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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요일엔 이가체프 Apr 15. 2016

초코와 꼬마의 봄날


 선거일 이른 아침 투표를 마치고 외출하기 전에 엄마와 잠깐의 데이트를 했다. 예보와는 다르게 맑고 파란 하늘이었고 발길을 이끄는 날씨였다. 엄마와 집 근처에서 식사를 하고 옆에 있는 찻집에 갔다. 사실 그 찻집에 엄마와 함께 온 것은 처음이지만 그곳은 15년동안 나의 추억을 담아 온 보물상자와도 같은 곳이었다.



 오랜 동네친구와 함께, 나의 좋은 사람과 함께 들러 차 한 잔 마시며 나와 그들의 이야기를 나누던 곳.  차를 타고 가는 날이 많기는 했지만 걷고 싶은 날이면 산책하듯 집에서부터 여유있게 걷기도 했다. 그곳에 앉아 15년 전의 내가, 10년 전의 내가, 5년 전의 내가 앉았던 자리에서 나누던 이야기들을 추억할 수 있는 찻집이 있다는 건 참 귀한 경험이기도 했다. 10년을 함께 하던 동네친구가 이사를 가던 때, '이제 우리 거기까지 같이 못 걷겠네.' 하며 우린 아쉬워했다.


 이름처럼 하나의 '섬'과 같은 그곳에서는 이상하게도 블랙홀처럼 시간의 개념이 무너져버린 듯했다. 그곳에 앉아 창밖으로 보이는 것은 사람들이 아니라 나무와 꽃, 어슬렁 거리거나 졸고 있는 고양이들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나무타는 냄새를 풍기는 벽난로와 오래된 레코드판과 오르간이 있고, 느린 노래들이 흘렀다. 사람이 붐비지 않는 그곳에는 평온한 공기 속에서 연인 혹은 친구 사이의 대화가 흘렀고 저녁이면 중년의 모임 장소가 되어 막걸리 한 잔에 이야기꽃을 피우는 장면을 종종 보기도 했다. 언제나 그곳에서는 시끄러운 소리에 목소리를 높여야 하는 일이 없었고, 시간을 재촉받아 서두르는 일이 없었다. 그렇게 그곳에 앉아 있으면 바깥의 시간과 다른 시간이 흐르는 것 같았다. 그런 곳이 작정하고 나들이하러 나가야 하는 거리가 아닌 근처에 있다는 것은 행운처럼 느껴졌다.



 좋은 봄날, 엄마와 함께 그곳에 들렀다. 엄마는 예상대로 '어머, 여기 너무 예쁘다'며 소녀처럼 좋아하셨다. 들어가는 길에 뜰에 놓인 나무 의자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단잠을 자고 있는 것이 보였다.


 역시 이것도 그대로다.


 안녕?


 이집에서는 늘 고양이들을 만났다. 15년동안 자주 가지는 못해도 종종 들를 때면 항상 고양이를 만났다. 그중에서도 내가 좋아하던 살찐이.


 만화에 나오던 뚱보 고양이 가필드처럼 푸짐한 몸매로 항상 벽난로 앞에서, 손님 없는 테이블의 의자에서 세상 가장 편안한 자세로 누워 잠을 자던 아이. 원래부터 거기 서 있던 동상처럼 문앞에 앉아서는 나가는 사람에게 길을 비켜주지도 않고 불러도 눈만 굴릴 뿐 꿈쩍도 않는 통에 직원이 들어올려 옮기곤 했던 아이. 다리 사이를 부비면서 안 넘어가곤 못 배길 아양으로 매력발산을 해놓고는 수북한 털만 남기고 유유히 갈 길 가던 아이. 그곳에서 가장 많이 만났던 살찐이가 보이지 않던 어느날, 주인 아주머니께 살찐이는 어디 갔냐고 여쭸고 한 달 전에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길고양이로 서성이던 아이를 아주머니가 보듬어 주셨고 그렇게 그곳에서 15년을 살다가 갔다고 했다. 그날 그렇게 살찐이의 소식을 전해주시던 아주머니는 애틋한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그래도 이렇게 우리 살찐이를 기억하는 사람을 만나서 너무 반갑네요."


2008년에 찍어 둔 살찐이의 모습


 살찐이 외에도 그곳에는 고양이가 한 두 마리씩은 꼭 있었는데, 이날 우리가 만난 고양이는 초코와 꼬마였다. 뜰의 나무의자에서 벚꽃비를 맞으며 단잠을 자던 초코는 우리의 말소리에 잠을 깨고는 뭐라뭐라 냐옹거렸다. 가던 길 가시라는 말일지, 만나서 반갑다는 말일지 그 말을 알아들을 신통한 능력이 없었던 나는 그냥 반갑다고 미간을 쓰다듬어주었다.



 주문한 커피와 모과차가 나오는 동안 멀리서 꼬마라는 이름을 가진 고양이가 나타났다. 이름이 무색하게 근엄하고 중후한 풍채로 등장해서는 벚꽃 띄운 물을 한 번 홀짝이고는 씩씩하게 식사를 했다.


 "꼬마야~"

 "냐옹"

 "쵸코야~"

 "냐옹"


 깜찍하게도 이름을 부르니 고갤 돌려 냐옹거린다. 예전에 키우던 나의 새들과도 끝내 대화에 실패했던 나는 그저 내 마음대로 그들의 말을 상상할 수 밖에 없었지만 '저리 좀 가라'는 말은 아니었기를. 너도 나처럼 반가웠기를. 그리고 또 만나자는 마음이었기를.


 그러다가 초코와 꼬마가 만났다. 둘이 서로를 바라보며 냐옹거렸다. 그 둘은 또 무슨 대화를 하고 있을까.


 '이 사람들, 일찍도 차마시러 왔구만.'

 '단잠 좀 자려고 했더니 다 틀렸네.'

 '개나리 밑에서 자면 잘 안 보여. 거기로 가.'


 뭐 이런 대화였을까.


 '뭐야, 오늘 날씨 좋잖아.'

 '예보가 맨날 그렇지 뭐.'

 '으아, 슬슬 장사 준비 시작해볼까.'


 아니면 이런 대화였을까. 알 리 없는 저들의 대화에 상상의 옷만 입히고 있다보니 문득 나쓰메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좋아하는 엄마와 좋아하는 장소에 앉아 정성껏 내주신 모과차와 커피를 마셨다. 벚꽃과 개나리의 환영을 받은 또 하루의 봄날이다. 그리고 옆에서는 초코와 꼬마의 봄날도 흐르고 있었다.



* 메인과 글에 담긴 사진은 카페에 앉아 찍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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