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부가 연수를 데려간 곳은 한적한 곳에 있는 별당이었다. 하인이 잘 들지 않아 고요하고 한적한 곳에 시내를 끼고 지은 정자가 있었다. 구렁이와 만나던 산에서 흘러나온 물이었다. 놀부의 집에서보다 가까이 보이는 산등성이에 연수는 작게 몸을 떨었다.
"형님은 아직 네가 어디 있는지 모른다."
흥부가 말했다.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알면 큰 사달이 나겠지."
놀부의 성질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연수를 데리고 제 집으로 온 사람 답게 흥부는 흔들림이 없었다.
흥부의 시선은 깊었고 굳센 의지가 담겨있다. 연수는 그가 참 강하다는 생각을 했다. 사납지 않아도, 발톱이 없어도 느껴지는 강함. 신비한 감각이었다.
"어디,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보아라."
연수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 시냇물 흐르는 소리가 제법 우렁찼다.
흥부의 신음이 침통했다. 연수는 장식함을 쓰다듬으며 흥부의 말을 기다렸다. 받아들여줄지 거부할지 알 수 없으나 다행인 것은 흥부는 연수의 이야기를 허투루 듣지는 않았다. 적어도 들을 가치가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주었다. 그것만으로도 어쩐지 마음이 놓여서 연수는 흥부가 자신을 내치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고보니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놀부를 데려가지 않으면 구렁이는 연수를 어떻게 할까. 잠시 머릿속이 새카매졌다가 밝아진다. 죽을지도 모른다. 그것을 거스른다면, 그렇다면.
두려웠다.
제비는 그제서야 제가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새끼가 보고 싶고, 하늘을 날고 싶었다. 자신도 새끼도 죽음으로 잃고 싶지 않았다. 저승으로 가면 새끼들을 볼 수 있겠으나.
그러나.
연수는 입을 앙다문다.
살고 싶었다.
살아서 하늘을 누비고 싶었다.
살아서 또다시 알을 낳고 새로운 새끼들을 기르고 싶었다.
이미 가버린 새끼들에 대한 배반일지도 모르지만. 그렇지만.
두렵다.
연수의 안색이 새카매진 것을 본 흥부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믿기 힘든 이야기구나."
무슨 말을 더 해야할지 모르겠다는 듯 짧은 문장이었다.
연수는 눈을 꾹 눌러 감았다가 떴다. 주섬주섬 내놓은 것은 소중히 쥐고 있던 장식함이었다. 흥부의 시선을 받으며 천천히 그것이 열렸다.
장식함의 비단 위에 놓인 알껍질 하나. 가능한 멀쩡한 것을 골라 조각이 제법 컸다. 하얀 바탕에 갈색 점박이가 찍힌 그것을 조심스레 흥부 쪽으로 밀어낸다. 흥부는 차마 껍질에는 손을 대지 못하고 장식함을 집어들었다.
"원통하겠구나."
흥부의 한 마디였다.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부모가 어찌 제정신이겠느냐."
물기 어린 목소리로 흥부가 탄식한다.
깊은 한숨.
장식함을 고이 닫은 흥부가 그것을 다시 연수 쪽으로 밀어내었다.
"구렁이가 형님을 데려오라 한 것이 동지라 하였지."
"그렇습니다."
흥부는 흐르는 시냇물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다.
"얼마 안 남았구나."
"…예."
소리 없는 근심이 두 사람 사이를 맴돌았다.
"돌아가자꾸나."
흥부가 말했다.
"생각을 좀 해보아야겠다."
연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연수도 생각할 게 많았다.
그날부터 흥부네 집 아이들과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들은 흥부가 데려온 집 없고 부모 없는 아이들이었다. 남자 하인들의 거처 근처에는 남자아이들이 사는 건물이 있다고 했다.
그것을 설명해준 하인은 나이가 찬 아이들은 하인들의 입을 돕고 있다며 연수도 함께 일을 해야한다고 말했다. 연수는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첫 날에는 그렇게 말을 했을 뿐 아무 일도 없었다. 그래서 연수는 생각할 수 있었다. 놀부를 구할 방법을. 그리고 자신의 미래를.
