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있니?

덕분에 내가 사람이 되었어.

by 해날

'난 그녀를 저장하지 못했어요.'

번역 오류로 유명한 문장이다. 아마도 번역하려던 영어문장은 "I couldn't save her"였거나 비슷한 말이었을 거다. 이 말과 비슷한 뜻으로는 "I've lost her"가 있다.

'난 그녀를 잃어버렸다.'

저장하지 못하고 잃어버린 파일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 이제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파일이다.


펫로스(Pet Loss)의 로스 loss가 이 맥락에 있다.

상실을 애도하는 말을 친한 사이에게 해야 할 때 'I'm sorry for your loss.'라는 말을 쓸 수 있다. 이 말에서 sorry는 미안하다는 뜻보다 유감이다/애석하다는 뜻일 거다. 너의 상실에 유감을 표한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 Loss라는 단어는 내가 한 어떤 일로 인해 생기는 결과가 아니라 비가 오고 해가 뜨는 것처럼 그저 일어나는 일로 느껴진다. 뭔가를 잃어버린다는 것은 실은 나의 의도는 아닌 거니까. 그런데도 나는 내가 그를 구하지 못한 것처럼 느꼈다.


맨 처음 2년 동안은 내 입으로 말하지 못했다. 안부를 물어도 잘 있다고 대답했다. 목메다는 느낌을 체감하는 순간들이었다. 누군가 이름을 말하는 순간 목의 울대 뒤로 순식간에 물덩어리 같은 것이 생겨서 목소리가 나오는 길을 바로 막아버렸다. 소리는 물을 뚫지 못하더라. 처음에는 잘 있다는 소리도 겨우 할 정도였다. 그래도 더 이상의 질문을 막아야 하니 일부러 웃으며 말했다. 2년이 지나고 나서 처음으로 친한 동생에게 말했다. 실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고.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질문에도 위로에도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이제는 한 번에 대여섯 문장은 말할 수 있다. '참 순했다. 오빠 같았다. 검은색 대형견이었다.' 그렇지만 이내 목소리가 물에 잠겨 멈추게 된다. 펫로스를 겪은 사람들은 대부분 '다시는 키우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별과 상실의 기억은 고통이니까. 사랑한 만큼 고통스러운지, 사랑해주지 못한 만큼 아픈 건지 모르겠다. 그저 아프다. 항상 그립고 보고 싶다. 잘해주지 못해서, 더 잘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슬퍼하는 것도 보고 있다면 슬퍼할까 봐 또 미안하다. 이럴 때는 그냥 감정만 느끼려고 애쓴다. 'OO 할걸..' 하는 생각은 감정을 증폭시키기에 일부러 멈추지만 슬퍼하는 감정이 드는 것은 그저 둔다. '상실'을 겪은 마음이 슬퍼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 않은가.


가끔 상상해 본다.

자신에게서 배운 사랑을 다른 개에게 주고 있는 나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장하다고 칭찬해 줄까? 진작 나에게도 잘하지라고 투정할까? 아님 질투할까? ㅎ

작가의 이전글움직이는 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