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느린 아이와 함께하는 책육아
독서 교육에서 '아동 관찰'은 정말 중요한 진단 방법입니다. 독서 전, 중, 후 아동의 모든 반응을 관찰해서 아이의 인지적, 정서적 상태를 파악하는 것이 그 어떠한 진단 방법 보다도 실제성이 높다고 보고 있어요.
아이에게 가장 편안한 환경을 제공한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독서 반응을 관찰할 수 있는 사람은 단연 부모일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에 대해 가장 주관적인 평가를 내릴 사람도 바로 부모이죠. 부모는 대부분 자신의 뼈와 살을 내주며 아이를 키우니, 내 일부분이라 느껴지는 아이를 객관적으로 본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을 것입니다.
(지난 글부터 꾸준한 잘난 척 죄송합니다.)
저처럼 어릴 때부터 독서를 정말 잘하고 사랑하고, 도서관에 가면 ‘이것이 바로 충전이며 휴식이다’라고 느끼는 부모라면 아이도 나와 같이 독서를 잘하고 좋아할 것이라고 예상하기 쉽지요? 물론 그 확률이 높긴 하지만 실제로 꼭 그렇게 아이가 나를 닮는 것은 아니더군요. 나를 닮은 부분은 참 이상하게도 내가 너무 싫어하는 나의 모습들이고, 나의 좋은 점은 희한하게 다 비껴서 닮아요. 왜 그런지 참 하나님께 살짝 따지고 싶은 심정이 될 때도 있습니다.
아무튼, 오히려 독서를 좋아해 온 부모라면 자신을 한 번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의 취향과 내가 갖지 못했던 독서 환경을 아이에게 무의식적으로 많이 투영하고 있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지요.
저는 어려서부터 동화와 소설을 좋아하고, 희곡 작가가 꿈인 적도 있었습니다. 제 동생은 시를 좋아해서 서로 좋아하는 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지요. 제가 초등학생 때 동네책방(유료로 책을 빌려주는 대여점)을 동생과 함께 다니면, 빌린 책이 너무 궁금해서 집에 돌아오는 길에 그 책을 읽으며 걸어오기도 했어요. 차들이 오가는 골목길에서 책을 읽는다고, 부모님께 '위험하다' 꾸지람을 들은 적도 많습니다. 그렇게 자란 저는 대학생 때는 무라카미 하루키에 심취하고, 소설 속 빨간 머리 앤을 사랑하며 점점 더 책을 사랑하는 어른이 되었지요.
그런 저에게 책이 가득한 집은 그 자체로 힐링입니다. 부모님과 살 때는 그렇게 하지 못했기 때문에 어른이 되고 아이가 생기면 꼭 책으로 가득한 거실을 만들어주고 싶었지요. 수많은 책을 꽂아주고 아이도 저처럼 행복하게 몰입하며 독서를 하면 좋겠다고, 조금 더 크면 책 이야기를 실컷 나누어주는 그런 엄마가 되고 싶다는 꿈이 있었습니다. (이 부분을 쓰면서 갑자기 울컥하네요. 이상형은 이상형일 뿐인 것처럼 자녀와의 삶에 대한 꿈은 꿈일 뿐-)
그렇게 저희 딸은 태어나면서부터 수많은 책에 둘러 쌓여 자라게 되었습니다. 엄마가 어릴 때 갖고 싶던 세계를 아이에게 선물한 것이었죠. 지금 생각하면 그건 저의 유토피아이지 아이를 위한 세계는 아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실내에서 지내는 것을 좋아할 확률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외향적인 편이지만, 그래도 집에서 조용히 책을 읽는 시간을 무척 좋아했고, 아이를 낳은 뒤에도 외출을 하기보다 집에서 시간을 쪼개 책을 읽으며 마음의 평화를 찾았습니다. (육아가 힘들어서 책으로 도피했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네요.) 아이는 데리고 외출하기 힘든 스타일이기도 했습니다. 카시트에서 30분을 울려도 적응하지 못했고, 유모차에서 내리게 하면 한 시간도 너끈히 울 수 있는 그런 아이였으니까요. 이렇게 집에서 지내는 것이 엄마와 아이의 니즈가 딱 맞아떨어지는 행동이었죠. 그리고 집 안 어느 공간에 가도 늘 책이 넘쳐났기 때문에 아이는 자연스럽게 책을 가지고 놀았습니다.
