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곰비 Oct 08. 2021

제발 우리 남자얘기 좀 그만 하면 안돼요?

해외생활을 하다 보면 너무나 흔히 보는 케이스들

20대 후반을 접어들면서 많은 이들이 인간관계가 좁아진다고들 이야기한다. 그런데 좁은 인간관계가 꼭 나쁜 것일까? 결혼, 육아 등 인생의 큰 전환점을 맞아 삶의 우선순위가 변화되어 친구와 보낼 시간이 절대적으로 적어지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이를 먹어가면 자신을 좀 더 알게 된다고 생각한다. 자연스럽게 내가 어떤 사람들과 편안함을 느끼는지 알게 되고 지난 인간관계를 통해 얻은 경험을 통해 굳이 안 되는 연을 이어가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직장이라는 삶의 무게에 짓눌려 꽤나 귀찮기도 하다. 학교라는 곳은 여러 사람들을 같은 학급과 학과라는 이름 안에 강제로 종속시켜 인간관계를 넓히기도 쉽고 유지하기도 쉬운 면이 있지만, 직장은 철저한 이익집단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직장 외에서 어떤 인간관계를 만들어나갈지는 좀 더 자유로운 선택의 면이 있다. 내가 원치 않은 직장동료를 만나면 하루 8시간을 억지로 꾸역꾸역 참아야 할 수도 있는데 회사 밖에서까지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을 굳이 만나야 되는 이유가 있을까?


그러다 보니 나도 20대 후반이 되면서 많은 인간관계가 가지치기가 되었다. 그러나 그렇게 정리된 인연들 중에는 나름 서로 좋은 추억을 공유했던 이들도 있어서 아쉽기도 한 마음에 왜 우리가 멀어지게 되었는지 한동안 골똘히 생각해 보기도 했다. 가끔 나는 밤마다 일기장에 적는다. 나는 어떤 사람과 만났을 때 편안하며 어떤 사람과 어울리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는가?


어떤 이는 하루 종일 수다를 떨어도 집에 돌아오는 길에 좋은 에너지를 받아 한동안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하는 이들이 있고, 어떤 이는 그렇게 오래 이야기한 것 같지도 않은데 우리가 했던 대화를 곱씹어보면 왠지 모르게 기분이 별로 좋지 않다. 어릴 적에는 그저 그걸 대수롭게 생각지 않았던 것 같은데, 나는 이런 것들을 어떤 에너지의 신호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주로 어울리는 사람들의 에너지를 서로 교환하고 영향을 받기 때문에, 정말 당연한 말이지만 긍정적인 사람과 어울리면 긍정적으로 살게 되고, 부정적인 사람과 어울리면 부정적으로 살게 된다. 그러나 나이가 어느 정도 먹으면 대놓고 악랄한 나쁜 사람들은 잘 없다. 다들 사회생활도 어느 정도 해봤고 어떻게 행동을 해야 사회에서 acceptable 한지 훈련이 됐기 때문에, 구별이 쉽지 않다. 가장 사랑하는 연인이 나에게 가스 라이팅을 할 수도 있고 친했던 친구나 가족이 내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될 수도 있는 세상이다. 그렇기에 나는 이러한 내 몸의 신호를 잘 들여다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데 왠지 모르게 내 몸이 굳고 분위기가 불편하게 느껴지는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나에게 있어서 그중 하나는 매일 만나기만 하면 시도 때도 없이 남자 이야기만 하는 사람이다. 아니, 요즘 진지하게 만나는 사람이나 사랑하는 연인 또는 남편의 이야기라면 나는 언제든지 들어줄 용의가 있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남자 이야기만 하는 사람은, 단순히 인생을 가볍게 즐기기 위해서 편안한 마음으로 have fun 하며 캐주얼 데이팅을 하는 사람도 아니고 격정적이거나 또는 애틋한 로맨스를 하는 사람도 아니다. 자신의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끝도 없이 남자를 만나며 입을 열 때마다 남자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은 우선 자신이 어떤 남자를 만나고 싶은 지에 대한 기준이 없다. 남자를 계속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이런 경우 보통 자신의 자신감이 어떤 남자를 만나냐에 의해 좌지우지되기 때문에 그 남자가 직업이 뭐고 돈은 얼마나 벌고의 이야기를 묻지도 않았는데 상세히 서술하는 경향이 있다.) 외국에 거주하기에 한국보다 그런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게 되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그런 사람들이 불편하다. 왜? 외로움을 남자로 채워보려는 게 뭔지 내가 스스로 너무 잘 알고 경험해봤기 때문이다. 


