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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석 Mar 31. 2017

어머니와 아들

저한테 정기적으로 상담을 받는 어머니와 아들이 있습니다.

아들은 30대 중반의 의사이고 외아들입니다. 어머니는 50대 후반의 여성으로 전업주부였습니다.

아들의 주 증상 : '나를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하는 엄마가 지긋지긋하다' 

어머니의 주증상 : '평생을 다 바쳐 키운 아들이 자신을 무시하고 없는 사람 취급한다'

갈등의 발단은 노총각이었던 아들의 결혼문제였습니다.

아들은 사랑했던 여자가 두 명 있었는데 두 번 모두 어머니의 반대가 심해 헤어졌다고 합니다. 반대 이유는 여자 쪽 집안의 경제력이 어머니의 성에 차지 않아서였다고 합니다. 이후 어머니가 아들에게 결혼정보업체 가입을 권유하자 아들은 폭발했습니다.


"나는 당신의 소유물이 아니다, 당신의 노후대책을 위해 내 인생을 멋대로 조종하지 말라"


그런 말을 듣고 어머니는 

'평생 나한테 대든 적 한번 없는, 세상에서 제일 착한 우리 아들'이 자신에게 이러는 이유는 여자 친구가 아들을 조종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머니는 여자 친구에게 따로 전화를 걸어 폭언을 퍼부었고 그 결과 아들은 다시 폭발했습니다

어머니의 카톡과 전화번호를 차단했고 충격을 받은 어머니는 응급실로 실려갔습니다.

아들은 처음부터 의사가 되길 원치 않았다고 합니다.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고 평범하게 살길 바랬다고 합니다. 중학생 시절 IMF로 집이 어려워지자 어머니는 '네가 집안을 일으켜야 한다, 우리 가족 미래는 모두 너한테 달렸다'라는 말을 매일 했고 어머니의 기대를 실망시키기 싫어서 앞만 보고 살아왔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없는 살림에 식비까지 아끼고 아껴서 과외, 학원비를 댔고 비싼 의대 학비를 마련하느라 주변 친척들과 지인들에게 항상 굽신거리며 돈을 빌렸다고 했습니다. 공부 잘하는 의사 아들은 평생 자신의 자랑이자 자존감이었고 비록 가난했지만 자식 얘기만 나오면 언제나 당당할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이 모자의 애착과 감정적인 bonding 이 어디서부터 왜곡되고 언제부터 뒤틀려왔는지를 

고민해보면서 학벌 주위, 물질만능주의 같은 말들과 욕망과 애정 소유욕의 모호한 경계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뿐인 아들에게 좋은 것만 주고 싶었고 누구에게도 무시받지 않는 삶을 살기를 바랐다는 어머니.

정작 지금 아들은 어머니를 '돈 욕심에 아들을 가지고 장사를 하려는 괴물'로 생각한다고 합니다.

두 사람 모두 서로가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인 채 끊임없이 상처를 주고받고 있었습니다. 

이 갈등이 먼저 해결되지 않는 한 아들은 누구를 만나도 불행할 것입니다. 

아니 애초에 어떤 여자가 이 상황을 보고 결혼할 마음을 먹겠습니까. 

아들과 헤어진 여자들은 '보통이 아닌 시어머니' 보다 '엄마한테 휘둘리는 못난 아들'에 실망해서 

떠났을지도 모릅니다.

자기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결정을 단지 어머니 탓으로 미룬 것은 분명 본인의 책임이고 미숙함일 겁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그 애착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은 본인의 숙제이겠지요.


아들에겐 엄연히 아들의 인생이 있고 부모에겐 부모의 인생이 있다는 것. 

진정한 존중과 애정이란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진심으로 인정해주고, 서로의 분리와 자립을 

인정해주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내 사랑과 고집이 상대방에게는 구속과 아집 나아가서는 폭력이 될 수도 있다는 것. 이것은 부모 자식 

관계에도 똑같이 해당되는 것이겠지요.


너는 내 자식이니까

너는 내 모든 것이니까 

다 네가 잘되라고 이러는 거야

너를 너무 사랑하니까 그런 거야

이러한 말들로

지금 오늘 나와 가장 가까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하게 되는 그런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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