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리는 손으로 장식함을 집어든다. 천천히 장식함이 열린다.
비단으로 만든 쿠션 위에 놓인 것은 작은 부스러기. 새끼 새가 깨고 나온 알껍질의 조각이었다. 너무도 하찮은 것이 매끄러운 비단 위에 귀하게 모셔져 있다.
연수는 손가락 끝으로 그것을 살며시 건드린다. 이제는 없는 어린 것의 흔적이다. 연수의 얼굴이 아프게 일그러진다. 손을 뗀다. 이미 깨어져버린 알껍질은 손가락에 조금만 힘을 줘도 바스라지겠지만, 날카로운 모서리는 이미 가슴을 크게 베어낸 후였다.
장식함을 닫은 연수가 눈을 질끈 감았다. 크게 숨을 들이키고 천천히 내어쉰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들도록 벅찬 슬픔이 서서히 가라앉는다.
그래.
너희를 보기 위해서라면 무엇을 못할까.
연수는 웃는다. 공허한 웃음이었다.
*
연수의 손은 곱다. 희고 투명한 피부가 물기 한 번 머금어본 적 없는 듯 매끄러웠다. 이는 얼굴도 마찬가지였다. 아기마냥 잡티 하나 없다. 연수는 거울에 비친 제 낯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시비는 모두 물렸다. 제 몸을 단장하는 일에 타자가 끼어드는 것 자체가 어색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연수의 시중을 반기는 하인은 없었다.
안채로 옮기고 나서는 전담 하녀가 붙었다. 별채 청소와 연수의 시중을 도맡고 있던 점순이였다. 손님도 별로 없는 별채를 홀로 떠맡아 고생하는 것을 보아 평탄한 생활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연수는 생각했다.
점순은 곁에 두기 나쁘지 않은 이였다. 말이 많지 않아 조용히 시간을 보내기 좋았고, 고집을 부리는 일도 없어 물러나라 명하면 군말없이 물러났다. 단장할 때 도움을 주는 것 외에는 데면데면한 사이였으나 그게 편했다.
거울을 본다. 인간 기준에선 어여쁘겠지만 연수에게는 그저 인간의 얼굴이다. 연수는 제비였을 때 자신의 모습이 어땠나 돌이켜본다. 떠오르지 않는다. 제비였을 때 자신의 모습을 본 것은 물을 마실 때 뿐이었는데, 일렁이는 표면에 상이 제대로 떠오르지 않았을 뿐더러 주변을 경계하느라 이렇게 태평하게 감상할 새는 없었다.
연수는 대신 제 발톱과 날개를 떠올린다. 하늘을 날기에 적합한 커다란 날개, 단단한 발톱이 있는 발. 제가 가진 것에 특별한 애착을 가진 적 없으나 지금 돌이키면 그보다 귀한 게 없었다.
이따금 이렇게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때면 인간의 삶이 부러워질 때가 있었다. 제비의 삶은 긴장의 연속이라서 자기만의 시간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허나 그것도 잠시.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하늘이 그리워지고 만다. 힘껏 먹이를 움켜쥘 때의 감각도, 성공한 사냥의 짜릿함도. 제 몸의 강인함을 체감할 수 있는 그 순간들이 그립다.
아무리 유약한 지금의 몸이라도 조그만 제비 정도는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거대하고 발톱 대신 갖가지 무기를 갖추고 있으니까. 그럼에도 연수는 인간의 몸보다는 제비의 몸에서 힘을 느꼈다.
온 몸에 넘치던 활기. 그것을 전력으로 쏟는 생활. 피곤하지만 상쾌했다.
그립나?
그립다. 그리웠다.
돌아가고 싶다.
그 간절한 바람이 연수를 인간에게서 유리시켰다. 종종 곁에 있는 점순에게도 항시 붙어있는 놀부에게도 마음을 터놓지 못 했다.
제비로 돌아가고 싶었으니까. 이 일만 끝나면 돌아갈 수 있을 테니까.
허나.
어느샌가 조금씩 마음을 적셔온다.
놀부의 애틋한 손길이. 점순의 안쓰러워하는 눈빛이.
연수는 눈을 감았다. 세상이 까맣다.
*
복수.
그것은 어쩌면 가장 빠른 자멸의 길일지도 모른다.
너는 나를 내려다보았고, 명령했고, 끝내는, 그래. 끝내는.
아아, 이 무슨 비극인가. 나는 대체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
*
연수의 두 눈이 붉었다.
붉은 피.
뚝뚝 떨어진다.
너희를 잊지 않으리라. 너희의 원한을 갚으리라. 모든 것을 원래대로 되돌리리라.
아냐, 대체 무엇을 위해서?
결국 돌아오는 것은 무엇?
혼란스럽다. 어지럽다. 아아, 내가 서있는 곳은 대체 어디기에 이토록 어려운가.
눈을 감는다.
