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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back Jan 07. 2021

감각 포르노의 시대

  먹방이 유행이다. 벗방도 성행이고, 듣방도 출현했다. 사람의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모든 것에 자극을 주는 것이라면 가리지 않고 파고든다. 인간의 쾌락과 즐거움과 중독성과 기묘함을 살릴 수 있는 것이라면 그 무엇이든 보여주는 시대가 되었다. 


  감각의 세분화, 집중화라고나 할까. 손으로 무언가를 만지는 것부터 시작해서, 귀로 소리를 듣는 것, 입으로 맛을 느끼는 것, 아무것이라도 눈으로 보는 것, 그리고 코로 냄새를 맡는 것까지 모두 다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확대, 과장하여 표현하고 싶어 한다. 그것이 인간의 숨은 본능인가.


  상식 이상으로 거대한 음식을 펼쳐놓고, 일반인이라면 도저히 먹지 못할 양의 음식을 입으로 집어넣는 사람들에 열광하고 있다. 어쩌면 미각에 대한 대리 기쁨이나 보상심리이려나. 오래전부터 음식에 대한 여러 가지 방송은 있어왔지만, 음식이 아닌 사람의 입과 위장에 초점을 맞추고 그것이 입으로 들어가는 모양새에 탐닉하는 경우는 생소하다. 앞으로도 이러한 탐식이 성행할까. 음식 고유의 맛과 본질이 아닌, 인간의 몸의 기형적 변화와 넌센스가 각광받는 시대. 


  일본에서는 이미 에도시대 때부터 에로그로난센스가 유행하였다. 기묘하게 뒤틀리고 기괴한 형상을 한 것에 대한 찬미와 한계 없는 에로티시즘에 대한 집착. 쓰나미와 지진, 화산 폭발 같은 재앙 앞에서 자연스러움과 상식을 분실하고 난센스 한 인간의 삶과 허무에 탐닉하였던 그 문화를 우리가 뒤늦게 받아들인 것일지도 모른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한국영화의 황금기를 지난 후부터였는지 묘하게 진보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느낌도 있다. 그것이 세련인지 기형인지 모르겠지만, 최근에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베이지와 엘로우톤의 따뜻한 화면은 블루 계열의 차갑고 무거운 톤으로 변하였고, 고정뷰나 광각렌즈로 보여주던 풍경과 전경의 모습들은, 피사계 심도를 극단적으로 짧게 만든 렌즈를 이용하여 사람의 얼굴만을 화면에 꽉 채운 화면으로 바뀐 지 오래다. 비명과 욕설을 부각하기 위하여 인공적인 침묵을 이용하기 시작했으며, 문학으로 표현할 수 없는 거드름과 허세, 비아냥과 분노가 화면과 소리 곳곳에 녹아들어 있다. 이제는 롱테이크로 찍은 서편제의 진도아리랑 같은 화면은 사라졌다. 대신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듯한 강렬한 피와 인간의 땀구멍까지 보여야 하는 확대된 표정만 있을 뿐이다.


  최근 한국의 여러 아이돌 그룹들이 선보이는 세련된 멜로디에 마음을 빼앗겨 귀를 기울이고 듣다 보니 이상하게 곡 자체가 의식 속에서 불균형을 일으키던 상황은, 음과 가사가 서로 분리되어 서로 녹아들지 못했던 것이었으니 그것은 마치 어린 면허가 없는 어린 아이가 최첨단 자동차를 운전하고 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과 비슷한 기분이었다고나 할까. 아름다운 시인의 언어가 멸시와 조롱을 받고, 현란한 마술사의 광대극이 극찬을 받는 시대.


  성숙해지고 발효되지 못한 인식과 첨단기술의 조합. 지금 우리의 문명은 그 처지이다.


  감각은 신경계의 말단에서 느껴지는 기작이다. 그것은 나 자신의 내부가 아닌 외부와 직결되어 있고 짧고 빠르다. 일개의 인간부터 시작해서, 주변, 지역, 문화공동체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말초신경의 전쟁터가 되어버렸다. 극단적 말초신경이 판을 치는 신세계. 그야말로 오감의 포르노 시대이다.


  나는 인간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보고 깊은 사색을 요하는 문화에 목마르다. 갈증이 난다. 너무 자극적인 음식을 먹고 산 탓인지 그것을 중화시켜줄 담백하고 순수하면서도 투명한 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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