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 서울의 여정. 첫 시작으로부터 1년이 지났다. 정석대로라면 부산부터 서울까지 계속 걸어가야 하지만, 어디 그만한 시간을 낼 수 있는 직장인이 있던가. 2박 3일을 내기도 빠듯한 삶 속에서 부산-서울의 절반 정도 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번에도 어찌어찌 시간을 냈다. 시간을 내고 보니 한겨울이었고, 난 또 추위 속에서 걸음을 이어나가야 했다. 이번 2박 3일은 충주부터 문경에 이르는 구간. 나는 지난번에 눈과 추위에 힘들었던 기억을 더듬으며 방한 대비를 하였다.
나의 특별 아이템은 4만 원짜리 털신발과 5천 원짜리 다이소표 방한용 마스크. 6겹의 윗옷과 2겹의 바지, 2겹의 양말, 그리고 판초우의와 우산이었다.
버스를 타고 충주버스터미널로 이동. 11시에 바로 출발을 하였다. 따뜻하게 입어서 그런지 날씨는 생각보다 춥지 않았지만, 출발한 지 30분이 되어서 난 깨달았다. 털신발은 실패라는 것을.
출발한 지 겨우 30분이 지났을 뿐인데 발바닥에서 통증이 왔고, 그 통증은 물집이 만들어지고 있는 그런 통증이었다. 추위만 신경을 쓰고 신발의 질은 전혀 신경을 안 쓴, 마치 초보자 같은 실수를 하고 만 것이다. 지난번에 트레일러닝화를 신고 트레킹을 했을 때, 신발에 대한 이슈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신발의 중요성을 망각해 버린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하나. 이미 나는 충주에 떨어졌고, 2박의 숙박은 이미 예약이 다 되어 있고,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가야만 하는 운명이었던 것이다.
비상 대응책으로 점심을 먹을 겸 식당에 들어가 정비를 했다. 발에 바셀린이라도 발라야 했던 것이다. 나는 사장님이 보지 못하게 몰래 발에 바셀린을 발랐다.
그리고 너무 껴입어서 더웠기 때문에 옷을 하나 벗어서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다시 출발. 바셀린을 발랐지만 5% 정도만 나은 느낌일 뿐 통증은 다시 밀려왔고, 얼마 가지 않아 물집이 잡히는 느낌이 들었다.
얼어 있는 강 옆 자전거도로로 계속 걸었고, 점점 커지는 물집과 통증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중간에 어떤 마을에서 떠돌이 개 2마리를 만났는데, 짖으면서 달려왔기 때문에 공포에 떨어야 했다. 내가 개에 물어 뜯겨도 도와줄 사람이라고는 없었다. 나는 최대한 두 스틱을 개쪽으로 향하여 가까이 못 오게 하면서 특유의 혀 차는 소리로 개들의 비위를 맞추고, 개를 향한 자세로 서서히 뒤로 걸었다.
다행히도 개들은 좀 따라오는가 싶더니 이내 흥미를 잃고 자기들 가려던 곳으로 갔다. 오랜만에 간담이 서늘해지는 경험이었다.
순간 나는 발이 아픈 줄도 모르고 걸어갔다. 싯계 마을, 팔봉 마을을 지나서 토계리 마을회관 앞 정자에서 허락을 맡고 잠시 쉬었다가 다시 길을 갔다.
발이 너무 아프니 여러 생각들이 스쳤다. 꼭 한 가지씩은 변수가 있더니 이번에는 신발이구나, 어떤 어려움이 생겼어도 다 해냈기 때문에 이번에도 해내겠지, 인생에 굴곡이 없으면 재미가 없지. 오히려 이 기회를 통해 내 발을 단련시키자.
별의별 생각을 다 하며 걸음을 이어나갔고, 10km, 5km 정도로 거리가 줄자 날이 어두워졌다. 그래도 플래시를 켤 정도는 아니었기에 걸음을 재촉했고, 3km를 남겨두고 양말 안에서 물집이 터지는 느낌이 들었다. 물집이 있을 때는 디딜 때마다 지지직하는 통증 때문에 잘 못 걸었다면, 물집이 터지고 나서는 그 통증이 덜해지면서 한결 수월해졌고, 나는 어둡기 전에 수안보애 도착했다.
발이 아파서 식당을 고르기 힘들었기 때문에 무난한 국밥집에 들어갔다.
꼬리곰탕과 수육이 같이 나오는 `대통령`을 시켰는데 먹을 만했다. 배를 든든히 채우고 근처 마트에서 맥주와 안주를 사서 숙소로 왔다.
온천 지역이라서 그런지 숙소 물도 미끄러운 느낌이었다. 나는 온천물에 몸을 담그고, 가져온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면서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