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준다는 것은 넘치는 것은 모자란 것보다 못하다를 되새겨야 하는 일
집에 온 지 며칠 지난 아침에 문을 열고 나오니 울집 네발 식구의 최애 장난감인 '토끼씨'가 문 앞에 있었다.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근데 나에게 토끼씨를 왜 줄까?' 하지만, 문 앞에서 갖고 놀기 위해 놔둔 거라고 하기에는 위치가 복도보다는 내 문 앞에 가까웠다. 그냥 내가 싫지는 않은 것은 확실한가 보다 하고 기분 좋게 받아들이고 넘겼다.
내가 한국에 있는 동안에 부모님 집으로 오게 되었기에 이 친구가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 난 없었던 식구였다. 무던한 친구는 아니라고 들어서 처음 집에 왔을 때 걱정했었다. 일 년에 2주 정도 머무는 것이 전부였어서 크게 친해질 계기도 없었다. 우리가 확 가까워진 사건은 이 친구가 산책을 갔다가 다쳐서 돌아왔을 때였다. 다람쥐를 쫓다가 나뭇가지에 피부가 걸려서 꼬메야 할 정도로 다쳤었다. 한 달 일정으로 왔었는데 아직 시차적응이 안 돼서 몽롱했을 때였다.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면서 근처 동물병원과 응급실을 뒤져서 전화를 돌렸다. 동물병원 응급실에 갔는데, 호흡곤란, 안면마비의 큰 개들이 실려와서 순서가 밀리는 와중에 온도가 떨어지는지 몸을 떨기 시작했다. 바로 다른 병원들에 전화해서 30분 거리의 병원으로 데리고 가서 긴급 수술을 진행했다. 그리고 2주 동안 매일 상처에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갈아주는 걸 도맡아 하면서 나를 점점 편하게 생각하는 것을 느꼈다.
그치만, 난 한국으로 가야 하는 사람이었다. 일부러 나보다는 부모님과 더 친해지도록 해야 했다. 진도의 피가 있는 친구라 더 조심했었다. 내가 원하는 만큼 다 주는 것은 오히려 상대방을 힘들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친구가 어떤 성향인지 알 수 없기에 의지하게 하고 사라지는 혼란을 주는 것보다 적당한 거리에 있는 것이 서로에게 좋을 거다. 그렇게 뜨뜻미지근하게 한 달을 보내고, 그다음에 다시 왔을 때 집에 들어서는 날 보고 짖었다.
이번에도 짖었다. 들어와서 신발을 벗을 때쯤에는 이미 알아보지만 현관 앞에서는 항상 짖는다. 몇 개월 만에 보는 것이니 어색할 수 있다. 금세 또 알아보고 애교를 피우고 달려가서 '토끼씨'를 가져온다. 예전에는 하얀 양 인형이었는데 얼굴이 없어져서 '토끼씨'로 바뀌었다. 다람쥐도 3마리가 있고, 테킬라 병도 하나 있고, 기린도 하나 있다. '토끼씨'는 그중에 제일 좋아하는 인형이다. 작은 입에 몸통이 쏙 들어가서 그런 것 같다.
어젯밤에 잘 준비를 위해 문을 열었더니 '토끼씨'가 또 내 방문 앞에 있었다. 요새 자기 전 먹는 덴탈스틱을 내 방에서 주는데 물물교환을 위해 가져왔나 보다. 인형을 집어 들었더니 어디선가 나타나서 발라당 배를 보여주며 누웠다. 반짝거리는 눈빛에 실컷 쓰다듬어 주고 덴탈스틱을 줬다. 마음을 줄 때는 잘 받아줘야 그 마음이 지속되는 것 같다. 소중한 '토끼씨'를 받았으니 나도 열심히 쓰다듬어 준다. 앞발로 더 해달라고 하는 요청이 멈출 때까지 팔이 아파도 살살 부드럽게.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