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은 관심 가졌을 때 하면 돼?

조금 느린 아이와 함께하는 책육아

by 권이은

언제 관심 가지는데요?



책만 읽어주면 한글 다 뗄 수 있어.

애가 관심 보일 때 그 때 해도 돼.

우리 애는 한글 가르친 적 없어. 책이나 많이 읽어줘.


육아 선배들의 이런 조언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다 맞는 말일까요?


'일부 아이들'에게는 맞는 말입니다. 한글 교육의 적기는 아이가 글자에 관심을 보일 때가 맞습니다. 대부분에 아이들에게는 그렇지요. 소수의 아이들 중에서는 스스로 글자를 깨우치는 경우도 찾아 볼 수 있죠.

그런데 이게 참.. 어려운 아이들이 있어요. 과도하게 일찍 관심을 가지거나 너무 늦게 관심을 가지는, 혹은 아예 관심이 없는 경우가 그렇습니다. 모두 정말 어려운 문제이지만, 이 글에서는 아예 관심이 없는 경우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어보려고 합니다. 제가 이 연재에서 주로 이야기하고 있는, 발달이 조금 느린 아이들은 유아기에 글자에 크게 관심이 없거든요.



왜 글자에 관심이 없을까?


이제부터 조금 이론적인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왜 내 아이는, 우리 반 아이는 글자를 잘 못 읽을까 답답해하시는 분들을 위해서 이유를 아동 발달의 관점에서 풀어드리려고 해요. 아이들이 발달이 늦다는 것이 사실 단순한 문제가 아니죠. 아이들마다 다 다르게 어려워하는 영역이 있기 때문에 함부로 단정 지어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도 아동 발달의 과정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면 글자에 관심이 없는 이유가 납득이 됩니다.


피아제라는 인지 발달 연구자가 있습니다. 피아제가 말하는 아동 발달의 과정에서 유아기는 전조작기에서 구체적 조작기로 넘어가는 시기입니다. 전조작기에 있는 아동에게 추상적인 '문자'라는 개념 자체가 머릿속에서 생성되지 않습니다(조작기의 전 단계라는 의미로 ‘전’ 조작기입니다). 그림처럼 글자를 외울 수는 있겠지만, 상당히 한정적이죠. 그래서 통 글자로 교육을 해야 한다고들 하는데, 이 세상의 모든 글자를 그림처럼 외운다고 상상해보세요. 효율성이 매우 떨어지고 아이들이 괴로워할 확률이 높지요.


<더 궁금한 분들을 위한 피아제의 인지 발달 이론>

'전조작기'의 특징 (평균적으로 만 2세 ~ 4세)
1. 정신적 표상은 가능하나, 그 표상을 정신적으로 다루거나 조작하지는 못함
2. 자기중심적 – 다른 사람의 관점을 받아들이는데 어려움이 있음

'구체적 조작기'의 특징 (평균적으로 만 5세~초등)
1. 정신적 표상을 정신적으로 조작도 할 수 있지만, 정신적 조작의 대상이 구체적 대상에 국한됨
2. 추상적 사고, 가설적 사고를 잘하지는 못함


우리 나이로 6,7세 경이되면 구체적 조작기로 도약하는 시기입니다. 이 시기에는 글자를 머릿속으로 조작하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즉, 'ㄱ'과 'ㅏ'를 합하면 '가'가 된다, '나비' 글자에서 배운 '나'를 '나무'에도 대입해서 읽는 등 머릿속에서 글자를 조작할 수가 있어요. 반대로 '가'는 'ㄱ'과 'ㅏ'가 합쳐졌다는 것도 조금씩 이해하게 됩니다. 이 시기의 아이들과 한글을 배우면 한글의 원리를 이해하면서 학습할 수가 있고, 이 시기의 아이들이 글자에 대해서 관심을 갖기 시작하지요.


매우 논리적인 문자인 한글! 굳이 급하게 통문자를 외우게 할 필요는 없어요


그러면 한글을 가르치지 말아야 하나


발달이 늦는 아이들은 학령기 전에 구체적 조작기로 넘어가지 못하고 전조작기 수준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글을 깨치는데 어려움이 있죠. 어떻게 글자라는 것 자체를 인식 못하는 거지? 나비를 아는데 나무의 '나'를 못 읽지?라고 생각하신 분들이 있다면, 아마도 이제는 조금 납득이 되셨을 겁니다. 아동의 발달이 구체적 조작기 수준으로 넘어가 주어야 글자를 깨치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발달이 올라올 때까지 한글을 안 가르치자니, 아이가 입학하고 나서 겪을 어려움이 눈앞에 그려지죠. 그러니 한글을 안 가르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아이가 발달이 늦다는 것을 인지했다면, 관심을 가질 때까지 기다리지 마시고, 길게 보고 한글 학습을 시작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장기 프로젝트로 생각하시고 매일 꾸준히 자모 결합, 낱자 분리해서 읽기 등을 연습해야 합니다. EBS에서 제작한 한글이 야호, 한글 용사 아이야 같은 프로그램도 적극 활용하셔서 최대한 자주 노출해주세요. 이런 프로그램의 장점은 아이들에게 꾸준히 구체적인 상황과 구체적인 이미지, 상상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논리적으로 어떤 글자가 있는지 보여주어서 머릿속으로 조작이 어려운 아이들에게 도움을 준다는 것입니다. 교재도 아이들에게 문자 결합이나 원리를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조작해볼 수 있는 책으로 선택하세요. 단순히 따라 쓰기만 해서는 한글 떼기가 잘 되지 않을 확률이 높아요.




더 중요한 것은 발생적 문식성(문해력)!


제대로 된 읽기가 되려면 문자 학습보다 더 먼저 이루어져야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발생적 문식성'이라고 합니다. 인쇄물에 대한 개념도 있어야 하고, 낱자 소리도 이해해야 하고 (나비가 나와 비로 되어있다는 것) 그런 것들 먼저 시작해야겠죠.


그리고 사실 더 중요한 것은 어휘력, 이야기 구조에 대한 이해라고 할 수 있어요. 이것은 빠르게 학습이 되지 않고, 오랜 시간 누적되는 부분이고, 초등시기 독해력으로 직결되기 때문에 유아기에 충분히 쌓아줘야 하는 것들이지요. 느린 학습자 부모님들이 초등 시기 한글 때문이 아니라, 독해력 부족에서 큰 좌절을 겪는다는 점을 잊지 마시고, 문자 학습보다 함께 책 읽기에 더 집중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자녀교육 어떻게 할 거냐고요? 저희 아이는 기본적으로 새로운 것에 크게 관심이 없는 아이라 글자에도 관심을 가질 확률이 높지 않다고 판단했어요. 그래서 6살이 된 올해부터 조금씩 문자를 노출하고 있어요. 본격적으로 글자를 가르치는 것은 7세인 내년 후반기에 시작하려고 합니다. 그래도 한글 프로그램은 계속 보여줄 거고요, 글자도 자주 노출할 예정이에요. 물론 매일 함께 한 권 책 읽기를 가장 우선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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