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변의 역사 속, 생명을 관조하는 거인의 통찰력
거인의 발자취를 더듬어 한 숨을 돌리기까지 만 4개월이 걸렸다. 연이어 읽게 된 불신시대, 파시, 노을진 들녘, 시장과 전장, 김약국의 딸들과 같은 작품들을 합치면 반년 정도는 박경리 선생의 세계에 빠져서 살았던 것 같다. 각각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한 계단씩 올라갈 때마다 마치 장님이 코끼리 만지듯, 커다란 지도의 퍼즐을 맞추어 보려고 하지만, 거인의 세계는 짧은 시간에 손바닥에 들어오지 않는다. 장인이 25년에 걸쳐서 완성한 작품을 몇 개월 만에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박경리 작가는 평생을 '집필'이라는 골방에 자신을 가두어놓고 작품들을 만들어내셨다. 그분의 일대기를 자세히 살펴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삶을 위한 투쟁과 고난 그 자체이다. 그리 흔하지 않은 인터뷰나 강연을 가만히 경청하고 있노라면 그분의 목소리와 말투, 톤, 억양, 제스처, 그리고 사용하는 단어들과 그 분위기 속에서, 역경을 딛고 처절하게 자기를 혹사시켜가면서 무언가를 만들어낸 장인의 숨결이 느껴진다. 그 아우라가 그렇다. 그것은 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분의 인생과, 이 시대의 역사가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 같다. 이 쓸쓸하고 나약해 보이는 노인의 업적을 바라보고 있으면 가슴이 시려오고 눈물이 난다.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글감옥 속에서 그렇게 고집스럽게 이룩하려고 했던 것은 무엇일까....
박경리 선생은 1926년 경남 통영에서 태어났다. 이혼한 어머니의 외동딸이었으며, 본명은 박금이, 어려서부터 아버지에게 외면당한 어머니, 즉 여자의 기울어진 일생에 대한 환멸과 연민으로 고통스러운 유년시절을 보내게 된다. 일제 식민지 시절 일찍 결혼을 하고 아들과 딸을 낳지만 곧바로 남편이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되어 행방불명을 당하고(아마도 사상범으로 처형된 것으로 짐작된다) 집안의 유일한 남자였던 어린 아들마저 사고(알 수 없는)로 죽는 비극을 겪는다. 추후 김영주 토지문화관 이사장(박경리 선생의 외동딸)의 인터뷰나 박경리 작가의 소설들 속에서 그 부분들이 어느 정도 어렴풋 들추어지는데, 아마도 작가의 일대기 중에서 가장 비극적인 순간이 아니었을까... 하고 짐작해본다. 아버지의 부재와 남편의 사형과 같은 아픔들이, 아들의 죽음을 통해서 더욱 배가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공식적으로 작가와 관련한 모든 자료의 그 어느 부분에서도 아들의 죽음의 원인이라든지 경위를 정확하게 확인할 수 없는 것을 보면, 아마도 평생의 짐으로 생각하고 자신 속에서 거두고 감싸고 품은 것으로 보인다. 남편과 관련하여서도 작가의 생전 인터뷰 등에서 '남편이 투옥되어있는 그 혹독한 겨울에 꽁꽁 얼어붙은 한강 다리를 건너는 동안 나의 발이 미끄러져서 다리 아래로 떨어지면 이 고통이 끝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였다고 언급하였는데, 이는 '불신시대'라는 작품 속에 고스란히 단어 하나 틀리지 않고 재현되어 더욱 독자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 같다.
