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인정하자. 외향적인 성격이 커리어 성장엔 훨씬 이로운 면이 있다는 것을. 영국이든 스웨덴이든 한국이든, 네트워킹은 중요하다. 똑같은 미팅을 하더라도 나랑 커피 한 잔 마셔보고 좀 더 친한 사람들 앞에서 하는 것이 더 편하고 반응도 좋다. 일도 결국엔 사람이 하는 거라서, 아무리 공정하고 감정을 배제한 채 이성적으로 판단을 한다 해도 좀 더 친한 사람에게 마음이 더 가고 그로 인해 더 좋은 기회나 승진 가능성이 주어짐은 분명한 사실이다. 입사 시 동료 추천제도(referral)를 이용해 본 사람이라면 동료의 한마디가 취업/이직 시 가지는 파워에 대해서 이미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쩌지? 나는 뼛속부터 내향인이다. 예정되지 않은 급 약속이 제일 싫고, 갑자기 스무 명도 넘는 사람들 앞에서 하는 급 발표와 급 미팅은 더더욱 싫으며, 모르는 사람들과 30분마다 돌아가면서 호구조사를 해야 하는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시끄러운 파티보다 1:1이나 소그룹의 만남을 선호한다. 나와 친하지 않은 동료들 그룹에 갑자기 끼어 점심을 먹는 것이 고역스럽고 모르는 사람은 우선 충분한 시간을 들여 천천히 나의 영역에 들이는 것을 선호한다. 혼자 보내는 조용한 아침과 저녁을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침 새벽 공기를 느끼며 발코니에서 마시는 커피, 자기 전에 무드등 아래 고요함 속에서 읽는 10분간의 독서. 술을 진탕 마시고 친구들과 새벽 4시에 첫차를 타고 들어가는 것과 혼자 맛있는 걸 먹으면서 넷플릭스를 보는 걸 선택하라면, 나는 당연히 후자를 선택할 것이다.
아마 이런 사람들 많을 것이다. 네트워킹이 좋은 건 알겠는데, 근데 나는 뼛속까지 내향인이야. 근데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성공이나 커리어에 대한 욕심이 없는 것도 아니다. 시간에 따라 현재 위치에서 더 나은 위치로 가고 싶은 건 성격과 기질을 불문하고 누구나에게 있는 자연스러운 욕구이니까! 아아, 그런데 나는 오늘 저녁 동료들과 술 마시러 가기보다는 그냥 집에서 쉬고 싶고 오늘 점심은 그냥 좀 혼자 먹었으면 좋겠는데. 아아, 어쩌란 말이냐!
내향인이지만 영국에서 취업도 하고 싶고 비자도 받고 싶었던 나는 결국 '남'이 되는 걸 선택했다. 지난 회사에서 나는 참 다른 사람이 되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물론 당시엔 모든 것을 잘하고 싶은 사회초년생의 열정이라는 순수한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라 너무 그걸 미워하고 싶지는 않다만. 이전 글에도 적었다시피 나는 점심은 무조건 다른 사람들과 끼어서 같이 먹었고 (어느 날은 개발자들과, 어느 날은 디자이너들과, 어느 날은 비즈니스팀과 등등..) 굳이 안 해도 되는 미팅도 내가 자원해서 주도하고, 시키지 않은 일을 하겠다고 나서고, 매번 미팅에서 꼭 의견을 이야기하려고 애쓰고, 오후 4시에 누군가가 맥주 한잔 하자고 하면 무조건 나갔다.
그런데 생각보다 일이 그렇게 잘 되지 않았다. 아직도 발표는 불편했고, 미팅은 뭔가 매끄럽지 않았으며 이렇게 술을 마셨으면 동료들과 좀 많이 친해져야 될 때도 됐는데 아직도 거리감이 있는 느낌이었다.
아아, 그렇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느낀다. 이 사람이 정말 자신 스스로에 대해서 편하게 느끼는 지를. 아니면 자신의 본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게 두려워서 억지로 감추고, 다른 사람인척 하거나 뭔가를 과도하게 노력할 때의 그 부자연스러움과 어색함을.
내 예전 매니저는 동료들과 사적인 이야기를 한다거나, 같이 점심을 먹는다거나 술자리를 간다던가 하는 일이 단연코 한 차례도 없었다. 물론 미팅에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타인을 설득하는 논리력은 뛰어났지만 네트워킹은 일절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승진은 잘만 했고 지금도 영국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회사에 다니고 있다.
물론 내 매니저의 예는 좀 극단적인 예지만 (저렇게 하고도 인정받으려면 실력이 정말 월등하게 뛰어나야 한다.) 결국 말하고 싶은 것은, 그냥 자신이 그런 성격이면 그냥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내향인이어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편안히 받아들여야 한다. 타인이 되려고 한다는 것은 결국 자기 스스로에 대한 불만족과 불안감 (insecurity) 이 크다는 것을 의미하며, 가면을 쓴다는 건 결국 솔직하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된다는 것(Be yourself)은 무엇일까? 나는 지금 회사를 다니면서 깨우친 나의 마법의 주문이 있다.
