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읽어줘야 해?

by 권이은


오늘도 아이와 함께 책 읽기 하셨나요? 저는 방금 하고 왔는데요. 오늘따라 너무 지치는 거 있죠. 아침에 아이 반에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했다는 연락을 받아서 갑작스럽게 등원을 못하게 되었고, 주양육자인 제가 꼼짝없이 모든 스케줄을 취소하고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냈거든요. 날이 밝을 때만 해도 최대한 친절하고 밝은 모드로 아이를 대했는데, 이상하게 해가 지면 성질이 나요. (저만 그런 거 아니죠? ㅎㅎ) 이렇게 지친 날은 책 읽기도 '해야 하니까 하지, 하기 싫은 숙제' 느낌으로 읽게 되는 것 같아요.


이렇게 지치는 날들이 쌓이면, 그런 생각이 들죠. '아니, 언제까지 책을 이렇게 읽어줘야 해? 얼른 한글 떼고 혼자 읽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너무나 슬프게도(?), 한글을 뗀다고 해서 책을 혼자 읽을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 선배 부모들에게 많이 들어 다들 알고 계실 거예요. 도대체 왜 그런 걸까요?



독해력은 음성 언어 능력에서 시작


제가 지난 글에서 한글 학습보다 책 읽어주기에 더 힘쓸 거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했었죠. 제가 그렇게 생각한 것은 독해력을 받쳐주는 핵심 요인이 한글 학습만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저희 아이처럼 유아기에 있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핵심 요인은 음성언어를 듣고 이해하고, 자신의 말로 설명할 수 있는 '음성 언어 능력'이랍니다.



유아기 아이들의 문자 학습이 추후 초등학생 시기의 독해력에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연구가 무척 많아요. 연구들의 결과를 종합해보면, 대체로 유아기에 문자 학습에 집중한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아이들에 비해 초등 저학년 시기에 단어 읽기 수준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성취를 보였다고 해요.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반전이 일어나요. 그 차이가 초등 고학년까지 이어지지 못하고, 오히려 복잡하고 어려운 글을 만나면 읽어내지 못하는 아이들이 속속 등장한 것이죠. 결국 초등 저학년 이후 학생들의 독해력은 유아기 문자 학습과는 별다른 영향관계가 없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 것이에요.



그러면 어떤 요인이 아이들의 독해력에 영향을 줄까요? 초등 저학년 이후의 독해력은 유아기의 음성 언어 능력에서 시작된다고 해요. 즉, 초등 저학년 이후 아이들의 독해력은 어릴 때부터 부모와 책을 읽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서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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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언제까지 읽어줘야 해?


아이들이 혼자 책을 읽고 내용을 이해하는 정도의 독해력을 갖추게 되기까지 필요한 단계가 많이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간략하게 다음의 세 단계로 나누어 말씀을 드려볼게요.


1. 글자를 어렵게 읽는 단계

2. 글자는 유창하게 읽지만, 내용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단계

3. 글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내용 이해가 되는 단계



처음 아이들이 한글을 떼고 글을 소리 내어 읽을 수 있게 되면, 아이들이 책의 내용은 자동으로 이해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뇌가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고, 그 한계 용량에 가깝게 글자를 그저 읽기만 하는 데 사용하기 때문이지요. 영어나 외국어를 공부하는 초반을 떠올려보세요. 단어 하나하나 소리 내어 읽다 보면 이미 지쳐버리는 경험, 다들 있으시죠? 한글로 된 글도 마찬가지예요. 뇌가 문자를 읽느라고 내용 이해(독해)를 할 여유 공간이 없는 거죠. 그러다 보니, 아이가 소리 내어 책을 완독 하면 그 책을 다 이해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하나도 읽지 않은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지요.



아이가 글자를 힘들게 읽는 시기를 지나 어느 정도 글을 유창하게 읽게 발전했다면, 이제 독해를 잘할 것 같지만, 또 그렇지가 않습니다. 아이들이 '글이 말하는 방식'과 친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평소 일상 언어만을 사용해온 아이들은 글이 말하는 방식, 예를 들어 이야기의 구조, 비언어적인 표현(제스처 같은)이 없는 '글'이라는 것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지요. 글이 말하는 방식과 친해져야 비로소 글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내용이 이해되는 단계로 접어들게 됩니다.



그런데 음성언어능력이 충분히 쌓여있는 아이들은 문자 학습이 끝나면 빠른 시간 안에 읽기 독립이 되기도 합니다. '글이 말하는 방식'과 친하기 때문이지요. 평소 일상 대화는 책의 말하기 방식과는 차이가 있기 때문에 그저 대화를 많이 하는 것만으로는 독해를 위한 음성언어능력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부모님과 어려서부터 다양한 책을 읽어온 아이들은 '글이 말하는 방식'과 이미 친한 상태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빨리 어느 정도 수준의 독해력을 가지게 되는 것이죠.




정리하면, 아이가 한글을 일찍 뗐다고 해도 음성언어능력이 충분히 쌓여 있지 않으면 읽기 독립은 시기상조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마음을 조금 내려놓고(이게 제일 어렵죠. 저도 정말 잘 안돼요.ㅠㅠ) 한글을 무척 일찍 뗐다는 다른 집 아이들과 비교하기보다, 아이와 책을 함께 읽으며 충분한 음성 언어에 노출시키는 것에 더 힘써보아요. 오히려 읽기 독립이 더 빨라질 수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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