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말했다.
언어학자가 되고 싶었던 순간이 있었다.
사람의 성격, 무의식, 트라우마, 발달과 성장 등등 오랜 시간 나의 관심사는 심리학 안에 많이 머물렀지만, 이건 일방적인 구애에 가까웠다. 심리학 개론, 연구방법론, 사회심리학, 발달심리학을 거쳐 인지심리학쯤에 이르러야 겨우 상호교류가 가능해진 느낌이었다. 아마 인지과학을 더 일찍 알았다면 심리학에게 그리 오랫동안 목 메지 않았을 거다. 그렇게 오랜 시간 심리학을 접했음에도 우리 관계는 아직까지도 일방적이라 애달픈 짝사랑 같다.
언어학 수업을 들었을 때는 달랐다. 항상 모자람을 느꼈던 나의 능력치가 저절로 솟구쳐 올랐다. '공부가 이렇게 재밌을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한 과목이었다. 영어가 모어가 아니기에 '언어'라는 말이 붙으면 우선은 '벽'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그래서 거의 모든 개론 수업을 다 들었어도 언어학은 계속 피했었다. 나의 평생의 숙적인 영어는 아무리 노력해도 미지의 영역이 있었다. 혼자 이리저리 고민하며 한국어와 영어의 다른 점, 영어만의 특성을 고민했다. 잠깐 배웠던 일본어와 눈으로 아는 프랑스어까지 언어는 항상 알쏭달쏭했다. 근데 그동안 미로를 헤매며 익혔던 자잘한 것들이 모두 이론으로 정리되어 내 눈앞에 펼쳐져 있으니 얼마나 재미있었겠는가. 언어학에 대한 재미 덕분에 덩달아 전공 공부도 재밌어져서 무사히 대학을 졸업할 학점을 채우고 있을 마지막 학년에 시간을 좀 더 투자하여 언어학을 전공할까 고민하게 되었다.
결론적으로는 오히려 '미래'를 생각한답시고 조사하다가 부전공까지만 하고 졸업했다. 알아본 결과 언어학은 소위말하는 '돈 되는 전공'이 아니었다. 난 이미 그런 전공을 택한 사람이었기에 심리학 하나만으로도 부담스러웠다. 행복은 나누면 두 배이고 고통은 나누면 반이 된다고 했지만, 대학원까지 가야지 현장에서 쓸 수 있는 전공 둘은 나눗셈이 아니라 곱셈처럼 느껴졌다. 나름대로 적성검사와 직업상담 등 학교에서 찾을 수 있는 지원을 거쳐서 조사해 봤지만, 난 선생님을 하고 싶지도 않았고, 저널리스트는 직업 선택지에 있지도 않았고, 대학원을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OO은 전망이 어둡다.
OO은 돈이 안된다.
OO은 사라질 분야다.
사회인이 되려면 이런 뉴스에 귀 기울이며 살아야 하는 줄 알았다. 세상에 맞춰서 나를 단련하고 교육하여 험한 세상에 잘 적응하고 어려움을 헤치며 살아야 한다고 믿었다. 나의 적성과 얼마나 맞는지, 나는 어떤 성향을 갖고 있는지, 나의 재능은 어디에 있는지, OO을 전공하면 어떤 직업을 갖는지 그런 얘기들을 참고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틀린 분석은 아니었을 거다. 지금 한다고 해도 비슷하게 나올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같은 맥락으로 그때도 지금도 난 언어학이 좋다. 그래서인지 난 선생님 자리에 몇 년 동안 있었고, 기사를 쓰거나 감수하는 일을 했고, 결국 대학원을 갔다. 하하핫.
시대는 변하고, 언어학은 AI 분야 어딘가에서 잘 활용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 '마음이 시키는 일을 해'라고 말하면 자기 자신을 믿고 용기를 내라는 뜻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의미 외에 다른 이유도 있는 것 같다. 내 마음이 하는 말을 잘 들어야 하는 이유는 그 마음이라는 것은 잘 변하지 않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리고, 그렇게 오래도록 변하지 않을 마음이라면 그 길을 가는 동안에 그 마음은 실은 엄청난 아군을 얻는 거다. 나를 단단하게 지탱해 주는 내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