 바가 무언가.
연수는 한숨을 내쉰다. 무거운 한숨이었다.
다음날. 드디어 놀부가 방을 나섰다.
하인들은 성격 고약한 주인이 돌아오자 에그머니나 질겁을 했다. 놀부는 겸인을 비롯해 집안의 중요한 하인들 몇이 사라진 것을 알았으나 크게 낙심하진 않았다.
"멍청한 놈들. 세경이나 떼먹혀라."
그게 다였다.
놀부는 한나절 내내 집안을 뒤지며 하인들을 닦달했다. 요란한 오전이었다.
집 구석구석을 들쑤신 끝에 늦은 점심을 거나하게 먹은 놀부가 온 집안 식구들을 불러모았다. 주방 하녀들이 겨우 엉덩이를 붙이고 앉은지 한 식경도 지나지 않은 때였다.
"다 모였느냐."
뒷짐을 지고 어깨를 쭉 편 놀부가 말했다. 하인들은 불안한 눈빛으로 놀부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이게 전부입니다요."
놀부는 눈살을 찌푸린다. 옹심이 집을 나가기 전에 비해 인원이 확 줄어든 게 연수 눈에도 보였다. 놀부는 거기에 별달리 말을 붙이지는 않았다.
"오늘부터 연수가 이 집의 안주인이다."
그렇게 말하며 연수를 끌어당겨 앞에 세웠을 뿐이다.
연수는 조금 움찔했으나 내색하진 않았다. 술렁인 것은 하인들이었다. 연수에게 대놓고 이런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증말 홀린 거여?"
"망신도 이런 망신이 다 있나."
"이야, 드디어 망하는구나."
놀부가 버럭 소리를 지른다.
"이놈들 말이 많다!"
하인들이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무어라 더 말했다간 불호령이 내릴 터였다.
"입 다물고 가서 일이나 해. 거기!"
흩어지려는 하인들 사이에서 놀부가 한 하녀를 콕 집었다.
"안채를 청소하거라. 연수를 안내해."
휘적이는 손짓을 따라 하녀, 점순이 허리를 굽실거렸다.
하인들이 모두 흩어지고 점순이 안채로 뛰어갔다. 놀부는 그들의 바쁜 걸음을 뒷짐을 진 채 끝까지 지켜본다. 연수는 말 없이 곁을 지키다가 하인들이 모두 흩어져 무리로 보이지 않게 되자 놀부를 향해 무릎을 굽혔다.
"소녀도 이만 들어가보겠습니다."
"어딜 가느냐?"
"짐을 챙겨야지요."
"그런 건 아랫것 시키면 될 것을."
놀부는 혀를 차면서도 굳이 연수를 말리진 않았다. 연수는 총총 별채로 향했다. 놀부를 간호한답시고 한동안 사랑채에서 머무느라 며칠만에 들르는 곳이었다.
별채에 가까워질수록 인기척은 줄어든다. 하인이 줄어들어 자주 쓰지 않는 장소까지 돌볼 손이 모자란 탓이었다. 놀부를 찾는 손님이 드무니 별채도 자연 쓰이는 일이 드물었다.
연수가 처음 이 집에 들었을 때도 그랬다. 별채의 꼴을 본 놀부는 연수를 이끌고 곧장 안채로 향했다.
그 날 밤 옹심의 분노를 연수는 생생히 기억한다.
"야밤에 쳐들어온 것만도 기가 막힌데 뭐라고? 저년을 안채에 들이겠다고?"
옹심이 발을 탕탕 굴렀다.
"안 돼.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엔 못 들여보내."
옹심은 아예 놀부를 막아섰다. 씩씩거리는 숨소리가 마치 잔뜩 약이 오른 멧돼지 같다.
"어허, 불쌍한 사람 좀 돕자는데."
"입에 침이라도 못 바르면 귀엽기나 하지. 네놈이 어디 그럴 놈이냐!"
옹심이 빽 소리를 질렀다. 제비는 그 말이 백번 맞다며 속으로 주억거렸다. 동조하는 티를 낼 수는 없어 영혼으로만 하는 끄덕임이었으나 진심만은 가득했다.
"내가 뭐 어떻단 게야!"
놀부도 버럭 성을 낸다.
"네가 거지를 도와? 지나가던 개도 안 믿어."
옹심이 비웃었다. 놀부는 입을 쩍 벌렸다. 무어라 받아치지 못하고 입만 벌리고 있는 놀부를 향해 옹심이 코웃음을 쳤다.