"Relax and Be focused"
우선 나라는 사람의 기질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의 장점과 단점을 객관적으로 파악해 본다. 이때 그 어떤 가치판단도 하면 안 된다. 예시로 내가 내향적이라서 사람을 사귀기 힘들다던지 등등.. 사귀는데 오래 걸릴 뿐이지 사귀는 게 힘든 건 아니다. 모든 성격엔 장점과 단점이 있고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으며 자신의 장점을 극대화하고 단점을 최소화하는 사람만 있을 뿐이다.
내가 파악한 나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할때 긴장을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긴장을 하면 말이 엄청나게 빨라지는 경향이 있다. 그걸 우선 인정을 했다. 아, 나는 이런 사람이구나. 그런데 디자이너라면 디자인 발표는 피할 수가 없는데 (우리 회사에서는 매주 거의 3-4번은 하는 것 같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첫 번째, 심호흡을 한다. "Relax"
심호흡을 하는 건 뇌에 신호를 주는 것이다. 지금은 긴장할 필요가 없는 안전한 상황임을. 구석기시대 포식자를 보면 손발에 땀이 나고 심장이 빨라지게 내 유전자는 프로그램되어있지만 21세기의 나는 그저 컴퓨터 앞에 앉아있거나 그냥 사람들 앞에서 말만 하는 것뿐임을! 나에 대한 파악이 잘 이루어진 사람이라면 자신이 이런 미팅이나 사회적 상황에서 긴장을 한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물을 한잔 마신다던가 심호흡을 한다. 이때 충분히 시간을 들이는 게 중요하다. 심호흡은 가장 강력한 심신 안정법이다.
긴장이 풀리면 자신이 될 수 있다. 영국 회사에서 면접을 볼 때마다 "뭘 준비해야 하죠?" 라고 물으면 그토록 지겹게 돌아오던 대답. "Just be yourself." 긴장하지 말고 오버하지 말고 평소 본모습을 보여주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긴장을 하면 본모습을 보여줄 수가 없으니 우선 남 앞에서 말하는 게 떨리는 이들은 긴장을 풀어주는 것을 훈련해야 한다.
두 번째, 남의 말에 집중한다. "Be focused"
남의 앞에서 이야기할 때 긴장을 하는 이유는 사실 자의식이 강해서인 경우가 많다. 자의식이 높은 사람들은 통찰력도 좋고 자기 스스로에 대한 성찰과 반성도 많이 해서 장점도 많으나 자의식이 너무 높은 나머지 타인에게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지를 지나치게 신경 쓴다.
그런데 내가 이 미팅을 망쳐도 내 동료들은 그날 저녁이면 나를 까맣게 잊을 것이고 사람들은 알고 보면 다 자기 생각만 하기 바쁘다. 잘 보이고 싶으니 긴장이 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여러명의 앞에서 이야기할 때도 타인의 말에 집중하기보다는 타인의 눈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어떻게 보일 지를 계속 생각하고 신경 쓴다. 그러면 긴장이 더 될 수밖에 없다. 왜? 잘 보이고 싶은 욕구가 너무 강하기 때문이다!
타인이 하는 말에 진심으로 귀담아듣고 집중한다. 그러면 긴장이 덜 된다. 왜? 나는 타인의 말을 듣고 이해하고 생각하느라 내가 어떻게 보일지 생각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많은 내향인들은 타인의 말에 진심으로 경청하고 공감해주는 능력을 강점으로 가지고 있다. 사람들은 말을 많이 하는 사람들보다 잘 들어주는 사람을 좋아한다. 이 강점을 활용하자.
마지막으로 네트워킹. 이거는 그냥 시간이 해결해주는 것이다. 내향인들은 사람을 사귀는 데 있어서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리고 그건 내향인에게 자연스러운 것이다. 사람을 사귀는데 더 신중하고 오래 걸리는 만큼 관계의 질이 더 높을 확률도 높다. 그러니 억지로 많은 사람들과 빠르게 친해지려고 하기보다는 (그러면 상대방도 어색함과 불편함을 느낀다.) 그냥 내가 사람을 사귀는데 시간이 많이 걸림을 인정하고, 편안히 있으면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나와 맞는 이들이 생길 것이다. 회사를 6개월을 다녔는데도 친구가 별로 없다? 응. 그렇구나. 그냥 인정하면 된다.
인간관계는 억지로 만들고 유지하려 할수록 모래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 그리고 꼭 네트워킹이 술자리에서 이루어질 필요는 없다. 내가 좋아하는 커피 이야기를 하다가 잠깐 같이 커피를 사러 나갈 수도 있는 거고, 오늘 읽은 책이 재밌어서 책을 추천하다가 나누는 짧은 이야기도 네트워킹이다.
네트워킹, 네트워킹, 결국 이름만 거창하지 그것도 결국은 친구를 만드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다. 연인관계든, 친구관계든, 동료관계든 결국 사람 사이의 인간관계 본질은 똑같다.
그러니 우리 내향인들은, 우리의 기질을 편안히 받아들이면 된다! 외향인이 외향인들의 장점이 있는 것처럼 내향인도 내향인들의 장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