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니 몸에 힘을 줄 때마다 어깨가 아팠다. 팔도 힘을 주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천천히 시도하면 어깨는 들 수 있었고, 쇄골이나 어깨뼈를 만졌을 때 골절이 있지는 않아 보였다. 하지만 오늘도 최소 90km는 가야 했기에 아침에 병원에 들러 X-ray를 찍고 출발하자고 계획을 세웠다.
날씨는 쌀쌀했다. 어제보다는 기온이 높지만 그래도 영하 5도의 날씨였다. 나는 한 의원에 불이 켜져 있길래 들어갔다. 할아버지, 할머니 부부가 기다리고 계셔서 몇 시에 시작하냐고 여쭈었더니 8시 반에 시작한다고 하였다. 그리고는 나보고 번호표를 뽑으면 바로 진료를 볼 수 있으니 뽑아 갔다가 시간 맞춰서 오라고 알려주셨다. 번호표를 뽑았더니 2번이었다.
근처 김밥집에서 카레덮밥을 먹고 편의점에서 군것질을 하고도 시간이 남아서 의원에 가서 기다렸다. 가니 어떤 할머니가 커피든 율무차든 뽑아 먹으라고 하셔서 커피를 하나 받아 들었다. 도시에서만 살다가 시골 인심이 느껴졌다.
내 진료 차례가 되어 진료를 봤고 X-ray에서 뼈나 인대의 문제는 없었다. 그리고 카운터로 갔는데 웬걸.. 엉덩이 주사를 맞으라는 것이었다. 종이쪽지를 하나 주는데 덱사도 적혀 있었다. 굳이 안 맞아도 되는데 싶었지만 오늘 라이딩도 있고 해서 그냥 맞았다. 약도 5일분이나 받았다.
그렇게 9시나 되어서 출발할 수 있었다. 1, 2일 차를 생각하니 약간 늦은 감은 있었지만 나는 산뜻한 기분으로 노래를 들으면서 출발했다. 오늘 감성은 김광석.
울진-영덕 구간은 1, 2일째보다 훨씬 수월했다. 대부분 바다를 끼고 가는 평평한 코스였고, 속도도 25km 정도는 나왔다. 영덕에 가까워졌을 때 오르막이 좀 있었지만 이틀 동안 단련이 된 탓인지 할 만했다.
이 구간은 차들도 별로 없었고, 바다도 넓어서 탁 트인 기분을 만끽하면서 갈 수 있었다. 영덕에 잡은 숙소가 빡빡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거리가 잘 나와서 너무 짧은 것 아닌지 조금은 아쉬웠다. 포항 북쪽까지는 도달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숙소는 취소가 안 되었기 때문에 포기하고, 쉬엄쉬엄 겨울 바다를 음미하며 천천히 달렸다. 쉬는 시간까지 포함해서 총 6시간 정도 걸렸으니 자전거 초보인 나에게도 평탄한 코스였던 것이다.
오산, 망양, 기선, 월송을 지나 후포리에 도착. 이어서 금곡, 병곡, 대진, 오보를 지나니 영덕이 나왔다. 대부분의 마을들은 편의점도 없는 한적한 어촌이었고, 좋은 점은 해변마다 화장실이 있어 언제라도 편하게 갈 수 있다는 점이었다.
중간에 점심시간이 되었는데 딱히 배가 고프지 않아서 물과 음료수만 먹으면서 계속 달렸다. 그리고 도착한 영덕. 영덕은 주말이라 그런지 어찌나 사람과 차가 많은지. 대게를 먹으러 온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자전거가 갈 수 있는 공간도 별로 없었다.
영덕 숙소에 도착하여 짐을 풀고, 늦은 점심 겸 저녁을 먹었다. 사장님이 구수한 느낌으로 응대를 해 주셨다. 자전거는 창고에 넣었고, 컵라면이랑 음료수는 원하는 대로 먹을 수 있는 구조였다. 방은 작았지만 아늑하니 딱 좋았다. 어설프게 침대가 있는 것보다도 온돌로 편하게 되어 있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씻으면 못 나갈 것 같아서 식사를 먼저 하기로 하였다. 주변을 다니다가 한 식당에 들어갔고, 1인으로 먹을 수 있는 메뉴는 물회와 회덮밥밖에 없다고 하셔서 나오려고 했다가 회덮밥에 매운탕이 나온다고 하셔서 먹기로 하였다.
피로도 풀 겸 천천히 영화를 보면서 먹었다. 만 원 치고는 꽤나 괜찮은 구성이었다. 회도 충분히 있었다. 밥을 먹고 내일 아침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숙소 바로 옆에 있는 김밥집에 물었더니 5시부터 김밥, 라면은 먹을 수 있다고 하여 편의점에서는 저녁에 먹을 것만 사서 왔다.
숙소에서 씻고 내일 이후의 거리와 일정을 봤더니 1. 포항-경주-울산-양산-부산으로 200km 이상 되는 거리를 2일에 끊어서 가는 방법. 그리고 2. 양산까지 지름길로 가면 130km 정도 되니 하루에 양산까지 가서 양산에서 지하철로 부산까지 이동하는 방법이 있었다. 나는 2번이 당겼고, 그렇게 되면 4일에 속초-부산을 끝낼 수 있었다. 봄에 열리는 그란폰도가 120km 정도 되니 연습도 할 겸 마지막 날을 양산까지 가기로 결정하였다.
먼 길을 가야 하니 술은 맥주 한 캔만!!
어제오늘 여행을 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 지나간 안 좋은 일은 빨리 잊고 다시 오늘을 살아야 한다는 것. 바퀴가 터져서 예상치 못한 지출과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 점 때문에 기분이 안 좋았지만, 그것이 다음 날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더 안 좋다는 것. 자전거를 타다 360도 회전한 일도 마찬가지. 내가 왜 그랬을까 싶고, 어깨도 아프지만 오늘이 되면 어제는 잊고 오늘을 사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이다.
인간관계도 일도, 사랑도 마찬가지. 이미 지나간 일에 너무 마음을 두고, 헤어 나오지 못한다면 아무 죄도 없고 상쾌하게 출발할 수 있는 내일과 미래에 먹구름이 드리운다는 것. 이것은 여러모로 좋지 않다.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인생이 인생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무슨 일이든 일어나는 게 정상이고, 일이 있어야 진정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 자전거 여행을 하면서 아무 일도 없는 날만 지난다면 기억할 것도, 추억도, 글 쓸 것도 없이 의미 없는 여행이 되기 때문이다. 어떤 일이든 정면으로 받아들이고, 일이 오히려 안 생긴다면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인생을 한탄하라. 그리고 절대 내일에게 어제의 아픈 과거를 내어 주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