나의 출생은 불합리했다. 이 허무한 세상에 왜 내가 태어났으랴 하는 따위의 뜻은 물론 아니다. 그것은 부모들의 관계에서 온 나의 견해였다. 아버지는 죽는 날까지 어머니에 대하여 타인이라기보다 오히려 적의에 찬 감정으로 시종일관했다. 어찌하여 사랑하지도 않고 그렇게 미워한 여인에게 나를 낳게 했는가 싶다. 어머니는 말하기를 산신에게 빌어 꿈에 흰 용을 보고 너를 낳았으니 비록 여자일망정 너는 큰 사람이 될 것이라고, 나는 그 이야기를 시시하게 들었을 뿐만 아니라 산신에게 증오하고 학대하던 남자의 자식을 낳게 해 줍시사 하고 애원을 한 어머니를 경멸했었다. 그것은 사랑의 강요였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그러한 모습은 내게다가 결코 남성 앞에 무릎을 꿇지 않으리라는 굳은 신념을 못 박아 주고야 말았다. 그 신념은 무릇 강한 힘에 대한 반항이 되었고 그러한 반항 정신이 문학을 하게 한 중요한 소지가 되었을지는 모르지만 인생에 있어서 나를 고립시키고 말았다. 나는 어머니에 대한 연민과 경멸, 아버지에 대한 증오, 그런 극단적인 감정 속에서 고독을 만들었고 책과 더불어 공상의 세계를 쌓았다. <박경리' 원주통신, 반항 정신의 소산’에서>
수많은 사이트나 각종 문헌들에서 작가의 일대기를 많이 다루고 있지만, 여러 가지를 종합해보았을 때 작가의 성격과 자세, 세상을 대하는 태도와 집념 같은 것들에 많은 영향을 준 것은 아마도 위에서 언급한 사건들이었을 거라고 짐작이 된다. 그러나, 외동딸이 김지하 시인과 결혼하면서 고난의 또 다른 행군이 시작되었다고 봐야 하는데, 유일한 혈육인 외동딸이 처절하게 핍박받는 민주화 시인과 결혼한다는 것이 여자로서 겪었던 비극을 되풀이하게 한다는 슬픔이 어찌 없었다고 할 수 있으랴.
선생은 손자(외동딸의 첫째 아들)의 성장을 통해서, 그 참혹하고 어두운 시기를 유일하게 견디어낼 수 있었다고 하였다. 딸이, 투옥된 남편(김지하 시인)의 옥바라지를 하는 동안 주로 작가가 손자를 돌보면서 집필을 했다고 한다. 세상과 담을 쌓은 채 글을 써 내려가는 동안, 생명에 대한 무한한 애착과 단단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작가의 고단한 마음이, 아마도 어린 손자가 성장하는 것을 바라보며 치유되고 회복될 수 있었던 것 같다.
작가가 토지를 집필하기 시작한 것은 1969년부터이니 1994년 5부 마지막 편을 탈고하기까지 만 26년이 걸린 셈인데, 토지 집필 당시 그 이전의 작품들을 습작이라고 선언하고 과감하게 붓을 든 것을 보면, 아마 오래전부터 민족의 역사와 인간이라는 존재를 관통하는 그림을 그리려던 계획이 있었던 것 같다. [김약국의 딸들] 같은 작품을 보면, 여자들로 이루어진 한 가정사의 비극을 통해서 인간 개개인의 고통스러운 삶과 인생의 여러 가지 모양새들이 다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시장과 전장] 이라든지 [파시] 같은 작품들 속에서는 전쟁으로 수난을 겪고 있는 민족의 시대적 아픔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어서, 아마도 이후 [토지]를 통해서 작가가 그동안 추구해왔던 가치관과 의도들, 인간의 삶을 바라보는 시각과 문학적 열매들을 하나로 집대성하려 했던 것으로 느껴진다.
