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로 한국 한 바퀴] 6. 사천-순천-보성

by 은도진


아침에 일어나니 다행히 어깨가 많이 아프지 않았다. 진통제 영향도 있겠지만 크게 잘못될 조짐은 없었다. 어제 남은 탕수육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출발했다.



오늘은 내일 일정을 고려해 보성까지 130km 정도는 가야 하는 일정. 원래 부산에서 목포로 바로 찍으면 부산-진주-광주를 거치는 경로로 나오고, 짧은 코스로 찍어도 나주 쪽으로 가는 경로가 나오는데 나는 한국을 한 바퀴 돈다는 의미로 시작한 것이니 좀 더 크게 돌고 싶었다. 그래서 최대한 바닷가 쪽으로 붙은 경로를 선택하다 보니 순천, 보성 쪽으로 가게 되었다.



가는 도중에 해 뜨는 것도 보며 분위기 있게 갔다. 어제는 산이 많아서 힘들었는데, 오늘은 산은 별로 없지만 도로가 많아서 약간 위험하긴 했다. 그리고 큰 다리를 몇 개 건넜는데 좀 위험하긴 했지만 다리 위에서 보는 바다 풍경은 환상적이었다.



어제의 피로 때문인지 몸은 좀 무거웠고, 맞바람이 자주 불었기 때문에 속도는 많이 나지 않았다. 어떻게 하다가 자전거 여행까지 하게 되었을까. 자전거를 타고 가다 보면 경치 구경도 하고 여러 생각을 하기도 하고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하지만, 오늘은 신기하게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지,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는 상태를 경험하게 되었다. 일종의 무아지경에 이른 것이다. 도보 여행을 할 때도 아무 생각 없이 걷는 경우가 많는데 그것과도 조금 다른 경험이었다.



최근에 한 유튜버의 여행 영상을 보고 있는데 나도 어릴 때 여행을 했더라면 그렇게 세계 곳곳을 다니고 오지 여행을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여행을 많이 안 한 것은 아니지만 학업도 있었고, 직장도 있었고, 여러 가지 사정들이 있어 단회에 그치는 여행들이라 진정으로 여행을 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그런데 여행을 좀 하고 보니 사람 사는 게 다 비슷비슷하고 굳이 멀리 다른 나라를 가지 않더라도 여행의 본질은 어디서나 경험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고, 한국에서의 여행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제는 해외여행에 대한 갈증도 심하지는 않고, 당장 그런 기회도 없으니 이렇게 다니는 것이다. (아프리카, 남극 등 오지는 좀 더 가 보고 싶다.)



좀 더 가다 보니 하동이 나왔고, 아직 오전인데도 몸이 지치고 옷이 땀으로 젖어서 춥기도 하였다. 그래서 아침은 탕수육으로 먹었지만 열 시가 좀 넘은 시점에서 어느 마을의 재첩국 집을 보고 그냥 지나갈 수 없었다. 그래 오늘은 4끼다!



난로에 옷을 말리면서 재첩국 한 상을 받았다. 몸도 녹고 배도 차니 다시 살 것 같았다. 자전거를 타다가 지친 상태에서 이런 맛집들을 발견하는 것도 자전거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한다.



조금 더 가니 광양이 나왔다. 공장의 연기와 큰 트럭들이 광양의 존재를 말해주고 있었다.



중간중간에 자전거를 세워 두고 쉬었는데 쉬는 횟수가 전날보다 훨씬 많았다. 속초-부산에서도 둘째 날이 몸이 무거웠는데 비슷한 느낌이었다. 쉬면서 멍 때리기도 하고, 혼자 존재하고 있음을 느끼기도 하였다.



광양에는 잘 만들어진 자전거 도로도 있었는데 중고등학생들이 내 자전거에 관심을 보이면서 가격을 묻기도 하고, 프레임을 두드려봐도 되냐고 하기도 하였다. 남학생들의 표정을 보니 정말 순수하게 로드 자전거를 사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초등학교 때 고물 자전거를 타다가 이후 중고등학교 때는 자전거랑 멀어졌는데, 학생들을 보니 그 시절이 생각났다.



순천을 지나 2시가 넘자 다시 몸에 기운이 빠지면서 배가 고팠다. 역시 오늘은 4끼다.. 마침 가는 길에 별량면이 있어서 식당을 찾다가 정식을 괜찮게 하는 곳을 발견했다.



계란은 셀프로 만들었고, 만원의 행복 같은 한 상이었다. 사장님이 계란을 어쩜 그렇게 이쁘게 잘 구웠냐며 칭찬을 하셨고, 내가 반찬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그릇을 다 비우니 어쩜 그렇게 잘 먹냐면서 또 칭찬을 하셨다.


늦은 점심을 먹고 나니 다시 힘이 생겼고, 이후에는 아름다운 농촌 풍경이 펼쳐졌다. 마을 주변에 기찻길이 있었는데 요즘은 보기 드문 풍경이었다.



어릴 때 할머니댁 근처에 기차가 지나가면 정지 신호가 들어오면서 차단봉이 내려가는 걸 매일 같이 봤었는데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나면서 다시 오지 않을 그 시절과 할머니 생각에 울컥했다.



벌교가 곧 나왔고, 시내 쪽은 꼬막 식당들과 사람들로 붐볐다.



벌교 이후로는 끝없이 도로가 이어졌다.



갓길 공간이 대부분 좁았기 때문에 위험했다. 30cm 정도 되는 폭 안에서 자전거를 타려니 계속 집중을 해야 했고 차들은 매우 빠른 속도로 지나갔기 때문에 휘청거리는 경우도 있었다.



다행히 사고는 없었고 해가 저물 때쯤에 보성에 도착했다. 모텔은 시내에서 약간 떨어져 있는 곳에 있었기 때문에 맥주와 안줏거리를 사러 자전거를 타고 다시 나갔는데 편의점 주인이 어디서부터 오는 거냐고 물어서 부산에서 출발한 지 2일이 되었다고 하니 2일 만에 올 수 있는 거리냐며 놀라워했다. 나의 여행을 응원해 주며 훈훈하게 계산을 했다.



오늘의 마지막 끼니는 치킨과 감튀. 4끼를 먹어도 자전거를 많이 타서 그런지 살은 전혀 안 찌고 근육이 단단해지는 것이 실시간으로 눈에 보여서 만족스러웠다. 어깨는 좀 뻐근하고 아프긴 했지만 내일 목포까지 가면 끝이고 다시 쉬면 괜찮아지겠지 하며 하루를 마무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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