"어디서 거지년을 주워왔는지 모르겠다만 이곳은 내 집이다. 손님도 아니고 손놈을 안채에 들일 순 없지."
놀부는 입술을 뻐끔거렸다. 입맛을 다시고, 다시 뻐끔거린다. 그러더니 곧 인상을 팍 썼다.
"하늘같은 서방님에게 못 하는 말이 없구나."
옹심이 생긋 웃었다.
"서방님. 저 거지년을 당장 내쫓을깝쇼?"
씁, 하고 바람 새는 소리를 낸 놀부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럼 사랑채로 데려가지."
놀부의 말에 옹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양반이 미쳤나?"
그러더니 놀부의 뺨을 쳤다.
"이, 이 미친 여편네!"
놀부가 괴성을 냈다.
"아이고, 꿈은 아니네 그려?"
황당하다는 듯 이번에는 옹심이 입을 쩍 벌린다. 양쪽 다 어이가 없어 입을 쩍 벌린 채로 정적이 흘렀다.
제비는 이 같은 사태를 뒤에서 관망하며 생각했더랬다.
인간은 짐승과 다를 바가 없구나.
이들이 하고 있는 것이 집안 내 위세 싸움임을 구렁이의 힘이 알려준다. 여느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세력 싸움이었다.
인두껍이란 발톱을 세우는 대신 말을 앞세우는 것이구나.
제비는 그렇게 납득했다.
인간의 무기가 말이라면 제비가 해야하는 것도 말이었다. 제비는 아직도 안채에 들이지 못 하면 사랑채로 데려가겠다는 놀부와 안채도 사랑채도 안 된다는 옹심 사이에 슬쩍 끼어들었다.
"두 분 전정하시지요."
옹심이 매섭게 눈을 흘긴다.
"거지년이 어딜 끼어들어."
놀부가 버럭댄다.
"누가 거지년이냐, 이 여편네야!"
"거지년을 거지년이라고 하지 뭐라 하니!"
제비는 웃는다.
"먼저 인사드리겠습니다, 마님."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소녀, 연수라 하옵니다."
깊이 허리를 숙였다.
결국 어찌저찌 들게 된 곳은 별채였다. 연수의 중재 아닌 중재로 조금 진정한 두 사람은 극적으로 별채를 청소해 그곳에 연수를 들이기로 합의했다. 아닌 밤중에 불려나온 하인들만 고생하는 꼴이 되었으나 놀부와 옹심은 조금도 거리끼는 기색이 없었다.
연수는 그렇게 첫날부터 하인들의 눈총을 받게 되었다. 그 후로도 매사 놀부와 옹심, 연수 사이에 끼어 고생하는 건 하인들이었으니 좋게 보일 방도가 없었다. 그러니 별채로 향하는 연수의 뒤에서 수군거리는 목소리가 큰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설마 저걸 마님이라고 불러야하는 거야?"
"에휴. 마님이 집에 안 계신다고 거기까지 할까."
"모르는 일이지. 보통 미친 게 아니야."
연수는 웃지도 않고 별채로 들어선다. 미소는 연수의 무기다. 아무 때나 드러내기엔 아까운 노릇이었다.
연수는 별채의 침실에 들어섰다.
방을 뒤적인다. 어딘가에 뒀을 텐데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귀하게 보관했으니 깊은 곳에 있을 터인데 어디로 갔을까. 온 방안을 돌아다닌다. 어디에 뒀지. 어디에 두었더라.
입술이 말랐다. 별 것 아니지만 잃어버리면 곤란했다.
잠시 잊고 있었다. 거처를 옮긴다는 소리에 겨우 기억이 났다.
연수는 잠시 주저 앉는다. 곰곰 생각에 잠긴다. 분명 놀부에게서 얻어낸 첫번째 선물인 예쁜 장식함에 잘 넣어두었다. 농에 숨기는 것은 너무 뻔하여 일부러 두지 않았다. 누가 악의라도 품고 뒤지면 금새 들킬 곳이니까. 그럼 어디였을까.
생각한다.
퍼뜩 뇌리를 스치는 그림이 있다. 연수는 벌떡 일어났다.
방 한 구석, 화분 아래 작은 나무 상자가 있다. 연수가 별채에 처음 들었을 때부터 있었다. 화분 뒤에 대충 놓여있는 것을 방치해 두었다가 써먹었다. 장식으로 기능한지 오래라 잊고 있었다. 연수는 화분을 치우고 상자를 연다. 비단으로 만든 장식함이 그 안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