토지는 한국전쟁 이전부터 내 마음 언저리에 자리를 잡은 이야기예요. 외할머니가 어린 나에게 들려주던 얘기가 그렇게 선명하게 나를 졸라대고 있었거든요. 그것은 빛깔로 남아 있어요. 외갓집은 거제도에 있었어요. 거제도 어느 곳에, 끝도 없는 넓은 땅에 누렇게 익은 벼가 그냥 땅으로 떨어져 내릴 때까지 거둘 사람을 기다렸는데, 이미 호열자가 그들을 죽음으로 데리고 갔지요. 외가에 사람들이 다 죽고 딸 하나가 남아 집을 지켰다고 해요. 나중에 어떤 사내가 나타나 그를 데리고 어디론가 사라졌는데, 객명을 나타내는 벼의 노란색과 호열자가 번져오는 죽음의 핏빛이 젊은 시절 내내 나의 머리를 떠나지 않았어요. <송호근 ‘박경리, 삶에의 연민, 한의 미학’ 작가세계 1994 년>
토지는 구한말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여 민족 광복의 시기까지(1987 ~ 1945)를 다루고 있다. 하동 평사리의 한 양반가문의 몰락과 회복을 중심으로 그 주변에서 펼쳐지는 수많은 인간군상의 삶과 역사의 기작(機作)을 다양하게 보여주고 있으며, 당시의 인간 개개인이 짊어진 숙명과 운명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사는가, 역사는 당시 그들의 삶과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는가를 매우 폭넓게 그리고 있다. 하동, 통영, 서울, 만주, 동경에 이르기까지 일제강점기 시절 중국, 일본, 한국인의 생활상을 눈 앞에서 생생하게 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의 철저한 고증으로 아주 세밀하게 표현하였으며, 유래 없이 많이 등장하는 수 백명의 인물도 인물이거니와, 익숙해지지 않고는 해석하기 힘든 방언과 토속어의 향연도 작품의 분위기를 살리는데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소설로 쓴 일본론(日本論)'이라고 칭하는 [토지]는 작가가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던 일제강점기에 대한 생각들과 가치관, 역사인식과 문제점 등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는데, 여러 등장인물을 통해서 각각의 입장과 시각들을 다양하게 다루고 있어서, 평소에 잘 알지 못하였던 한국과 일본에 대한 실체와 진실, 그리고 그 상반된 민족성 등을 곰곰하게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던 것 같다. 작가가 가지고 있던 일본의 역사의식에 대한 비판, 끊임없이 추구하였던 생명론과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깊은 사색, 수난과 고통으로 뒤덮인 인간의 삶과 운명에 대한 다양한 예시, 여성을 중심으로 그린 가문의 비극사 등이 해방 이후 가장 영향력 있는 소설 작품, 한국 최고의 문학사적 업적으로 탄생하는데 그 역할을 다 하였다고 보인다.
1부에서는 최 씨 가문의 몰락과 용정으로 이주하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으며, 2부에서는 만주에서 다시 가문을 회복하고 진주로 돌아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후 3부 부터는 서울과 만주, 동경 등 그 무대가 사방으로 넓혀지고 이후 자손들의 시대를 거미줄처럼 엮어내어 마치 가지 치듯 스토리가 사방으로 뻗어나간다. 일본의 항복으로 해방을 맞는 날을 마침표로 소설이 끝나기까지 그 방대한 등장인물과 지역과 사건들에 혀를 내두르 된다. 특히 작품의 마지막 부분, 일본인 사감에 고집스럽게 대항하고 자신의 내면을 깊이 관조하는 상의(이홍의 딸, 이용의 손녀)의 모습이, 생전 박경리 선생의 유년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것 같아 마음이 먹먹하였다.
최초 집필 이후 수 없이 변형되고 왜곡된 부분을 바로잡았다고 하는 최근의 판본으로 정독을 하였건만, 3~4번은 더 읽어보아야 폭넓게 그림이 그려질 것 같다. 개개인의 힘들고 고단한 인생사들이 머릿속에서 스쳐 지나간다. 힘 없이 고통받고 사라지던 인물들의 슬픔을 공감하며 같이 눈물을 흘렸던 적도 있고, 지방 특유의 토속어와 방언의 경쾌함에 배꼽을 잡고 웃었던 적도 있다.
머릿속에서 오랫동안 맴돌고 있다. 나와 전혀 상관없는 허구의 인물들의 모습과 삶의 애환들이 내가 아는 사람들인 것처럼 마음속에 와 닿는다. 한국인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오랫동안 [토지]의 아우라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