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에 보이는 곳에 있는 것으로 주는 힘이란?
3시쯤 되면 집 앞 길에 차들이 늘어난다.
길 건너에 있는 초등학교에서 애들을 픽업해 가야 하기 때문이다. 스쿨버스가 주차장에 있는 걸 봤었는데 애들을 데려다주고 데리고 오는 것은 본 적이 없다. 작은 학교라서 부모님들이 직접 하는 것 같다. 3시에 차들의 파도가 한차례 지나가면 다시 도로는 조용해진다. 적막함은 한 시간이 조금 넘게 지속되다가 서서히 다시 풀린다.
초등학교와 함께 있는 데이케어는 6시까지 한다. 4시 반쯤부터 차가 들락날락하면서 보호자들은 애들을 데리고 집에 간다. 운전하고 오는 어른들에게서는 피곤함이 엿보이지만 에너지 가득한 아이들을 보며 슬며시 웃음 짓는다. 데이케어에서 일하던 어느 날 문득 어떤 생각을 떠올리게 되었는데, 그 생각과 함께 난 양육이 정말 사랑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는 확신이 들었었다. 그 생각은 '내가 이 아이들 중에 하나를 데리고 퇴근할 수 있을까?'였다. 아이들은 보호자가 데리러 오면 다른 모드가 된다. 데이케어에서 말 잘 듣는 아이 모드가 아니라 약간의 땡깡 모드라고 해야 할까? 공동체 생활에서 알게 모르게 억눌린 에너지를 표출하겠다는 각오가 들어가는 것 같다. 데이케어에서는 잘 먹던 채소도 집에서는 흥정을 한다고 들었다. 보호자들은 그렇게 새로운 에너지가 충전된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향한다.
텅 빈 도로가 다시 채워지는 여름날들이 있다. 어딜 봐도 초록초록한 여름에는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 초록 벌판을 누비는 축구팀이 온다. 6시 반쯤부터 아이들은 허벅지까지 덮는 큰 티셔츠를 입고, 보호자들은 캠핑 의자와 아이스박스를 들고 모이기 시작한다. 넓은 벌판에는 이미 하얀색 페인트로 그려진 박스가 있다. 여름 날씨에 잔디는 무럭무럭 자라고, 잔디를 깎아 페인트가 지워지면 계속 다시 그린다. 예전에 주말에 오던 축구팀은 4세 미만이었던 것 같은데, 티셔츠가 치마같이 크고 축구공이 무릎까지 올라올 듯했었다. 그저 공을 쫓아 뛰기만 하는 그 연습 시간 동안 아이들이 어찌나 귀엽던지.
오늘은 날씨도 선선해서 축구연습하기 딱 좋아 보였다.
거의 2시간을 머물다 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가족들이 존재 자체로 서로를 응원하는 문화에 대해 생각해 봤다. 말과 글로 하는 응원은 익숙한데 무언가를 하는 나의 모습을 지켜봐 준다는 건 보통 어떤 행사 때만 있었던 것 같아서 난 좀 어색할 것 같다.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경험했다면 누군가 항상 나를 위해 세상 어딘가에서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지 않았을까? 마음으로 빌어주는 것도 무척이나 소중한 일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런 종류의 존재의 힘은 어떤 힘을 발휘하는지 궁금해지는 저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