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도 수고했어.
나잇값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어떤 특정 나이가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고 있는 어떤 상식, 지식, 예의 등에 너무나도 어긋나는 말과 행동을 할 때 '나잇값 좀 하라'라는 핀잔을 듣는다. 당연히 모두 알고 있는 어떤 개념을 모르거나 무시하면 나잇값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어른이 아이 같은 행동을 할 때도 들을 수 있다. 비슷한 말로는 '철 좀 들어라'가 있다.
나이에는 어떤 값이 있는 걸까?
잠시 상상을 해보자.
어떤 남자가 스무 살에 알 수 없는 이유로 혼수상태가 되어 식물인간 상태로 40년을 보냈다. 예순이 되어서 깨어난 이 남자는 스무 살의 정신연령이기에 스무 살처럼 옷을 입고 다닌다. 말하는 것도 먹는 것도 스무 살처럼 한다. 이 남자는 스무 살과 가깝게 느끼겠지만, 스무 살의 사람들은 예순이 된 남자와 친구가 될 수 있을까? 특별한 인연을 만나 우정을 나눌 수도 있겠지만 쉽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이 세상에 머문 시간으로 나이를 말한다.
물론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다른 나잇대를 살고 있을 수 있지만 한 사람의 나이를 말할 때는 하나만 고려한다. 그가 이 세상에 한 사람으로 태어난 지 얼마나 지났는지, 단지 그거 하나뿐이다.
'그게 뭐라고?'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저 가만히 있어도 시간은 흐르는데...?!'
과연 그럴까? 시간이 흐르는 것이 정말 가만히 있어도 일어나는 일일까?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순간이 죽음과 얼마나 가까운지 매 순간 느끼며 사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우리가 느끼던 아니던 실은 그 차이는 겨우 한순간이다.
우리가 사는 모든 시간은 '죽음을 유예하는 시간'인 것이다.
그러니 삶은 매 순간이 소중한 것이고 그 시간을 살아낸 시간에는 실은 엄청난 '값'이 있는 것이다.
그저 두어도 엄청난 값을 하는 그 시간에 무언가를 얹어 더 높은 값어치를 만들려고 애쓰고 있으니 우리의 삶은 고단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어느 날
하루의 끝에 다다른 시간에 대체 뭐가 이렇게 힘든 건지 삶은 원래 기본 값이 힘든 건지...
지치고 힘든 순간이 찾아온다면,
'내가 너무 높은 곳에 올려놓고 싶은 것이 있어 하루 종일 까치발을 들었다 놨다 하느라 힘들었구나' 그렇게 하루 종일 애쓴 자신을 토닥토닥 위로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