놀부를 구할 방법에 대해서는 그를 구렁이에게 데리고 가지 않는다는 선택지 외에는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문제는 자신의 생존이었다. 놀부를 구렁이에게 데려가지 않았을 때 연수 자신이 어떻게 될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도망을 칠까. 도망친다고 하여 살아남을 수 있을까. 구렁이가 쓴 마법이 풀리지 않는다고 하면 대체 인간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할까. 만약 풀린다면, 과연 지금처럼 건강한 상태일까.
알 수 없었다.
분노한 구렁이가 제비를 해치려 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었다. 생각을 거듭할수록 자신의 무지와 무능만을 깨닫게 된다.
그렇게 연수가 자신에게 질려 고개를 젓고 있을 때.
"이 못돼먹은 놈!!!"
익숙한 호통이 들려왔다.
놀부였다. 멀리 있는 것이 분명한데도 말소리를 구분할 수 있을만큼 목청이 컸다.
"연수를 어디에 숨겼느냐. 연수야!"
연수야, 연수야.
애타는 외침이 이어졌다. 연수의 몸이, 시선이 돌아간다. 놀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쫓는다. 연수의 눈이 선득 붉었다. 반쯤 일으킨 몸이 다시 주저앉는다.
가서 어찌할 것이냐.
연수는 제 발로 도망나온 것이다. 돌아간들 환영받을 리 없었다. 환영한다 해도 돌아가서는 아니 되었다. 놀부의 곁에 있으면 분명 살의에 잡아먹히고 말 것이다. 그런 직감이 있었다. 저것은 사냥감이다.
연수는 갈고리마냥 휜 손을 말아쥔다. 짤막한 손톱을 어루만지다 눈을 감는다.
후.
놀부의 외침이 이어졌다.
못돼먹은 놈. 못돼먹은 놈.
연수의 이름이 아니면 그 말이 반복될 따름이다. 언뜻언뜻 흥부의 목소리가 같이 울리는 듯했으나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밖에서 쪼르르 달려 들어온 여자아이가 대뜸 연수의 손을 낚아챘다. 처음 연수에게 나이를 물었던 아이였다. 그대로 잡아당긴다. 놀란 연수는 반항할 겨를도 없이 그대로 끌려 일어났다.
억센 손으로 아이는 연수의 팔을 마구 잡아당겼다. 연수는 얼떨결에 아이를 따라 방을 나왔다. 그제서야 정신이 든 연수가 아이의 손을 뿌리친다.
"연수가 너지?"
아이는 씩씩거렸다.
"너 때문이야. 너 때문에 아저씨가 고초를 겪고 계시잖아."보다 짧게 끝난 ㅇ
찢어진 목소리가 빽하고 하늘을 찌른다.
"당장 나가!"
밀친다.
"나가서 저놈을 말리란 말야."
아이는 분을 참기 힘든 듯 몇 번이고 연수를 떠밀었다. 연수는 두어번 떠밀렸으나 곧 힘을 주어 버티기 시작했다. 아이가 이를 악물었다.
"요물 같은 년."
결국 분기를 삭히지 못한 아이의 눈에 방울방울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나가라고. 나가란 말이야!"
서러운 감정이 훤히 드러나는 외침이었다.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하인 하나가 나타나 아이를 붙들었다. 아이는 결국 그 품에 안겨 서러운 울음을 터뜨린다. 그리고.
"거기."
연수는 뒤를 돌아보았다.
"날 따라오너라."
흥부 부인의 등장이었다.
연수는 흥부 부인을 따랐다. 익숙한 길이 이어진다 싶더니 부인이 이끈 장소는 흥부와 대화를 나누었던 정자였다. 따르는 하인을 모두 물린 부인이 연수와 함께 정자에 올랐다.
"사정은 들었다."
부인의 얼굴이 비장했다.
"마음 같아서는 널 내주고 평화를 찾고 싶으나 그리하기는 힘들겠더구나."
연수는 다소곳이 고개를 숙였다. 무어라 할 말이 없었다.
부인은 날카로운 시선으로 연수를 뚫어져라 바라보다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서방님이 널 신뢰하시니 내가 의심한들 무슨 방법이 있겠느냐마는."
