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소아청소년정신과 김붕년 교수님의 책 <나보다 똑똑하게 키우고 싶어요>는 제가 개인적으로 육아하면서 도움받고 있는 믿을만한 육아서입니다. 교수님께서 태어나서부터 초등 시기까지 육아에 대한 이야기를 아주 쉽게 풀어주시기 때문인데요. 이 책을 읽어보면, 4-7세 시기의 아이들은 자기 조절력이 발달하고, 이를 위해 전두엽이 발달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전두엽 발달을 위해 잘 반복된 습관, 종합적이고 다양한 사고 등을 제시하고 있어요.
이러한 것들을 모두 아이와 함께 책 읽기를 통해 실천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잘 반복된 습관은 매일 함께 책 읽기 시간을 갖는 것으로 가능하죠. 연재 중 계속 강조하고 있는 것처럼 매일 밥 먹고 양치질하는 것과 독서를 같은 수준으로 생각해보세요. 책도 양치질하듯 매일 한 권씩 읽어주는 거죠. 어느새 책 읽기 시간에 엄마, 아빠 옆에 딱 붙어 앉아 책에 집중하기 위해 자신을 조절하는 아이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어요.
위에서 말씀드린 김붕년 교수님의 책에 전두엽 발달을 위해서는 '좋은 질문'이 중요하다는 내용이 있어요. 아이에게 ‘사과의 색은 무엇이지?’라고 묻기보다, ‘빨간 과일은 무엇이 있을까? 엄마랑 주고받으며 이야기해볼까?’와 같이 종합적이고 다양한 사고를 유도하도록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고 강조하시지요. 이 책에서 말하는 '좋은 질문'은 제가 계속 강조하고 있는 상호작용에 기반이 된 이야기 나누기의 방법과 같습니다.
요즘 저희 아이가 완전히 매료되어 매일 읽자고 들고 오는 그림책이 있어요. 안녕달 작가님의 '할머니의 여름휴가'인데요. 이 책은 할머니와 강아지(메리)가 더운 여름날 방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시작합니다. 이 장면은 글이 없고 그림만 있어요.
이 책을 예로 들어서, 대화가 아닌 '부모의 일방적인 책 읽어주기'와 질문으로 책 읽기가 이루어진다면, 다음과 같은 상황이 펼쳐지리라 예상해볼 수 있어요.
부모 : (글자가 없는 장면을 보고 '여기는 읽을 게 없네'라고 생각한다) 여기 누가 있지?
아이 : 할머니!
부모 : 할머니가 뭐해?
아이 : (차려진 밥상을 보고) 밥 먹어. 시금치도 먹어.
부모 : (선풍기를 가리키며) 여기 이건 뭐야?
아이 : 선풍기.
부모 : 할머니가 왜 밥을 안 먹는 거 같아?
아이 : (할머니가 밥을 안 먹는지 몰랐다는 듯 어리둥절해한다) 응?
부모 : 할머니가 밥을 안 먹고 있잖아. 왜 안 먹는 것 같아? 잘 모르겠어?
아이 : (부모의 추궁(?)에 도망가고 싶어 진다.) 몰라요.
부모의 질문과 아이의 대답을 보면 모두 한 번 더 생각할 필요가 없는, 그림만 보면 바로 답이 나오는 것들입니다. 부모는 열심히 누가, 언제, 무엇을, 왜 했는지 꼼꼼하게 질문했기 때문에 아이와 충분히 상호작용했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로는 아이의 발달을 크게 돕지 못한 것이죠. 다음은 다른 방식의 대화입니다.
부모 : (미리 책을 읽어봐서 그림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중요한 부분을 알고 있음) 할머니가 더워서 선풍기를 바람을 쐬고 있네. 할머니가 뭐해?
아이 : (차려진 밥상을 보고) 할머니가 밥 먹어. 시금치도 먹어.
부모 : (웃으며) 오 그러네. 할머니 밥상에 밥도 있고, 시금치도 있구나. 그런데 아직 안 드시는 것 같아. 너무 더워서 밥이 먹기 싫은 걸까?
아이 : (부모의 말이 맞다는 듯이 선풍기를 가리키며) 할머니가 선풍기 틀었어.
부모 : 그러네, 할머니가 더워서 선풍기 틀었네. 그런데 선풍기가 고장 나서(앞부분의 선풍기가 고장 났던 장면으로 돌아가서 다시 보여주고 돌아온다) 시원하지는 않은가 봐.