그러나 저와 달리, 아이는 책 읽기를 그렇게 좋아하는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언어 발달도 늦은 편이었죠. 그러니 제가 보기에 아이는 책을 읽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책의 내용을 이해하며 보는 것이 아니라 그냥 심심해서 책장을 넘기기만 했던 겁니다. 아이가 점점 자라고, 본격적으로 기승전결이 있는 조금 긴 분량의 이야기책을 읽어주기 시작하자, (세상에 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지 않고!) 아이가 도리질을 치며 도망가기 시작했습니다. '엄마가 책 읽어줄까?' 하면 눈물로 거부했고요. 생각해보면 언어 이해력이 낮은 아이에게 엄마가 이야기 그림책을 완독해 준다고 해서 그 이야기가 재미있을 리가 없지요. 그걸 그때는 몰랐습니다. 그리고 너무 속상했어요. 다른 아이들은 다 책을 읽어주면 좋아한다는데, 강의에 가면 엄마들이 '아이들은 언제 읽기 독립하는 거냐'면서 책 읽느라 목이 아파 죽겠다고 하소연하는데. (그리고 나도 좋아했는데.) 아이에 대해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나도 좋아하고, 다른 아이들도 좋아한다 하니, 너도 좋아하겠지’라고 생각했던 것이죠.
많은 시행착오와 연구 끝에 지금은 아이가 이해할 수 있을 만큼의 이야기 그림책과 정보 그림책을 적절히 섞어서 읽어줍니다. ‘이해할 수 있을 만큼’이라는 것은 참 애매한 표현인데요, 이야기 그림책에서 특히 그렇습니다. 아이 수준보다 많이 낮은, 아주 쉬운 책을 읽어준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어떤 책이든, 내 아이의 또래가 읽는 책이어도 좋습니다. 아이가 소화할 수 있는 양만큼(그것보다 약간 더 많은 분량도 좋음*) 천천히 이해할 수 있게, 수없이 반복해서 읽어주는 것이죠. 아이와 책에 내용에 대해 대화도 '시도'해보고요. 그러다 보면 아이가 독서를 좋아하게 된다라고 말하면 좋겠지만, 그 정도는 아니고요. '좋아하는 책들'이 생깁니다. 그리고 그것이 변화의 시작이지요.
* 비고츠키의 'ZPD'와 ‘비계’
모든 사람들이 항상 아이 수준에 딱 맞춘 것만 준다면 특히 발달이 늦거나 경계선인 아이들은 늘 제자리에 머무르기 쉽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누적되면 또래와 더 차이가 벌어질 수 있어요. 그럴 때에는 아이가 조금 더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사람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비고츠키의 ZPD는 '근접 발달영역'이라고도 부릅니다. 아주 쉽게 설명해서, 아동이 혼자서는 이해할 수 없으나 성인이나 뛰어난 또래와 함께 천천히 학습하면 이해가 가능할 수 있는 영역을 의미하죠. 저는 아이들의 독서 수준이 자신의 ZPD로 나아가도록, 아이의 발달 단계보다 약간 높게, 한 칸 정도 더 계단(비계)을 놓아주라고 설명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이 한창 자라는 시기에는 '아이 수준 +1 정도'의 수준으로 지치지 않고 도전하는 것이 좋습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손위 형제나 똘똘한 또래와 노는 것이죠. 그러나 요즘은 하나만 키우는 집들도 많아 그 역할을 부모가 해주어야 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어요.
결국 책을 조금씩 꾸준히 읽으며 아이가 책의 내용을 이해할 때까지 기다려주는, 육아의 기본이자 가장 어려운 부분인, 인내심이 독서교육에도 필요한 것이죠. 많은 물을 스펀지가 순식간에 빨아들이듯, 부모가 부어주는 것을 스펀지처럼 흡수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아이들은 돌처럼 단단하여 아무리 부어도 한 방울의 물도 흡수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요. 그러니 오히려 많은 물(책 읽기)을 쏟아 붓기보다 꾸준히 물을 떨어뜨려 바위를 뚫는 것이, 느려 보이지만 더 적절한 방법일 것입니다.
바위의 장점도 있습니다. 스펀지는 건조되어 원래 상태가 되기 쉽지만, 한 번 뚫린 바위는 원래 상태로 잘 돌아오지 않지요. 우리가 읽어주는 책의 내용이 꾸준히 아이의 마음속을 파고들도록- 수많은 물방울이 거대한 바위를 뚫는 원리를 생각하면서- 힘들지만 함께 격려하며 나아가 봐요.
그림출처 : 미리캔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