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죽는다

by 은도진


우리는 모두 죽는다. 가끔은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사실이다. 오늘 죽으나 내일 죽으나, 10년 뒤에 죽으나 50년 뒤에 죽으나 결론은 같다는 것 또한 그렇다.


죽고 싶을 때가 있다. 죽고 싶어도 못 죽을 때가 있다. 나는 죽고 싶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 것은 볼 수 없을 때도 있다. 아이러니다.


죽음은 이렇게 모든 아이러니 중에 최고봉이다. 영원히 살면 좋을 것 같지만, 죽음이 없다면 삶의 가치도 죽음이 있는 것만 못하다는 사실도 아니러니 중에 하나다. 죽음은 어둠이고 악인 것 같아도,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게 또한 그것을 증명한다.


죽어도 상관없을 때는 죽지 않고, 죽을 때가 안 된 것 같은데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도 있다. 어둠 속에서 잠에 취해 비틀거리며 운전을 해도 아무 일 없이 집에 도착할 때가 있는가 하면, 대낮에 멀쩡하게 운전하다가도 죽음에 도착하는 경우도 있다.


가끔은 본인의 죽음을 예감하는 때도 있다. 가끔은 본인의 죽음이 아직은 아님을 예감하는 때도 있다. 그런 본능적인 감각은 때로는 매우 강하여 그 어떤 것보다 더 정확하게 미래는 예견하는 때도 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다가도 코앞에 닥친 죽음 앞에서 두려움을 느끼기도 하고, 죽음을 두려워하다가도 평온하게 죽음을 맞기도 한다.


삶이 내 뜻대로 안 되는 것처럼 죽음도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살면 살수록 삶을 더 모르게 되는 것처럼 살면 살수록 죽음도 더 모르게 된다.


서두에 오늘 죽으나 내일 죽으나 같다고 했지만 같지 않을 수도 있다. 10년 뒤에 죽으나 50년 뒤에 죽으나 결론은 죽는 것이지만 다를 수도 있다. 10년간 열심히 살아도 죽으면 그만일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10년간의 세월을 살면서 누군가에게는 희망을 누군가에게는 삶의 큰 이정표가 되었을 수도 있다. 살지 않았다면 없었을 일들, 죽었다면 보지 못했을 일들이 죽음을 다르게 만드는 것이다.


삶은 선택이 아니었다. 왜 사냐고 묻는다면 우리의 선택이 아니었기 때문에 답변을 할 수가 없다. 태어났기 때문에 사는 것이고, 아직 죽지 않았기 때문에 사는 것이다. 별다른 도리가 없다. 왜 사냐는 질문에는 행복하냐는 질문이 뒤따른다. 행복할 때는 왜 사냐는 의문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삶이 불행할 때 삶에 의문이 들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줄어든다. 행복감을 느낄 때 왜 사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삶을 누리기 위해서 산다는 답변이 따라온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어서,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어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삶이 소중한 것이다. 삶이 행복할 때는 이런 것들을 놓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커질 수도 있다.


누구나 죽는다. 그 `누구`는 죽음에 앞서 `살 수 있는 기회`를 가진 사람이다. 살 수 있는 기회를 가지지 못한, 즉 태어나지 못한 존재는 죽지도 못한다. 그래서 누구나 죽지만, 어떤 존재나 다 죽을 수 있는 것은 아닌 것이 된다. 죽음도 삶처럼 귀한 기회이자 삶의 과정이라는 말이다.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는 죽음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인생에 있어서 소중한 것이 되는 것 또한 아이러니라 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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