위의 대화에서 아이가 어떠한 사고를 하고 있는지 보이시나요? 그림을 보면서 부모와 함께 할머니의 행동을 꼼꼼하게 읽고, 그 행동의 이유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지요. 아이의 말을 보면, 아이가 그림 속 인물의 행동은 잘 읽을 수 있지만, 인물의 행동이 왜 그런지에 대해서 생각하기는 어려워하는 것 같아요. 이때 부모가 아이와 함께 그림 속 단서를 찾아가며 할머니가 왜 밥을 안 먹는지 이유를 알아보고 있지요.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아이는 다양한 사고(내용 확인, 예상, 추론 등)하게 됩니다. 아이는 부모와의 대화, 부모의 읽기 방법(다시 살펴보기)을 통해서 인물의 행동과 그 이유에 대해서 생각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는 것이지요.
위 대화는 사실 제가 아이와 나눈 대화를 그대로 담은 것입니다. 저희 아이는 스스로 질문 생성하기를 어려워하는 아이이지만, 위와 같은 방식으로 엄마와 상호작용을 하며 다양한 사고를 경험할 수 있어요. 이러한 상호작용이 아이의 전두엽을 발달시키는 아주 중요한 방법이에요.
그렇다면 만약 아이가 질문을 잘하는 아이라면 어떨까요? 더 풍성한 책 읽기 시간이 되겠지요? 정말 그럴까요?
아이들은 부모와 책을 읽으며 단어의 뜻부터 세부적인 인물의 행동이나 배경 그림 등 수많은 다양한 질문을 하죠. 이때, 아이가 질문을 많이 하면 책을 읽다가 자꾸 흐름이 끊긴다고 걱정하기도 합니다. 대부분 부모님들이 책 읽기 시간이 풍성해진다고 생각하지는 않지요.
어른의 생각이 일부는 맞습니다. 이야기의 흐름이 끊어지는 것이 사실이니까요. 그런데 영유아기의 책 읽기는 흐름이 끊기는 것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부분을 이해하지 못하고, 내용 이해가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끝까지 읽었으니 제대로 다 읽었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부모의 착각이지요.
이렇게 말하는 저도 그림책을 읽어줄 때면, 끊지 않고 끝까지 읽어주고 싶은 유혹에 자주 빠져요. 식사 시간을 떠올려보세요. 아이가 천천히 먹더라도 '식사를 즐기며 맛있게 먹기'를 바라기보다 '얼른 먹어라(엄마 치우고 쉬게)' 하는 것과 똑같달까요. (웃음) 인내심을 가지고, 아이가 충분히 책을 즐기며, 궁금증이 해결될 때까지 여러 번 반복해서 읽어주다 보면 며칠 뒤에는 그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을 겁니다. 그게 10번이 될 수도 있고 100번이 될 수도 있다는 게 문제이지만요. (부모도 짜증 내지 않는 위대한 자기 조절력이 필요하다는 사실..)
어떤 책은 끝까지 읽어야 아이의 궁금증이 해결되는 경우도 있을 거예요. 그런 질문이라면 아이에게 '이 책을 끝까지 읽으면 알 수 있어! 너무 궁금하지 않니?' 하면서 오히려 아이의 질문을 격려하고, 호기심을 증폭시킬 수 있답니다. 이러한 경험이 누적되면 완독 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이죠. 만족 지연 이론*이 여기에도 적용되는 것이랍니다. (만족 지연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자세히 다루어 볼게요)
제가 교사를 그만둔 후에 재직하고 있는 한국그림책학교에서 그림책 읽기를 잘하고 싶은 부모님들을 위한 부모 교육을 담당하고 있어요. 제가 담당하는 강의 주제는 '아이와 그림책 읽기'랍니다. ('아이에게 그림책 읽어주기'가 아니라는 점!) 부모님들께서 아이와 함께 읽는다는 마음으로 책 읽기를 하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지은 제목이에요. 그 강의에서 제가 항상 강조하는 것이 '아이에게 질문하지 말라'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일방적으로 질문하지 말라는 것인데요. 아이에게 책의 내용이 뭔지 묻기 전에 엄마가 먼저 자신의 생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책을 통해 아이와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을 마음에 새기면, 사과의 색은 무엇이지? 와 같은 질문은 하지 않을 수 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