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마 3가지 정도의 자아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1. 내가 싫어하는, 또는 되고 싶지 않은 자아 2. 현실에서의 자아 3. 이상적인, 내가 되고 싶은 자아.
한국에서 살다가 외국에 오게 되면 새로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언어, 문화가 다를수록 그 격차는 더욱 심하다. 한국에서는 한국말을 완벽하게 구사할 수 있고 내 문화의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편하고 익숙하다. (사람마다 개인차를 감안하더라도.) 그러나 외국에 살게 되면 내가 보고 싶지 않은 나의 모습을 계속해서 마주하게 된다.
아무리 영어를 잘하더라도 어렸을 때 배운 모국어가 아니라면 사소한 문법 실수를 하거나 미묘한 뉘앙스를 못 알아먹기도 하고, 문화가 익숙지 않아 의사소통의 오해 또는 사람들을 사귀는 데 있어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그 나라의 시스템이나 행정을 잘 몰라 사기를 당하거나 손해를 보기도 한다.
내가 영국, 스웨덴에서 유학 경험 없이 (달리 말하면 그 나라의 언어와 문화를 배울 충분한 시간 없이) 스웨덴인, 영국인들로만 구성된 회사를 다니면서 가장 어려웠던 건 이런 나의 못난 모습을 계속해서 마주해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너무나 잘난 내가 되고 싶었다. 영어를 멋지게 구사하며 프리젠테이션을 잘하는 나. 다양한 국적의 동료들과 무리 없이 의사소통하며 친밀하게 교류하는 나. 외국에서 멋진 커리어를 가지고 승승장구하는 나. 그래서 항상 회사에 들어가면 무리를 했다. 동료들과 친해지려고 점심을 매번 같이 먹으려 하고 소셜 미팅에는 빠지지 않았으며 무엇이든 120%를 노력했다. 일도 사회생활도 남들보다 양과 질, 두 배로 더 노력했다.
왜 그랬을까? 나는 그래야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 줄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 회사로 이직한 지 1년이 다돼가는 시점에서 나는 좀 다른 생각을 한다.
6개월 전 즈음부터 우리 팀에 새로운 프론트엔드 개발자가 들어왔다. J는 말 그대로 엄친아였다. 누구나 알만한 세계적인 대기업을 다니다 우리 회사에 입사를 했고, 잘생기고 키도 크며 사회성도 좋고 모두와도 잘 어울렸다. 안정적인 직업에 화목해 보이는 가정까지 이룬 그를 그야말로 모두가 좋아했다. 나는 성격이 내성적인 편이라 사람들과 친해지는데 시간이 걸리는 타입인데, J는 나보다 훨씬 늦게 팀에 합류했지만 이미 모든 팀원과 베프가 된 것 같았다.
(여러분의 상상력을 위해 사진을 첨부하자면 대충 이런 느낌으로 생겼다.) 인생에서 실패라곤 전혀 안 겪어봤을 것 같은 전형적인 white male처럼 생긴 내 동료..
연차가 쌓이며 내가 주니어에서 벗어나 시니어급의 일을 하기 시작하고 회사 내 맡은 일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레 J와 함께하는 시간도 많아졌다. 나에게 있어서 J는 정말 말 그대로 부담스러운 동료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디자이너와 개발자는 떼라면 뗄 수 없는 사이가 아니던가! 나는 정말 피하고 싶었지만 많은 시간 J와 미팅을 해야 했다. 내 디자인을 J에게 설명하고 기술적 피드백들을 듣고 가능성을 의논해가는 시간들이 너무 부담스러웠다. 이렇게 엄친아 같은 동료 앞에서 매번 발표를 해야 한다니. J가 내 디자인의 기술적 한계점 등을을 다른 이들 앞에서 지적할 때면 정말 쥐구멍에도 들어가 숨고 싶었다.
그러나 J는 내가 지금까지 일해온 다른 개발자들보다는 말을 좀 더 쉽게 풀어쓰는 편이었다. 어려운 개발 지식과 용어들을 쉽게, 그리고 천천히 설명시켜 주는 편이었고 (이것조차 완벽하다.) 그렇기에 J와 일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나는 어느 정도 J와 함께 일하는 것이 편안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일이 익숙해지던 즈음, 어느 날 J에게 메시지가 왔다. 우리가 원래 하기로 한 A 안이 어떤 이유로 가능하지 않아서 그에 대한 대안으로 B를 J가 제시한 것이다. 그러나 나는 J의 B 안이 맘에 들지 않았다. 이제 나는 예전보다 머리도 좀 컸고, 팀 내 영향력도 예전보다는 높아졌는데, 그래서 솔직한 내 의견과 여러 가지 점들을 지적하고 바꿔야 할 대안들을 이야기했다.
