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인들에게 전하는 감사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 말에 이런 증명도 가능하지 않을까?

by 해날

지구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변하지 않는 것들에 대한 왠지 모를 감사함이 생기는 것을 느낀다. 아마도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는 말 때문인 것 같다. 다가올 시간이 언젠가부터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되고, 정신없이 지나는 현재는 항상 지나야 해석할 수 있으며, 지나간 시간은 아쉬움과 그리움이 된다. 물론 모든 사람이 이렇지는 않을 거다. 미래를 계획하고, 현재를 즐기며, 과거를 미련 없이 놔주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을 거다, 참 부러운 사람들.


부러운 그 사람들도 '그때 좋았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 아닐까? 그럴 때마다 변하지 않고 그대로 존재해 주는 다양한 대상에 대한 감사함이 생긴다. 건물이나 인테리어는 변하지만, 맛이 변하지 않는 식당은 보물 같은 곳이다. 처음 먹었을 때 나를 불태웠던 해주냉면처럼 여전히 나에게 익숙한 예전 식당의 모습을 불러오는 곳들이 있다. 이름을 빼앗겨 명동교자가 된 명동칼국수, 지금은 휴게소 같은 건물이지만 한옥을 불러오는 옥천 냉면... 흠, 국수집들이 보통 오래가나 보다. 오랜 벗과 같이 가던 부대찌개집은 없어졌지만, 새콤한 샐러드와 낙지볶음, 오징어 튀김을 먹던 곳은 남아있어 감사하게도 여전히 추억여행을 직접 하는 것이 가능하다. '맛집'이라는 단어가 대중적이 되기 전에도 빙글빙글 줄 서서 먹던 곳이니 많은 사람들이 우리처럼 시간을 거슬러 가지 않을까?


인간의 기억에는 감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재료표가 달려있는 것 같다. 우리의 오감이 그 표에 쓰여있는 대로 눌리면 시간여행이라는 초능력이 발현된다. 바다라는 사회에 나온 연어가 다시 강을 거슬러 가듯이 감각이라는 회로를 타고 기억들이 오랫동안 저장되는 곳으로 간다. 너무 오랫동안 찾지 않아 아카이빙 초기에 저장되어 있는 그 기억은 순식간에 추억이라는 이름을 달고 재생된다. 재료표가 빨간색인 위험한 기억에 닿는 길과는 다른 길이다. 이 길은 차들이 쌩쌩 달리는 그런 길이 아니라 발걸음 가볍게 춤추듯 팔랑거릴 수 있는 그런 익숙한 동네 골목길이다. 포근함과 따뜻함이 느껴지는 그런 온도이다.


아마도 그 추억들은 '나에게 일어나는 일'이란 제목으로 아카이빙 되기 시작했다가 육하원칙에 충실하게 맥락들이 생기면서 내가 사는 세상에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는가 보다. 내가 이 세상에서 경험한 것들이 추억이 되고, 그 세상이 비슷하게 유지가 되어야 그 추억을 감사하게 업데이트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니 말이다. 세상이라는 무대가 있어야 그 안에서 일도 하고, 공부도 하고, 친구와 맛집도 갈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감사함을 빚지고 사는 것 같다. 같은 시대를 함께 살며 서로에게 즐거움을 주고, 믿음을 지키고, 행복의 순간을 선물한다. 참 감사한 일이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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