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나서는 순간

건물에도 어떤 에너지가 있는 것일까?

by 해날

돌이켜봐도 난 내가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 몰랐던 것 같다.

난 그 직업을 좋아했다. 회사에 가는 것이 즐거웠다. 글감을 수집하고, 엄선하여 정리하고, 글과 관련된 문제를 만드는 것은 이미 기획된 디자인에 따르는 것이었기에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기획 단계도 재밌었다. 어떤 글을 고를 것인지, 어떤 문제가 가장 효율적인지, 몇 권으로 만들 것인지, 서로 의견을 내고 조율해서 결정했다. 영어교재를 만드는 일이었다. 내가 맡은 프로젝트는 그중에서도 논픽션 글을 활용한 교재였다. 영어 공부와 함께 다양한 정보와 지식도 배울 수 있도록 기획했다.


만드는 과정에 팀원 둘이 육아휴직에 들어가서 나와 다른 팀원 둘만 남았지만, 팀이 하나 더 있으니 피드백이나 리뷰를 받기에는 충분했다. 매일같이 글감을 다듬고, 문제를 만들고, 단어장을 정리했다. 다른 프로젝트의 리뷰를 했고 피드백을 공유했다. 다행히 대학교 때 언어학 수업을 부전공을 신청할 만큼 들어둔 것이 도움이 많이 되었다. 영어를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되는 것이 흥미로웠다. 이런 일이라면 평생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나의 위장은 즐겁지 않았던 것 같다.

아침이면 부글부글 화를 냈고, 가끔은 날카롭게 찌르기도 했다. 주말에도 배가 쥐어짜듯 아파서 약을 먹어야 했다. 쉬는 날에 아픈 것이 그저 서글펐는데, 누군가 알아챈 패턴으로는 내가 일요일 저녁마다 약을 먹었다더라. 생각해 보니 몇 주 동안 연속으로 약을 먹었었다. 처음에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가 하는 일을 너무 좋아하고 있는데 왜 몸이 아픈 걸까? 생각 끝에 내가 얻은 답은 내가 믿고 따를 혹은 의지할 사람이 없었다는 거였다.


그 당시 팀에는 나를 포함해 막내 둘만 있었다. 덕분에 프로젝트를 이끌어갈 기회를 얻었고, 그 과정은 매우 즐거웠지만 난 잘하고 있다는 확신이 없었다. 문제없이 진행되고 있었지만 그걸로는 충분하지 않았던 것 같다. 마치 섬처럼 혼자 진행하는 느낌에 부담감이 높았던 것 같다. 프로젝트는 무사히 마무리되었고, 책은 출간되었지만 다음 프로젝트를 진행할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속된 말로 '하얗게 불살라진 상태'가 되어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할 에너지가 없었다. 어떤 연료도 남기지 않고 태워버린 것은 나의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작은 불씨가 살아있는 숯이라도 잡고 있었어야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아마도 그 회사를 다니던 어느 금요일에 느꼈던 잊히지 않는 해방감이 모든 것을 태워버리게 된 시작점일 것이다. 그날은 내가 더 가라앉을 곳이 없도록 지하로 내려가 있어서, 하루 종일 섬세한 입사동기가 나를 계속 걱정했었다. 내 상태를 계속 물어주고 퇴근 후에 맛있는 것을 먹으러가 가자고 위로를 해줬는데 온종일 내 기운은 올라오지 않았다. 그날도 야근을 하고 동기와 함께 퇴근을 하는 길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면서도 물 먹은 솜처럼 쳐져있어서 집에 가서 잠이나 자야겠다고 말하던 중이었다. 적막감이 맴도는 로비에서 경비아저씨께 인사를 하고, 회사의 정문을 지나는 순간 마치 자기장을 지나가는 듯한 느낌이 온몸을 지나갔다. 무슨 효과인지 아직도 알 수가 없다. 그전 후로 같은 것을 느껴본 적이 없다. 무언가가 온몸을 훑고 지나가면서 밖으로 나왔는데 내 기분은 바로 좋아졌다. 너무 신기해서 정문을 돌아봤지만 이상한 점은 없었다. 억압에서 풀려난 자유의 에너지였을까? 동기는 바로 밝아진 나를 보며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이제야 웃네!"

"그러게!"

우리는 깔깔 웃으며 뭘 먹으러 갈지 얘기하기 시작했다. 늦은 저녁 공기가 상쾌했다.


그 후로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정문을 나서던 그 순간의 느낌은 여전히 신기한 경험으로 남아있다. 난 나의 경력에 이 직업과 이 회사가 있는 것이 좋다. 미스터리한 이 금요일의 기억도 좋다. 마치 폐쇄공포증에 걸릴 것처럼 갇혀있는 기분에 괴로운 날도 있었고, 손발이 잘린 사람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 자신에 답답해서 소리 없이 비명을 질렀던 날도 있었다. '무능함'의 끝을 보기도 했고, 이기심의 최대치도 본 것 같다. 근데도 왜 좋냐고 물어본다면 아마도 '내가 겪어낸 나의 시간이라서'라고 대답할 것 같다. 감정이 널을 뛰고 철학서를 쓸 수 있을 만큼 논리력을 시험하던 날들이었는데, 아주 흥미로운 날들이었고 내 역사의 한 챕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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