붉은 시야가 사라지고 검은 어둠이 찾아온다. 평화다. 연수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진다. 맑고 투명한 슬픔. 그래, 그것이었다. 너희를 그리는 마음. 그것이 내가 원하던 것이다.
아이야, 나의 아이들아.
이 어미를 그리워하고 있느냐.
나는 너희가 그리워 밤에는 잠들지 못 하고 낮에는 눈을 뜨지 못하니.
그립고 그립도다.
너희가 주는 사랑이, 너희에게 주던 사랑이.
하나는 끊기고 하나는 흘러넘쳐 어딘가로 흐르고 있구나.
이 마음은 어디로 갈까.
나의 아이들아.
어미는 여기 있단다.
*
연수는 놀부를 내려다본다. 가엽고 가여운 이. 아직도 어린 새끼마냥 어미를 찾는다. 탐욕에 물든 손이 먹이를 찾아 헤매는 것으로 보이기 시작한 그때부터 연수는 놀부를 가여이 여기고 있었다. 이것을 바쳐 새끼들을 되찾는다면.
멀리서 들려오는 새끼들의 울음소리를 한 귀로 흘려넘긴다. 저것이 환청이라는 것을 언제부터 알았을까. 며칠 되지 아니하였다. 모르던 것은 아니다. 그저 외면하고 있었을 뿐.
소리 없이 한숨을 내쉰다. 나는 제비일진데 어찌하여 인간에게 이런 감정을 품게 되었나. 생각해봐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저 이 형상이 문제였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모든 것이 구렁이 탓인가. 아니. 아니다. 내 탓이다. 아무것도 모른 채 구렁이 같은 것에게 홀려버린 어리석은 자신.
연수는 결국 이부자리를 벗어난다. 심란하여 놀부의 곁에 붙어있고 싶지 아니하였다. 아무리 역겨운 자여도 참을 수 있었는데 이것은 참기가 쉽지 않다.
놀부는 조금 뒤척일 뿐 깨어나지 않았다.
마루에 나온 연수가 낯선 움직임을 포착한 것은 아직도 살아있는 야생성 탓이 틀림없었다. 연수는 불렀다.
"게 누구요."
상대는 말이 없었다. 침묵. 적막을 가르는 것은 스산한 바람소리 뿐이라.
잠시 후, 그가 움직였다. 어둠을 가르고 다가온 것은 흥부다. 연수는 쓰게 웃는다. 이이가 대체 이곳에 무슨 일일고. 필시 연수에게 달가운 일은 아닐 터였다.
"형님은?"
연수는 가만히 고개를 젓는다.
"주무십니다."
"그래."
탄식처럼 뱉으며 흥부가 고개를 끄덕인다.
"네 발로 집을 나갈 생각은 없을 테지?"
흥부의 시선이 날카로웠다. 연수는 다시 한 번 고개를 젓는다. 흥부의 깊은 한숨.
"형님께서 널 안채로 들이셨다고는 들었으나…."
차마 말을 잇지 못하겠다는 듯 그는 고개를 젓고,
"알겠다."
돌아선다.
"도련님."
연수가 말했다.
"나는 네 도련님이 아니라 하였다."
"알고 있습니다."
흥부는 말을 고른다.
"가겠다."
"잠시만, 잠시만 제 이야기를 들어주십시오."
연수의 말이 빨랐다. 흥부는 잠시 멈추었다가, 돌아선다.
"무어냐."
연수는 안채를 돌아본다. 흥부는 눈살을 찌푸린 채 그 모습을 바라본다. 고개를 끄덕인다.
"자리를 옮기는 게 낫겠구나."
연수의 시선이 낮았다.
두 사람은 모두가 잠든 집안을 가로질러 별채로 향했다. 연수가 머물던 곳이다.
연수는 자연스레 자신의 자리를 찾았다. 흥부는 못마땅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았으나 별 말 없이 손님 자리를 차지한다.
"무엇이냐."
서두도 없는 질문에 연수는 웃는다. 슬픈 웃음이다. 흥부의 눈초리가 아주 조금 뭉뚝해진다.
"만약의 일입니다만."
입이 말랐다. 눈을 감았다 뜬다. 연수는 입을 다물었다가 천천히 벌린다.
"누군가 그대의 형님을 노리고 있다면 어찌하시겠습니까?"
흥부는 웃는다. 비웃음이다.
"네 이야기냐?"
그리 말하면서도 흥부의 시선이 흔들린다. 다정한 자다.
"그의 피를 원하는 자가 있습니다."
나직한 목소리에는 망설임이 없다. 그저 슬플 뿐이다.
흥부는 연수를 바라본다. 속을 꿰뚫기라도 할듯 매섭다가 서서히 풀어진다. 서서히, 아주 서서히.
"무슨 소리냐."
끝내 떨어진 그의 말에는 삼키기 힘든 불안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연수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흥부를 바라보다가 가볍게 눈을 감는다.
"저는."
꿀꺽.
"제비입니다."
심장이 쿵하고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