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 차

증류가 된 걸까 아님 달달함을 뽑아낸 걸까?

by 해날

고구마와 닭가슴살.

이 둘은 체중 감량을 원하는 사람들의 주식처럼 알려져 있는데, 식이섬유가 너무 많은 고구마는 내 속이 좋아하지 않고 난 퍽퍽한 닭가슴살을 사랑하기에 난 이들을 주식으로 삼으면 살이 빠질 이유가 없다. 난 건강한 국민 간식인 옥수수, 감자, 고구마, 밤, 땅콩을 굳이 찾아먹지는 않는 편이다. 우선은 밥을 너무 좋아해서 간식을 먹을 배를 남겨두지 않는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이고, 먹고 나면 퍽퍽한 느낌이 드는 것 같아서 먹게 돼도 보통 흰 우유를 곁들인다.


나와는 반대로 부모님은 이 국민 간식들을 모두 좋아하신다.

요 몇 주 동안에는 엄마가 고구마에 빠지셔서 벌써 세 번 연속으로 고구마 뭉탱이를 사 오셨다. 맨 처음 사온 샛노란 꿀고구마 외에 두 번째, 세 번째는 자색고구마를 사 오셨다. 고구마는 모두 쪄서 먹었다. 해외에서는 휴대용 화로로 인기가 좋다는 동그란 찜기를 냄비에 넣고 깨끗하게 씻은 고구마를 올린 뒤 물을 조금 붓고 푹 익을 때까지 찌면 된다. 압력밥솥으로 찌는 것이 아니라서 그런지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었다. 엄마는 중간중간 젓가락으로 고구마를 찔러보면서 익힘 정도를 체크하셨다.


이런 종류의 기다림이 필요한 요리는 잠깐 한눈을 팔면 최상의 상태로 먹을 수가 없다. 두 번의 자색고구마 뭉탱이는 모두 이 안타까운 케이스였다. 우리의 조국인 한국의 정치 상황이 엄마의 집중력을 계속 공격하는 바람에 두 번 모두 숟가락으로도 퍼먹을 수 있는 상태의 고구마가 되었다. 난 이런 무른 상태를 더 좋아하기에 오히려 잘 되었다고 속으로 생각했지만, 엄마는 고구마의 상태를 이리저리 살펴보시면서 상당히 아쉬워하셨다.


"고구마가 단맛도 다 빠졌네..."라고 한입 베어문 고구마의 맛을 느끼며 찜기를 꺼내 익은 고구마를 정리하는 엄마 목소리에서 안타까움이 물씬 느껴졌다. 근데 얼마 뒤에 부엌에서 나오는 엄마는 왠지 모르게 들떠있었다. 눈이 마주치니 소녀처럼 웃기 시작했다. 무엇이 급작스런 분위기 전환을 불러온 건지 궁금해서 물어보니 냄비 아래에 달달한 자색 고구마 차가 만들어져 있다며 단맛이 다 빠져서 거기 들어가 있다고 하신다. 세 번째 뭉탱이도 의도치 않게 또 지나치게 익혀버려서 예쁜 보라색의 자색 고구마 차를 먹게 되었다. ㅎ


하얀 컵에 넣어 얼음까지 띄우니 일부러 만들었다고 할 만큼 근사한 음료수였다. 색도 곱고 맛도 달달한 고구마 맛이 그대로 느껴졌다. 자색 고구마 증류차라고 불러야 할까?

컵을 건네며 엄마가 말했다.

"정수기 물 부은 거야."

... 세 번째 뭉탱이는 혹시 일부러 푹푹 익힌 거 아니었을까?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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