그래도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말해보거라. 내가 이 야단과 설움을 참아 넘겨야하는 사정을 내게 직접 설토해보아라."
연수는 눈을 감았다.
한 번 이야기를 풀어놓았던 덕인지 다시 읊어내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보다 정리된 이야기를 짧은 시간 내에 끝낼 수 있었다. 눈물도 쏟아지지 않았다. 말이 막히는 일도 없었다.
담담한 태도는 독이었을까 약이었을까. 연수는 부인의 눈을 마주하지 못 했다. 무슨 말이 떨어져도 담담할 자신이 없었다.
"뒷산에 무시무시한 것이 있다는 소문은 있었지."
부인의 말이었다. 연수는 고개를 들었다.
"소문으로는 하늘에 오르기를 거부한 이무기라 한다."
하늘을 거부한 사연은 모르나 살육을 즐기는 잔혹한 성정이라고 부인은 말했다.
"필시 그것이렷다."
산을 향한 시선을 다시 연수에게 돌리며 부인이 말했다.
"결국 네가 요물은 맞았구나."
연수는 다시 머리를 조아린다.
어쩔 수 없지.
부인은 중얼거리곤 자리에서 일어섰다.
"예 있거라."
"……네."
연수는 부인의 뒷모습을 지켜본다. 흥부의 것과 무척이나 닮은, 단아하고도 단단한 걸음이었다.
그 후 부인이 무엇을 어찌 하였는지는 몰랐다. 연수가 알 수 있는 것은 하인들이 연수를 보는 눈빛은 조금 바뀌었다는 정도였다. 태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뒷말도 들리지 않았다. 주인을 닮아 점잖은 이들이었다.
달라진 것은 아이들의 태도였다. 처음 연수를 보았을 때부터 시비를 걸어왔던 아이는 대놓고 연수를 무시하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의도적인 행동이었다.
다른 아이들은 연수를 흘긋거리며 저들끼리 속닥였다. 무슨 말인지 들리지는 않았으나 자신의 이야기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아무도 말을 걸어오진 않았다.
그래서였다.
누군가 연수의 치마를 붙들었을 때 소스라치게 놀란 것은.
"있지."
네 명의 아이들 중에 가장 어린 아이였다.
"정말 구미호야?"
연수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누가 그런 소릴……."
연수의 목소리는 작았다. 그러나 방에 있던 아이들, 가장 큰 아이 빼고 세 명의 아이들은 모두 연수를 쳐다보고 있었다.
"말했어. 벙어리가 아닌가봐."
뒤에서 지켜보던 아이가 말했다. 그 옆에 서있던 다른 아이가 실례라며 말을 한 아이의 팔뚝을 꼬집었다. 투닥거리는 것을 멍하니 지켜보는 연수의 치마가 다시 한 번 잡아당겨진다. 조그만 아이의 얼굴에 불만이 가득했다.
"구미호야, 사람이야?"
연수는 어버버하여 쉬이 답을 하지 못 했다.
"소연 언니가 그랬어. 네가 놀부를 홀린 구미호라고."
"정말이야?"
뒤에 있던 아이들이 거들고 나섰다. 연수는 세 아이의 얼굴을 몇 번이고 번갈아 보았다.
"……아니어요."
겨우 입 밖에 나온 말은 그게 다였다.
"에이."
아이들은 실망한 눈치였다.
"그럼 어쩌다 도망친거야?"
"놀부는 자기 집에서도 못 됐지?"
"너도 집이 없어?"
아이들이 연수를 빙 둘러쌌다. 연수는 놀라 얼어붙었다. 아이들의 눈이 초롱초롱했다. 그 눈빛이 어딘가 익숙했다.
그렇구나.
연수는 살짝 웃었다. 긴장이 자연스레 풀렸다.
이번에는 아이들이 놀란 눈치였다.
"저는 구미호가 아니에요. 하지만 그 사람을 홀렸을 수는 있겠네요."
아이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앳된 뺨이 호기심으로 붉게 물든다. 연수는 처음으로, 인간의 아이들이 제법 귀엽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