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신과 의사 박종석 Dec 08. 2022

구로동 주식클럽 : 4화

자존감이란 무엇인가


‘영업1팀 민지운.’


지운은 목에 걸린 사원증을 몇 번이고 들여다보았다. 그날은 지운이 인턴 6개월, 비정규직 2년 만에 드디어 정규직이 된 날이었다. 이름만 대면 모두가 아는 대기업은 아니었지만 지운은


뛸 듯이 기뻤다.


지운은 전세대출을 받아 독립할 생각에 신나 날아갈 것 같았다. 독립만 하면 부모님 눈치 보지 않고 밤새 게임을 하고 외박도 할 수 있었다. 여자친구도 집에 데리고 올 것이다. 물론 여자친구는 없지만. 여자친구를 사귀는 것도 시간 문제였다. 정규직이니 당당하게 소개팅도 받을 수 있었다. 돈을 모아서 멋진 차도 살 것이다. 아직 학자금 대출도 아직 못 갚았지만.


‘괜찮아, 금방 모을 수 있어. 내년에 대출 다 갚고 거실 있는 오피스텔로 이사 가자. 소나타, 그랜저 다 건너뛰고 제네시스… 아니, 바로 BMW 지르자!’


정규직이 되고 첫 월급을 받는 날, 지운은 즐거운 마음으로 급여명세서를 확인했다.


‘실수령액 207만 원.’


지운은 머릿속으로 바쁘게 계산기를 돌려보았다. 스마트폰 요금 6만 9000원, 월세 70만 원, 한 달 치 전기세, 가스비, 식권 50장 15만 원, 지하철 교통카드 충전비 6만 원… 식비를 아끼기 위해 하루 두 끼를 구내식당에서 사 먹고 탕비실 커피믹스만 마시면서 한 달을 버텨도 저축할 수 있는 돈이 90만 원도 안 되었다. 그렇게 모아봤자 1년에 1080만 원. 정기 적금 이자가 조금 올랐다고 하지만 그만큼 물가도 오른 탓에 치킨, 피자를 한 번씩만 시켜 먹어도 7~8만 원이 나갔다.


아무리 계산을 해봐도 1년에 1000만 원 모으기도 쉽지 않아 보였다. 그렇게 10년 모으면 1억~1억 2000만 원, 조금 잘 모으면 1억 5000만 원이 될 것이었다. 그 돈이 있다 한들 집을 살 수 있나? 서울에 아파트를 사려면 100년은 쉬지도 쓰지도 않고 일해야 했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부모님 찬스를 쓰는 사람들도 있다지만 지운은 예외였다. 부모님께 도움을 받기는커녕 이제부터 용돈을 드려야 할 처지였다. 서울 아파트를 포기한다고 해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직장이 구로디지털단지역이니 광명, 시흥 정도에서 집을 얻어야 했다. 강원도에서 출퇴근할 수는 없었다. 술자리, 친구 모임, 동호회, 연애를 다 끊고 사회적 인간이길 포기해도 30년 정도는 있어야 낡은 빌라를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 결혼은 언제하고 아이는 언제 낳지? 지운은 앞으로 펼쳐질 인생의 모든 이벤트가 다 희미하게 느껴졌다.




***




일요일 오후 3시, 청담동 로데오 거리의 A 카페. 명품 가방과 시계로 치장한 사람들이 모여 화기애애하게 담소를 나눈다. 포르쉐, 레인지로버 등이 줄지어 주차된 발레파킹 장소 한구석에 지운이 서 있었다. 자신과는 다른 사람들이 즐비한 이 거리에서 지운은 이방인이 된 기분이 들었다.


언젠가 나도 이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당당하고 여유롭게 살아갈 수 있을까? 지운은 상념에 잠겼다. 그날은 현도와 지운의 첫 번째 컨설팅 미팅 날이었다. 만나기로 약속한 시간이 10분쯤 지났을 무렵 지운의 앞에 아우디 A7 한 대가 섰다. 창문이 스르륵 열리고 현도가 얼굴을 내밀었다.


“여~ 지운이!”


“어, 형님 차 바꾸셨어요? 지난번 차하고 다른데?”


“별거 아냐. 이번 달에 목표 수익 초과 달성해서 세컨드 카로 하나 더 질렀다.”


1억 원짜리 벤츠에 아우디까지… 지운의 눈이 반짝였다.


현도와 지운은 카페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카페에서 가장 저렴한 메뉴인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홀짝이던 지운에게 현도가 말했다.


“지운아.”


“네, 형님.”


“너 자존감이 뭔지 아니?”


“아… 그 자기 확신? 자기 자신을 얼마냐 믿느냐 그런 거 아닌가요?”


현도는 피식 웃으며 말없이 왼쪽 손목을 걷었다. 시계가 번쩍거렸다. 지운이 태어나서 본 시계 중 가장 화려한 시계였다.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시계의 태엽과 부품이 마치 장난감 같았다. 현도가 말을 이었다.


“이거 1억 원짜리다. 리처드 밀.”


“1억 원이요?”


히익, 하고 지운이 소리 내어 숨을 들이켰다.


“일반인이 못 찬다, 이런 거. 팔지도 않아.”


현도가 씨익 웃으며 테이블에 무심한 듯 벤츠와 아우디 로고가 보이는 차 키를 올려두었다. 반포 아파트 입주민 카드도 함께였다.




“이런 게 자존감이야.”




