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는 벽

단단할 때 보다 오히려 더 두려워

by 해날

가끔 사방이 벽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


그러니까 난...

... 난 폭풍의 눈에 서있는 거야.

이곳은 반경 1미터? 길어봤자 1.5미터 정도의 작은 원이지만 세상 그 어디보다 고요하고 조용해.

일어서 있거나, 쪼그리고 앉거나, 겨우 새우잠을 잘 수 있는 공간이지만 그 누구도 침범하지는 못해. 거대한 폭풍의 소용돌이가 벽이 되어 둘러싸고 있거든. 그걸 뚫고 들어올만한 사람은 없지.

마찬가지로 나갈 수도 없지만 말이야.


그럼 난 그저 가만히 기다리는 거야.

폭풍에 휩쓸려 사라지는 모든 파괴된 물체들을 목격하면서도 그저 쪼그리고 앉아있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거든. 원을 벗어나면 나도 그 폭풍의 힘에 휘둘려 어디론가 날아가겠지. 갈기갈기 찢겨질지도 몰라. 아니면 날아다니는 다른 물체에 가격 당할지도 모르지. 목숨을 잃을지도 몰라. 그래서 사방을 살피다가 다시 중앙으로 가서 쪼그려 앉게 돼.


근데 어느 날 그 폭풍이 굴곡지는 모습을 본 거야. 바람에 커튼이 흔들리듯이 물결을 만들어 움직이기 시작하니까 사방이 단단한 벽이라 느껴질 때보다 더 두려워졌어. 차라리 단단한 벽처럼 보일 때 부숴볼걸. 마치 생명을 얻은 듯 움직이니까 나를 잡아먹을 것처럼 보이잖아.


그러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어.

이대로 있다가 폭풍이 미쳐 날뛰어 나를 덮치면 어차피 난 소멸되겠구나.

이대로 기다리면서 시들어가도 한순간에 잡아 먹히는 것은 같은데 그전에 내 의지로 끝내는 것이 나은 게 아닐까? 휩쓸려 날아가다 혹시 삶이 끝나더라도 그건 내가 선택하는 끝이니 덜 서글프지 않을까?

참고 기다려야 하는 걸까?

모험을 해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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