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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요일엔 이가체프 Apr 25. 2016

찰나의 명랑함

아주 짧은 감상


 길을 걷고 있었다. 내 옆으로 초등학생 여자 아이 둘이서 빠른 걸음으로 지나고 있었는데 들리는 이야기를 듣자하니 아이들은 닭꼬치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마도 그 둘은 닭꼬치를 사먹기로 결심한 모양인데 한 아이가 펼치는 닭꼬치론이 어찌나 소신있고 당차던지 목소리에 비장함마저 느껴졌다.


A: 만약 그 닭꼬치가 내가 생각한 닭꼬치가 아니면 나는 그 닭꼬치를 먹지 않을거야. 근데 내가 생각한 닭꼬치가 하나도 없다면 나는 결국 그 닭꼬치라도 먹겠어!


 무슨 맥락인지는 모르겠으나 아이의 생각 속에는 분명 확고하게 자리잡은 닭꼬치의 이상형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고는 대화가 이어졌다.


A: 이거 그거 같다. 내가 그린 그림... 뭐지뭐지?


B: 내가 그린 기린그림!


A: 맞다맞다!


A, B(동시에): 내가 그린 기린그림은 잘 그린 기린그림이고 니가 그린 기린그림은 잘 못 그린 기린그림이다!!


 재잘재잘 합을 맞추더니 아이가 웃었다.


 까르르.


 아이는 우리가 문자로 표현하는 웃음소리와 똑닮은 소리로 정말 '까르르'하고 웃었는데, 순간 그 웃음소리가 어찌나 맑은지 세상에 슬픔이란 단어를 모르는 사람의 것처럼 즐거움으로만 가득 차서 나도 모르게 고갤 들어 아이를 봤다.


 아이는 어떻게 저런 웃음소리를 내는거지?


 아이의 웃음이 신기할만큼 맑았다. 아무런 억지도 계산도 깃들지 않은 찰나의 웃음이 너무도 명랑했다. 좋아하는 닭꼬치를 좋아하는 친구와 먹으러 가는 길, 좋아하는 친구와 나누는 수다가 유난히 쿵짝이 잘 맞는, 그 기분 좋은 순간에 터진 웃음. 우리에게도 분명 그런 순간이 있을텐데 그순간 우리의 웃음소리도 이렇게 맑을까? 알 건 다 안다는, 그래서 애어른 같다는 요즘의 초등학생이라지만 역시 아이는 아이인 걸까? 아무리 웃어도 저렇게 명랑할 수는 없겠다 싶은 웃음소리. 그 짧게 스친 명랑한 웃음소리가 하도 맑아서 내 머릿속에 기운 고민의 연기가 순간 탈취되는 기분이 들었다.


 닭꼬치 트럭으로 향하는 명랑한 아이들은 명랑한 발걸음으로 눈앞에서 멀어졌고, 그 기운을 받아 나는 조금 더 명랑해진 기분으로 걸었다.



 그리고 문득 그 아이가 생각한 닭꼬치는 과연 무엇이었을지가 궁금해졌다.



* 메인 사진은 산책 중에 찍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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