현도가 말하는 세상의 이치는 학교에서, 부모님에게 배웠던 것들과는 너무나 달랐다. 지운은 ‘이런 이치를 몰랐기에 우리 부모님은 평생 외제 차 한 번 못 타고 서울에 집 한 칸 마련하지


못한 것일까’ 우울해졌다. 물끄러미 반쯤 남은 커피잔을 바라보고 있던 지운에게 현도가 말했다.


“지운아, 자본주의는 말이야. 깨닫느냐와 깨닫지 못하느냐의 차이야. 이걸 모르면 평생 낙오자로 사는 거지.”


허리디스크 수술도 미룬 채 30년째 식당을 운영하는 아버지와 류머티즘 약을 먹어가며 그 일을 돕는 어머니. 그것이 지운 가족의 현재가였다. 낙오자라는 말이 지운의 가슴을 먹먹하게 후벼팠다. 현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수업 시작해야지? 자리 옮기자. 스시 오마카세 집 예약해놨어.”


서 있는 현도를 올려다보며 지운이 말했다.


“네? 형님, 전 여기도 괜찮은데….”


“인마, 사업 이야기하는 곳은 따로 있는 거야. 이렇게 오픈된 곳에서 어떻게 고급 정보를 함부로 이야기하냐? 프라이빗한 룸에서 해야지.”




***




지운과 현도는 청담동의 고급 일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오마카세 코스의 가격은 한 명당 25만 원이었다. 주류 메뉴판에는 처음 보는 사케와 와인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지운은 현도에게 또 촌스럽다고 핀잔을 들을까 봐 표정을 관리했다. 곧 유튜버 겸 인플루언서 유미와 유미의 아는 동생 지연이 일식당에 도착했다. 현도는 둘과 잘 아는 사이라고 했다.


현도가 자리를 잡고 앉은 유미와 지연의 앞에 놓인 술잔에 술을 따르며 말했다.


“유미야, 지연 씨, 한잔해! 여기는 민지운이라고, S물산 대리!”


“어머, 진짜?”


현도의 거짓말에 깜짝 놀란 지운이 현도에게 귓속말을 했다.


“형, 저 S물산 아니고 협력사… 그리고 사원인데요.”


현도가 조용히 하라는 듯 검지를 자신의 입술에 가져다 대며 윙크했다. 그러고는 유미와 지연에게 웃으며 말했다.


“여기 지운이, 이번에 주식으로 2억 원 벌었잖아. 오빠가 종목 알려준 거야.”


“진짜? 어떻게? 오빠는 정보를 어디서 들은 건데?”


지연의 눈이 동그래졌다.


“저번에 오빠가 이야기한 리딩방 있잖아. 그거랑 또 오픈톡, 텔레그램.”


유미가 지연에게 팔짱을 끼며 말했다.


“지연아, 현도 오빠 진짜 장난 아니야. 이 오빠랑 두 시간만 이야기하면 2000만 원은 그냥 번다?”


지운이 앉아 있는 공간은 꿈과 현실, 거짓과 이상이 진흙처럼 뒤엉켜 있었다. 공기 중에 떠도는 말들이 지운에게는 25만 원짜리 초밥만큼이나 현실감이 없었다. 진짜 이게 맞을까? 정말 이런 방식으로 돈을 벌 수 있는 것일까? 지운은 그것을 판단할 힘이 없었다. 경제력이 자존감인 세상에서 가난한 지운이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늘 여기, 지운이가 쏜다!”


현도가 지운을 턱으로 가리키며 큰 소리로 말했다. 유미가 깜짝 놀란 듯 손으로 입을 가렸다.


“진짜? 현도 오빠가 쏘는 거 아니고? 지운 오빠는 잘생겼는데 돈도 많은가 보네?”


“그럼, 많지! 그리고 나보다 훨씬 더 부자 될 거야. 유미야, 지운이 연봉 5억 원 될 애니까 미리 점찍어둬라.”


이것을 내가 계산해야 한다고? 멍하니 앉아 있던 지운의 눈이 당혹감과 불쾌감으로 번쩍 뜨였다. 하지만 현도의 기분을 상하게 할까 봐 지운은 그 자리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곧 식사가 끝났다. 연봉 5억 원이란 말 때문인지 빈속에 사케를 몇 잔 들이켰기 때문인지 평소보다 빨리 알딸딸해진 지운은 얼떨결에 카드를 긁었다. 143만 원. 한 끼 식사로 난생처음 보는 금액을 결제한 지운에게 현도가 귓속말했다.


“카톡 확인해봐, 인마. 형이 밥값 넣어놨다.”


지운은 현도가 자신을 호구로 본 게 아니라 면을 세워주려 한 거라는 사실에 안도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집으로 가는 택시를 잡아탄 지운은 현도가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를 확인했다. 거기에는 계좌 이체 내역이 아닌 딸랑 한 줄이 적혀 있었다.


‘엑시스타디움.’


당황한 지운이 빠르게 답장을 보냈다.


‘형, 이게 뭐예요?’


‘밥값.’


‘죄송하지만 이게 뭔 소린가요…?’




‘ㅋㅋㅋ아이고, 지운아. 너 진짜 나 안 만났으면 어쩔 뻔했냐? 코인이야, 코인.’


 


***




“상처받은 개미들이여, 구주 클럽으로 오라!”


하이퍼리얼리즘 투자 픽션


<구로동 주식 클럽>



박종석 지음



12월 14일 출간 예정


작가의 이전글 구로동 주식클럽 : 3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