화상 화면으로 보이는 J의 표정은 뭔가 납득이 가지 않은 듯하고 아리송하기도 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한두 번 정도 이해가 가지 않았는지 내가 한 말을 반복해달라고 했다. 나는 그럴 때마다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렇게 1:1 미팅이 끝나고 나는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내 영어가 뭔가 이상했나? 내가 의사전달을 제대로 못했나? J는 이렇게 하기가 싫었는데 (또는 하기가 까다로운데) 내가 디자이너로서 너무 무리한 요구를 한 건가? 내가 뭔가 오해를 살만한 언어나 행동을 했나?
그러나 오후 늦게 시작된 미팅이었기에 나는 여느 때처럼 오후 5시가 되자마자 노트북을 껐고 그날 일은 까맣게 잊어버렸다. (내가 영국에서 새롭게 개발한 장점이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J에게 온 메시지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날 J는 밤늦게 야근을 해서 내 요구사항을 다 맞추어 완성본을 내게 보내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나를 부정적으로 생각하지도 않았고 내 의사를 그대로 존중해줬다. 그러나 메시지에 답장을 할 경황도 없이 나는 갑자기 몰아친 다른 업무를 급하게 처리해야 했고 그렇게 정신없이 일을 하고 있는데 오전 10시 반쯤 J에게서 또 다른 메시지가 왔다.
"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내 작업이 그렇게 좋진 않았나 봐 하하(멋쩍은 웃음)
나는 이 메시지를 보고 다른 의미로 충격을 받았다.저렇게 완벽해 보이는 사람도, 결국 남의 눈을 신경 쓰는구나! 다른 동료에게 자신의 작업이 어떻게 보일지 신경 쓰는구나. 내가 답장을 바로 안 하니까 왜 답이 안 오는지 걱정을 했었구나. 사실 자신은 어제 밤 늦게까지 야근을 해서 내가 자신이 보내준 작업에 반응해줬으면 했는데, 내가 답이 없으니 그게 신경이 쓰였구나.
이 일은 나에게 또 다른 사고의 전환을 가져왔다. 나는 나보다 좀 더 잘나거나 완벽한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을 우상화했다. 이 사람들은 나와는 다를 거야, 나 같은 실수를 하지 않을 거야, 그러면서 나의 부정적인 면들 (내가 싫어하는, 되고 싶지 않은 자아나 나의 현실적 자아)들을 더욱더 미워하고 자책했다. 그런데.. 그렇게 미워할 필요가 없었다. 모든 사람들은 단점과 불완전한 면을 다 갖고 있다.
이렇게 완벽해 보이는 사람들도 결국 남의눈을 신경 쓰는데. 내가 가진 단점이 뭐 그렇게 미워할 필요가 있나 싶기도 했다.
그래서 내가 J를 싫어하게 되었냐고? 아니다. 나는 완벽하게만 보이던 나의 직장동료 J가 인간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회사에서 인정받으려면 멋지고 잘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러나 회사에서는 동료들과 친해지고 그 안에서 네트워크를 쌓는 것도 능력 인정만큼 중요하다. 사람들은 너무 완벽하지만 피 한 방울 찔러도 안 나올 것 같은 사람보다는 약간 실수와 결점이 있더라도 같이 일하기 즐겁고 편안한 사람들을 선호한다. 그리고 그렇게 친해지려면 결국 나의 단점과 인간적인 모습들, 불완전한 모습을 노출시키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모르는 두 타인이 친해지는 데 있어서 100% 완벽하고 멋진 모습은 사실 필요가 없다. 사람들은 자신에 대한 자학 농담을 하기도 하고, 지난주에 있었던 개인적이고 웃긴 사소한 일들을 이야기하면서 친해진다. 사실 생각했던 것보다 우리는 회사에서 완벽해 보일 필요가 없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순간은 이 사람이 완벽해 보일 때가 아니라 이 사람도 결국 불완전한 인간이라는 것을 확인할 때이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나의 불완전한 면들을 좋아한다. 그러니 우리도 더 이상 우리의 불완전한 면들을 그만 미워하고 좀 받아들일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