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느린 아이와 함께하는 책육아
'책육아'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저는 독서교육을 열심히 공부하는 20대 중반의 석사 과정생이었습니다. 많은 부모님들 사이에 책육아라는 것이 유행이고, 책육아는 책으로 모든 육아 과정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이며, 그것을 실제로 자녀와 해낸 아주 대단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독서교육 전공의 석사과정생이긴 해도 초등교사이기도 했던 저는 '독서로 모든 것이 될 리가 있나', 하면서도 또 한 편으로는 그런 말이 유행한다는 것이 참 좋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과정이 어떻든 독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모님 아래에서 아이가 자라면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 세대의 아이들이 열심히 자라나서 지금 청소년이 되고,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열심히 공부하여 독서교육으로 박사학위를 받아 독서교육 연구를 열심히 하고 있는 40대가 되었으며, 유치원생을 키우는 엄마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지만, 지금 시대의 많은 엄마들에게 여전히 책육아는 인기 있는 주제이고, 실천하는 모습은 SNS에 #책육아 로 검색만 하면 무한히 볼 수 있을 정도가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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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익히 알려진 '책육아'라는 독서교육 방법은 이미 책을 좋아하고 잘 읽는 아이를 키우는 부모에겐 별로 힘들지 않은, 정말 해볼 만한 교육 방법일 겁니다. 그런데 독서교육 연구자의 입장에서 책을 좋아하지 않는 아이도 무척 많다는 현상을 무시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물론, '책을 많이 읽어주면 아이가 책을 좋아하게 되니 열심히 하세요!' 라는 말은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책을 좋아하게 될 때까지 많은 노력을 퍼부어야 하는, '허들'이 무척 높은 아이들이 존재하지요. 그리고 그땐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내 아이가 그런 아이일 줄은요.
내 아이는 당연히 나를 닮아 책을 좋아하고, 똑똑한 아이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주변 사람들도 대부분 뱃속 아이가 얼마나 똘똘하겠느냐며(너무 재수 없어서 죄송합니다) 저에게 헛된(?) 꿈을 심어주었습니다. 외할머니는 제가 세 돌도 안되어 한글을 줄줄 읽었다면서, 어린 저를 업고 일부러 동네 가게에 가서 과자 이름을 읽게 하신 일 등 무한 손녀 사랑이 담긴 에피소드들을 이야기해주셨고, 그런 이야기들은 저의 교만함을 더욱 높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전공책에 나온 우수한 독자가 바로 내 아이일 것이다'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으며, 그 믿음은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도 두 돌 정도까지 유지가 되었습니다. 아이가 책을 좋아하는 것처럼 보였거든요.
제 아이는 잠도 잘 안 자고, 먹이기도 어려운 편에 속하던 아이라 신생아부터 고생을 했습니다. 출산 전에 진심으로, 단 한 번도 육아를 가볍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저지만(그래서 아이를 낳을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예상보다 아이가 더 예민하고 힘든 아이였어요. 산후조리원의 선생님들과 산후도우미님이 혀를 내두르며 아이가 정말 힘들다고, 아이 엄마가 고생 많이 하겠다고 말씀해주실 정도였지요. 그래도 첫 아이에게 제가 공부한 것을 적용해보고 싶었던 저는, 아이에게 매일 열심히 책을 노출했고, 그에 부응하듯 아이는 책을 혼자서 집중해서 보는 아주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어요. 다른 부분에 있어서 아이가 키우기 힘든데, 책은 즐겁게 잘 봐주니 그 모습이 큰 위로가 되었지요.
그렇게 아이가 두 돌이 되어갈 무렵, 이제는 다시 일을 좀 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던 저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잠깐씩 맡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때부터 다른 아이들과 차이가 보이기 시작했어요. 우리 아이가 다른 아이들에 비해 눈에 띄게 느리다는 것을 알게 된 겁니다. 그때부터 조금씩 두려운 마음이 들어 육아서를 열심히 읽었어요. 그러나 그렇게 육아서를 열심히 읽고 계속 적용해도 발달 문제가 해결이 안 되었고, 결국 병원에서 아이의 발달이 전반적으로 느리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지요.
