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묵은 사이판온천호텔은 7시부터 조식 제공이 되었다. 빵, 삶은 달걀, 차나 커피, 시리얼과 우유 등이 있는데 여행객 입장에서는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침을 따로 먹으려면 번거롭고 아침에 여는 식당도 잘 없기 때문이다. 사장님이 친절해서 손님이 조식 먹으러 오면 이것저것 알려 주셨다.
아침을 든든하게 먹고 길을 나섰다. 약간씩 비가 오긴 했으나 우의를 입을 정도는 아니었다. 어제 발에 잡힌 물집이 걱정되었으나 출발하는데 큰 무리는 없었다.
그러고 보니 수안보는 꿩 요리와 올갱이해장국이 유명한 것 같았는데 못 먹었다. 그런데 크게 아쉽지는 않았다. 꿩은 별로 안 땡겼고, 올갱이해장국은 예전에 문경 근처에서 먹어 봤기 때문이다.
대안보를 지나 여러 마을들을 거쳐 갔다. 날씨가 춥긴 하였으나 견딜만하였고, 곳곳에서 개들이 반겨주었다. 강과 논은 얼어 있었고, 날씨는 우중충했다.
문경읍까지 거리는 지도상 27km. 온통 산으로 둘러싸인 지형을 통과하는 코스였다. 그리고 거의 대부분 자전거도로로 안내가 되었다. 자전거는 가는 동안 한 대도 못 봤고, 나처럼 트래킹 하는 사람도 한 명도 없었다.
맨 마지막 사진은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였고, 한지 박물관도 있었다. 서서히 발에 통증이 찾아오기 시작하였고, 어제 물집이 잡힌 곳에서 다시 물집이 잡히기 시작하였다. 내가 얼마나 걸으면서 신발 한탄을 했는지 모른다. 트레일화만 신었어도 날아다니는 건데, 털신발은 바닥이 군화보다도 더 딱딱하고 불편했다. 옛날 사람들은 이것보다 더 열악한 신발을 신고 어떻게 다녔을까. 10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고 저주를 퍼붓곤 하였는데, 10리면 4km니까 예전에는 충분히 한 시간도 못 가서 발병 나라고 할 수 있겠다 싶었다.
연풍면까지 4시간이 걸렸고 마지막 1시간은 정말 발이 아파서 그만 걷고 싶을 정도였다. 다행히 중심가에 순두부집이 있어 점심도 먹을 겸 발도 쉴 겸 들어갔다.
순두부는 양도 많았고 반찬도 가짓수가 많은 편이었다. 동네에 문을 연 곳이 여기밖에 없어서인지 손님들도 많았다. 나는 배도 채우고 휴식도 취하고 다시 출발했다.
점심을 먹고 나오니 가볍게 비가 왔고, 끝없는 산길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산을 오르는 건 더 힘들 것 같았다.) 이때부터는 정신력의 싸움이었다. 발앞꿈치는 감각이 없어질 정도로 통증이 오래되었고, 이제는 뒤꿈치까지 아파오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바닥의 충격이 신발을 타고 뒤꿈치까지 고스란히 전해졌기 때문에 어쩔 도리가 없었다. 노래도 듣고, 따라 부르기도 하면서 잊을 수밖에.
2시간쯤 지나자 정상에 이화령 휴게소가 나왔다. 차들이 꽤 많았고, 나는 실내에 들어가는 것도 발이 아파서 밖에 있는 의자에서 좀 쉬다가 다시 일어섰다. 나중에 든 생각이지만 여기서 버스를 탔어야 했다. 내려가는 길은 꽤 길었고, 발의 통증은 점점 극심해져 예전에 발뒤꿈치에 금이 갔을 때와 비슷하게 바닥에 딛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멋모르고 출발한 터라 중간에 버스도 없었고 끝까지 참고 내려가는 수밖에 없었다. 어떤 아주머니가 정상에서 산책 삼아 내려오셔서는 나에게 어디서부터 왔냐고 물은 것 말고는 혼자 고통을 참아가며 내려오는 시간이었다. 한 가지 얻은 것이 있다면 통증이 심할수록 번뇌는 없어진다는 것. 내려오는 동안은 그간 있었던 잡념은 떠오르지도 않았다.
결국 이를 악 물고 마을까지 내려왔고, 문경약돌한우타운에서 도저히 더 갈 수가 없어서 주저앉았다. 숙소까지는 4km 남은 상황. 버스도 없어서 나는 택시를 부를 수밖에 없었다. 총 25km를 물집 잡힌 발로 걸은 것만 해도 충분했다. 하루에 20km대를 수없이 걷기도 뛰기도 해 봤지만 이번처럼 발이 아픈 적은 처음이었다. 아침 8시에 나와서 오후 5시.. 충분했다.
처음에는 숙소에서 씻고 나와서 저녁을 먹으려고 했는데, 1m 걷는 것도 힘이 들어서 포기하고 치킨을 시켰다.
씻고 나니 발이 퉁퉁 부어 있었고, 앉아 있기만 해도 발에 피가 몰리고 부으면서 통증이 올라왔다. 그래도 앉아서 뜨거운 치킨을 맛있게 먹고, 노트북으로 작업까지 했다.
아침에 일어나니 발 상태는 다시 걸을 상태가 아니었다. 앞꿈치는 부어서 바닥에 디딜 수가 없었고, 조금만 발을 땅에 대고 있으면 피가 몰려서 발을 떼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점촌까지 가는 일정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점촌까지는 버스를 타기로 하고 문경버스터미널에 문의하여 위치와 시간을 확인한 뒤 절뚝이며 걸어갔다. 신기한 건 문경시내버스는 요금을 받지 않는다는 것. 나는 한 아주머니와 터미널에서 충주에서 걸어온 이야기를 하다가 버스에 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