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그 하늘엔 별이 참 많았다
탁
"아, 안돼!"
이제 한창 이야기에 물이 올랐는데. 정전이라니. 가만 있어보자. 우선 먹을거랑 잔부터 치워. 아, 그런데 진짜 아무것도 안 보여.
눈가린 게임이라도 시작된 것처럼 우리는 일제히 방바닥을, 허공을, 서로를 더듬기 시작했다.
아, 정말 아무것도 안 보여.
암흑. 컴컴하다.
만약 이 단어를 모르고 있었다면 평생 잊어버리지 않을만큼 각인될 순간이다. 눈을 뜬 것인지 감은 것인지 눈꺼풀의 깜박임이 무색할 만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더듬거리는 손들이 허공을 가르며 별다른 소득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그다지 밝지도 않은 2G폰 액정을 서로에게 갖다 대며 한 줄기 빛이라도 끌어 모으려고 애를 썼다. 돋보기 보다는 유용한 사용거리를 확보하고 서로의 얼굴을 비춰 대충 난감해진 표정들을 확인했다. 그러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웃음이 터져나왔다.
푸핫. 이게 뭐람.
바닥을 정리하기엔 역부족이란 걸 느낀 우리는 일단 용케도 방문을 찾아 밖으로 나갔다. 농활을 하러 떠나 온 외지고도 외진 시골 한 채의 집, 안 그래도 별로 없는 등불들이 그마저도 쏙 사라졌다. 하지만 온통 컴컴하기만 했던 방과 달리 바깥엔 수많은 빛들이 쏟아져내리고 있었다. 안 보인다고 아등바등거렸던 방에서의 요란이 머쓱해질 정도로 평온하기만 한 밤의 풍경. 정전이라는 것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달이 밝았고 별들이 그랬다.
휘영청 밝은 달빛,
쏟아질 것 같은 별빛,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
고유명사처럼 붙어 버려서 이제는 아무런 감흥도 느낄 수 없었던 수식어들. 그러나 그 표현을 처음 만들어 낸 사람에 대해 감탄이 터져 나올 듯 했던 그런 하늘, 그런 달빛과 별빛.
아름답다
우리는 지금 어느 별에 와 있는 걸까. 동화책에 있던 그림에서 봤던가, 백과사전에 있던 천체사진이었나, 어린왕자를 읽으며 상상했던 별의 모습인가, 노래가사에 아니 시에 담겨 있었던가. 이 하늘은 어디에 있다가 이제야 온 걸까. 그 빛 아래 나란히 선 대학생들은 처음 본 달과 별을 배우는 어린 아이처럼 또랑또랑한 눈망울로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성큼 다가온 그 하늘 아래서 우리는 꿈을 꾸었다.
대학시절, 가로등불 하나 찾기 힘들었던 산골로 농활을 떠났던 날. 정전이 된 시골 밤에 우리는 가장 어두운 밤 속에서 가장 밝고 찬란하게 비추는 달빛과 별빛을 보았다. 오롯이 자연이 선사한 가장 밝은 밤이었다.
그리고
오늘 밤 나는 서울의 하늘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 빛을 찾는다.
그날 그밤에 우리는 만났지. 상상했던 것보다 너는 더 아름다웠어. 얼마나 눈이 부시던지 넋을 잃고 바라만 봤지. 내게 성큼 다가와줬던 너를 보며 내가 얼마나 설렜는지, 너는 알까. 그날 그렇게 나에게 다가와줘서, 그 어느때보다 나를 환히 비춰줘서 고마웠다는 말, 내가 했던가. 이곳에선 네가 잘 보이지 않지만 나는 알아. 지금 내가 바라보는 그곳에 네가 있다는 걸. 그리고 그곳에서 너도 지금 나를 찾아 반짝이고 있겠지. 너의 반짝이는 빛을 오늘은 내가 찾아볼게.
오늘은 조금 돌아가도
지하철 말고서 버스를 타고
창밖에 비친 멍한 얼굴
귓가엔 멜로디 어둑한 저녁
한 정거장 일찍이 버스에서 내리고서
타박
발걸음 내디면 조용한 밤 산책
...
나도 모르게 웃음이 번져와
아무 일도 없는 소소한 일상
새삼 말하기도 민망하지만
이대로 좋구나
- 오지은 <오늘은 하늘에 별이 참 많다>
* 메인 사진은 청계천에서 찍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