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3월부터 8월까지 나는 인생에서 가장 힘든시기를 보냈다. 비교적 순탄하게 살아왔던 지금까지의 인생이 무색할 지경으로, 모든 나쁜것들은 몰아서 닥쳐왔다. 몸과 마음이 무너졌고 어떤 의욕이나 희망도 생기지 않았다. 내가 환자를 치료하는것이 아니라 환자들이 내걱정을 하고 있다는것을 깨달았을때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다.
하루 대부분을 침대에 누워 지냈다. 아침 8시쯤 눈을 떴지만 일어날 필요도 씼을 필요도 없었다. 네이버나 유튜브를 보다가 11시쯤되면 츄리닝차림으로 맥도날드나 지하 순두부가게에서 밥을 먹었다. 12시쯤 점심먹으러 나온 직장인들의 활기찬 모습을 대하면, 뭔지모를 패배감과 부끄러움에 pc방으로 자리를 피했다. LOL을 세시간 정도하고 중학생들이 하나 둘 게임방으로 들어오면 '쟤들은 나를 대체 머하는 아저씨로 생각할까' 하는 민망함에 자리를 피했고 다시 오피스텔로 들어가 침대에서 남은 하루를 보냈다.
이런 생활을 2주정도 하고난뒤 나는 다른 직장을 알아볼힘도 개업할 의욕도 꺾여버렸다. 좋은 자리에 계약금 300만원을 걸고도 날려버렸다. 해외여행을 가보려고도 했지만 지구반대편 혹은 북극을 간다한들 이 외로움과 허무감, 쓸쓸한 비참함은 사라지지 않을것 같았다.
나는 인생의 위기에서, 큰힘이 되어줄 사람들이 능력있고 잘 나가는 친구나 형들일거라 생각했었다. 김앤장 변호사나 교수, 금수저, 회사 중역등... 내가 어렵게 쌓은 인맥들이 빛을 발해 고민을 해결해주거나 든든한 지원군이 되줄거라 믿었다. 그렇지 않았다. 좌절해있는 나와는 달리 그들은 여전히 바쁘고 승승장구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만나기조차 어려웠다.
그야말로 세상에 나혼자구나라는 생각이 들무렵 딱히 절친도 아닌 중학교 동창 홍식이에게 연락이 왔다. 간단한 사정을 듣더니 대구로 내려오라고 했다. 하루만 자고 와야지 했던 대구에서 나는 일자리까지 구하며 3개월을 머물게 된다. 그동안 홍식이는 나에게 매일 찾아와 운동을 시키고 축구를 하자며 끌고 나갔다. 혼자 밥먹게 내버려두지 않았으며 부정적인 생각을 할때마다 억지로 차에 태워 수성못을 한바퀴돌았다.
뜨거운 여름, 월드컵 독일전, 미친 더위, 축구동호회 사람들과의 짧은 추억이 지나고, 다시 밤바람이 조금 서늘해질 무렵 나는 대구를 떠났다. 조촐한 캐리어 하나를 들고 ktx에 오를때, 어떤 무언가로부터 해방된, 졸업한 기분이 들었다. 나의 일부를 묻어두고, 내려놓고 간다는 느낌도 들었다.
나는 다시 행복해질수 있을까.
누군가를 믿고 사랑할수 있을까.
정신과 의사로서 다시 환자를 도울수 있을까.
이 모든것을 포기했던 나는 참으로 어렵고 힘들게 다시 용기를 낼수 있었다. 홍식이에게 친구를, 아니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는 법을 배운덕이리라. 그 어떤 계산이나 이익도 없이 보잘것없는 나를 위해 수백시간을 헌신해준 그의 정성은 내가 가치있는 사람이라는것을, 실은 혼자가 아니라는걸 다시 깨닫게 해주었다.
고등학교 동창 웅재, 판교에서 블랙야크매장하는 형섭이형, 안동에서 공보의하는 재형이. 전화한통에 농담한마디에, 같이 시켜먹는 족발하나에 행복과 미소를 주는 이들이 있음에 감사한다.
소중한 사람과 내가 만날 환자들에게 그에게 배운 진심과 따뜻함을 전하는 인생을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