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첫 그란폰도

by 은도진


처음은 의미가 있다. 첫사랑, 첫 월급, 첫 해외여행, 첫 마라톤 풀코스. 그래서 적어본다. 첫 그란폰도라서.


비 예보가 있었다. 새벽부터 비가 많이 왔다. 경기는 진행된다고 하였다. 새벽에 차를 몰고 비 오는 도로를 달렸다.


도착하니 경기장은 어수선했다. 사람은 얼마 없었고, 주룩주룩 내리는 비는 거셌다. 복잡하지 않아서 좋았다. 어묵탕과 라면과 계란도 부담 없이 먹을 수 있었다. 번호표를 받을 때는 정말 이 비에 할 수 있을까 망설였지만, 해 보기로 하였다. 우비를 입고 하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떤 분은 처음부터 우비를 입지 말라고 하였지만, 나에게는 무리였다. 아직 날씨가 쌀쌀했기 때문이었다.


처음이다 보니 번호표도 어디에 어떻게 매는지 잘 몰라서 검색을 하였다. 딱히 정해진 규칙은 없는 것 같았다. 헬멧에 스티커를 붙이고, 인식표도 달았다. 우의를 입고, 핸드폰으로 gpx도 켜고 준비를 했다.



출발 시간이 되었고, 경기는 시작되었다. 처음이라 얼마나 힘들지 가늠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천천히 달렸다. 비는 억수 같이 내렸고, 다행히 우비를 입고 있어서 몸이 젖진 않았다.


사람들이 내 앞으로 치고 나갔다. 속도가 30km/h은 나왔다. 초반에 오르막이 있었고, 그 뒤에 KOM 구간이 나왔다. 나는 KOM이 뭔지 몰라서 옆에서 달리고 있는 사람에게 물어보았다. 오르막 구간에서 빠른 사람을 시상하는 거라고 하였다. 생각보다 KOM 구간은 할만했다. 오히려 평지보다는 다른 사람을 앞지르는 것이 쉬웠다.



벚꽃이 흩날리는 도로를 달리는 기분은 꽤나 좋았다. 오르막 이후 내리막은 아주 신나게 달렸다. 물론 마셜을 앞지르지는 마라고 해서 천천히 달렸다. 다른 사람들은 내리막에서 속도를 내서 나를 앞질러 갔다. 그때부터 계속 추월당하기만 했던 것 같다.



오르막이 힘들 즈음, 보급소가 나타났다. 나는 바나나와 콜라를 허겁지겁 먹었다. 혼자 자전거 국토대장정을 할 때 허기가 지면 나중에 갑자기 힘이 떨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부지런히 먹었다.


내리막에서는 항상 그룹을 나눠서 마셜 오토바이와 함께 출발했다.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 그렇게 몇 번의 내리막을 지나고 나서는 거의 평지였다. 약간의 오르막과 내리막은 있었지만 산을 넘는 정도는 아니었다.



다음 보급소에서 먹는 꽈배기는 정말 꿀맛이었다. 첫 번째 보급소에서 우비를 버렸기 때문에 계속 비를 맞고 갔고, 몸도 춥고 힘들었기 때문에 갓 만든 따뜻한 꽈배기는 그야말로 신의 한 수였다. 나는 꽈배기 2개를 그 자리에서 다 먹고, 사과즙도 2개를 먹었다.


60km쯤 가자 몸이 조금씩 힘들기 시작했다. 허벅지도 단단해졌고, 속도를 조절해야 했다. 아, 이런 느낌이구나. 혼자 달릴 때는 천천히 가기 때문에 허벅지에 크게 무리는 오지 않았지만, 경기다 보니 아무래도 더 빠른 속도로 달리니 다리에 조금씩 무리가 오는 것 같았다.


체력을 배분하면서 도로를 달리고 보급소에서 잠시 쉬기도 하면서 계속 갔다. 80km를 넘으니 이제 20km 정도만 가면 된다는 생각에 여유가 좀 생겼다. 이대로 가면 첫 그란폰도를 완주한다는 생각에 기분도 좋았다. 뒤에 사람들이 얼마나 있는지는 몰랐지만 꼴찌는 아닌 것 같았다.


그런데 웬걸. 내리막 이후 평지를 달리다가 느낌이 이상했다. 뒷바퀴가 뭔가 이상한 느낌. 그리고 그 느낌은 현실이었다. 내려서 바퀴를 눌러보니 말랑말랑한 것. 펑크다. 이제 결승전 10km 밖에 안 남았는데, 여기서 끝난다니 아쉬웠다. 그래도 뭐 여기까지 왔으니 만족했다.


앞에 구급차가 있어서 바람을 넣을 수 있는지 물어봤더니 그런 건 없다고 했다. 대신 미케닉 차량을 불러줄 수 있다고 했다. 나는 혹시나 싶어 가지고 있던 전동펌프로 바람을 넣었다. 바람은 들어갔지만 바퀴 한쪽에서 공기방울이 올라왔다. 펑크가 맞았다. '이제 나와 이 자전거는 차량에 실려가겠구나.' 하고 기다렸다. 뒤에서 자전거 무리들이 나를 보면서 지나갔다. 천천히 가더라도 펑크 없이 갈 수 있는 자전거들이 부러웠다. 그리고 내 뒤에 아직 사람들이 많다는 것에 놀랐다. 첫 그란폰도이지만 가능성을 봤다.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15분쯤 지났을까. 차량이 도착했다. 내 자전거를 보더니 바퀴를 분리하셨다. 나는 굳이 왜 바퀴를 떼지? 의아했다. 그냥 싣고 가면 되는데. 알고 보니 그분은 튜브를 교체하려고 했던 거였다. 경기를 포기하고 gpx도 끄고 있던 나는 조금 놀랐다. 그리고 남은 10km를 다시 갈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뻤다. 비록 사람들이 다 지나가고 거의 꼴등인 것 같았지만 괜찮았다. 첫 그란폰도에 완주를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했다.


내 타이어는 좀 빡빡해서 걱정을 했다. 그래서 튜브를 갈 때 쓰는 타이어 글라이더를 드릴까 하니 괜찮다고 하셨다. 예전부터 하던 방식이 익숙하다고. 그리고는 생각보다 빠른 시간에 교체가 완료되었고, 나에게 남은 경기 잘하시라고 하였다.


나는 뒤처진 거리를 보상이라도 하듯 힘을 내서 달렸다. 마지막 10km는 정말 빠른 속도로 달렸다. gpx 없이 속도계도 없이 그냥 막 내달렸다.


그리고 곧 결승점이 다가왔다. 마지막 힘을 내어 빠른 속도로 결승점을 향해 달릴 때 울컥했다. 뭔가를 열심히 해서 성취하는 기분. 그리고 몇 명을 따라잡았다.


결승점에 도착하니 아직 사람들이 반겨주었다. 나는 도착해서 남은 어묵탕을 먹고, 음식들과 기념품을 받아서 나왔다. 뭔가 뿌듯했다. 하늘은 맑게 개었고, 구름이 선명하게 지나갔다.


몸은 별로 힘들지 않았다. 마라톤은 뛰고 나면 몸 전체가 힘든 느낌인데 자전거는 허벅지만 당기고 전반적으로는 괜찮았다.


나는 경기 때 또 말썽이었던 기어 부분을 수리하기 위해 바로 집으로 가지 않고, 자전거 대리점으로 달려갔다. 사장님은 원인을 찾아내어 고쳐주셨다. 예전에 낙차 시에 발생한 뒤틀림이 원인이었다. 역시나 사람이나 자전거나, 자동차나 한번 사고가 나면 그 상처는 남는구나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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