누구와 함께 이민을 오지 않는 이상, 아니 누군가와 이민을 오더라도 외국에 산다는 건 굉장히 외로운 일이다. 이때 많은 여자들이, 생각보다 정말 많은 여자들이 남자로 자신의 외로움을 해소하려고 한다. 그것이 쉽고 빠르기 때문이다. 친구는 관계를 쌓아 올리는 데 있어서 좀 더 시간이 걸린다. 우선 말도 통해야 되고 공통점도 좀 있어야 하며 취미를 공유하거나 관심사가 어느 정도 비슷해야 한다. 그러나 남녀 사이의 관계라는 건 그저 육체적 끌림만으로도 당장의 하루의 외로움은 해소가 가능하다. 그러나 이것은 정말 쉬운만큼 정말 일시적이며 중독적일 수도 있고 fragile 한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누군가를 만나는 것 = 안정이라 생각하지만 2n 또는 3n 몇 년을 다르게 살아온 타인을 내 삶에 들이는 것만큼 불안정한 것도 없다. 이 세상에 타인만큼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없다. 그리고 타인은 내 마음대로 움직이고 행동할 이유도 없다! 그러니 타인을 내 인생 안에 들인다는 건, 굉장한 큰 변수를 내 삶에 들여오는 것과 같다. 그러니 서로 모르는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고, 그 두 사람이 안정적으로 사랑을 이어온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고 축복받을만한 일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억울한 건, 여성들에게서 이런 경향이 더 많이 나타남을 목격한다는 것이다. (국적과 인종을 불문하고!) 남자들은 비트코인, 승진, 연봉협상, 주식, 모기지, 게임, 축구 정말 다양한 주제를 넘나들면서 이야기를 하는데, 내가 어제 만난 여자가 왜 연락이 없는지 자신의 이상형은 무엇이니 등등에 대해서는 여자들만큼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 않다. 물론 여성이 관계지향적인 면이 더 많은 것은 부정적인 것이라 생각하지 않지만, 여성들도 이제는 좀 더 대화 주제의 다양성을 넓힐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법정스님이 무소유에 적지 않았나. 내가 태어날 때 가지고 오지 않은 것은 내 것이 아니라고. 


나에게 영감을 주는 여성들은, 대화의 주제가 다양하다. 나보다 훨씬 어린 나이지만 벌써 집을 산 친구가 있다. 이 친구는 집을 사기 전 신용점수 올리는 방법이나 집 대출을 받는 법, 집을 살 때 뷰잉을 하고 오퍼를 넣는 과정에 대해 정말 빠삭하며 언제든지 이 주제에 대해 대화를 나눌 준비가 돼있다. 집을 고치고 유지 보수하며 정원을 가꾸는 것에 대해서도 잘 안다. 매월 자신의 월급의 몇 퍼센트를 투자 상품에 넣어놓고 여러 비트코인, 투자 상품을 공부하며 주식에 대해 나보다 훨씬 더 넓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이도 있다. 요가를 7년이나 해서 자신의 본래 직업과는 별개로 언젠가 요가 강사를 꿈꾸며 수련하는 이들도 있고, 주말에 패러글라이딩을 가거나 스킨스쿠버 다이빙을 하는 등 매번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취미생활을 하는 이도 있다. 성소수자나 소수인종과 같은 다양성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목소리를 내거나 활동을 하는 이들도 있다. 이들이 자신의 인생을 행복하고 다채롭게 만드는 방법은 너무나 다양하다. 


사실 생각해보면 외로움을 굳이 사람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도 착각이다. 물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사교활동을 통해서만 해결되는 외로움이 있지만, 타인이 내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을 때 내가 내 외로움을 해결하는 건 결혼을 하던 연애를 하던 끊임없이 풀어나가야 할 인간의 숙제라고도 생각한다. 뭐 굳이 그렇게 또 성취를 하면서 살아야 하냐고? 그냥 집에서 책 읽고 밖에서 노을 보고 아침에 햇빛 받으며 걷기만 해도 행복해지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내가 어떻게 해야 행복하고 어떻게 해야 좀 더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을지에 대한 통찰을 안해본 사람은 아무리 많은 남자를 만나도 누구를 만나야 행복한지 모를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