망연자실하던 그때, '그러면 여태까지 아이가 그렇게 책을 좋아하던 모습은 뭐였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아이의 책 읽는 모습을 자세히 관찰해보니(자세히 관찰할 생각을 그 전에는 왜 못했냐고요? 그게 내 자식에게는 그런 생각이 잘 안 듭니다. 우수하다고 착각하고 있었으니까요. 독서교육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아동 관찰'이라고 강조하던, 국어교육학 박사인 저도, 자식에게는 그렇더라고요. 그러니 다른 전공을 하신 부모님들은 왜 내가 아이의 잘못된 책 습관을 못 알아봤을까 죄책감을 가지실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아이가 책을 읽는다기보다 책을 그저 넘길 뿐이고, 책의 그림을 이해한다기보다 소위 '시각 추구'를 더 많이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아이는 책을 혼자 보는 걸 더 좋아하네?' 하며 '신기하다' 생각했던 의문이 풀리는 순간이었죠. 그 뒤로 저는 집에 있는 책들을 치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공부한 것들 모든 것에 대해 전반적으로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책이 아이를 망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아이에게 원망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지요. 그렇게 제가 아이에게 '과잉 기대'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러니했던 것은, 그 무렵 초등교사를 그만두고 활발하게 진행했던 '부모를 위한 독서교육' 강의에서 모두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점이었어요. 심지어 많은 엄마들이 후기로 '선생님이 알려준 방법을 아이에게 적용하니 정말 효과가 좋다'는 의견을 보내주기까지 하고, 주변 엄마들에게 소문도 내주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저의 내적 갈등은 점점 심화되어갔지요. 수강한 부모님들, 선생님들, 연구자들이 모두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면 내가 공부한 게 틀린 건 아닐 텐데... 자식에게는 배운 것을 제대로 적용하지도 못하면서 남들에게 독서교육을 하라고 권할 자격이 있는 것일까 하는 죄책감까지 들었어요.
그렇게 저는 책육아에 실패했습니다. 독서교육을 박사까지 공부하고, 많은 학술 논문을 쓰고, 많은 학생들을 가르치고도 자신의 자녀 교육에는 적용하지도 못하고 책을 치워버린 엄마가 되었지요. 아이의 독서교육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이야기를 길게하면 너무나 자존심이 상하기 때문에, 주변에 말을 잘 꺼내지도 않았습니다. 그런 한 편으로는 어떻게든 이 상황을 해결해보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그래서 책을 좋아하지 않고, 발달이 느린 아이들을 위한 독서교육 방법을 찾아 연구에 몰두하게 되었지요.
그리고 스스로 이렇게 좌절을 겪고 나니, 나처럼 매일 실패를 경험할 많은 엄마, 아빠들을 향한 동병상련의 마음이 싹텄습니다. 그들도 나처럼 열심히 하면서도 매일 실패하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잘해나가는 다른 부모들의 SNS를 보며 속이 썩겠지, 라는 생각에 다다르게 되더라고요. 그런 고민을 해결하려고 전문가라는 사람들을 만나면, 당신의 독서교육 방법이 잘못되었으니 고치라는 조언을 받게 되고, 또 한 번 상처받겠지.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고민을 누군가 알아준다면, 그 고민을 누군가가 조금이라도 해결해주려고 노력한다면 위로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매거진에는 앞으로 '스스로 책을 읽지 않는 아이를 둔 부모님, 책만 많이 읽어주면 한글에는 스스로 관심을 가진다던데 학교에 들어갈 때가 다 되어가도 글 읽기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서 속이 타는 부모님, 책 읽어줄게 하면 도망가는 아이의 부모님, 너무 편독이 심한 아이를 키우는 부모님 등' 독서교육과 관련된 많은 트러블을 겪고 계신 분들을 위한 글을 쓸 예정입니다. 부모가 포기하지 않으면, 아주 조금씩이라도 나아갈 수 있는 독서교육 방법 이야기들이 주로 다루어질 것 같아요. 올해 제 아이는 6살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아이의 세 돌 이후로 책육아에 매일 도전하고, 매일 실패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기해요. 길게 보니 아이가 서서히 변화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 이 주제를 다루기까지 많이 망설였어요. 누가 봐도 '우와' 할만한, 드라마틱한 이야기는 되지 못할 테니까요. 아이가 더 나이를 먹고 나서, 좀 더 독서 능력이 향상된 뒤에 글을 써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도 했지만, 자꾸 시간이 지나가니 디테일한 상황 대처들을 잊어버리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의 아이디어들과 경험들을 세월이 지나 잊기 전에, 용기 내어 기록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