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이 취소되기도 하는가

by Silverback

70년대 후반부터~90년대 초반까지가 아마 한국에서 기독교의 분위기가 가장 뜨겁지 않았을까. 전쟁을 뒤로하고 서로 잘살아보려고 발버둥 치던 시기. 이촌향도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람들은 인간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신앙에 더욱더 의지하고 싶어 했고 그만큼 순수했던 입장도 있었다고 본다. 그 당시 국민학교 중학교 친구들은 언제나 자기네들이 다니는 교회에 같이 다니자고 소위 말하는 '전도'라는 것을 해왔고, 문학의 밤이라든지 각종 수련회 등의 즐거움을 목적으로 몇 번 기웃거려본 기억들이 많으리라 생각한다. 게다가 남녀 구별의 학업분위기와는 다르게 아름다운 여자아이가 교회에서 피아노라도 치고 있다면, 혹은 멋진 오빠가 성가대라도 하고 있었다면 어찌 일요일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다리지 않았겠는가.


흔히들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으면 무조건 천국에 간다고들 하지만 세상에 공짜란 없고, 아니나 다를까 내가 짧게 교회를 다니던 시기에도 그러한 내용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방인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일종의 하나님만 가지고 있는 생명 책이라는 것인데, 거기에 예수를 믿겠다고 선언을 하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여 구원을 하리라고 맘먹은 사람의 이름을 작성해놓고 그 사람의 행동이 이후로 방탕하거나 거짓된 삶으로 바뀐다면 지우개로 그 이름을 지워버린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으로 보면 한국의 교회는 구원이라는 말을 악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짚어 볼 이이다.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는 명목으로 사람들을 전도하고 있지만, 자칫하면 중세 로마카톨릭의 면죄부 판매와도 같이 자기삶의 합리화라든지 혹은 자칭 회개라는 것의 비논리적 정당성을 부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교회에 와서 목사님께 안수기도를 받고, 울부짖으며 방언을 터뜨리고 소리높여 회개하고 교인등록을 하고 자기 이름이 적힌 헌금봉투가 마련되면 구원이라는 관문을 통과한 것 같은 느낌을 강하게 받게되지 않을까. 죄사함 받고 싶어하는 것이야 인간의 본성이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죄사함이란 계약서도 아니고 인감도장도 아닌 것이라서 한번 예수를 믿겠다고 선언을 하고 신앙생활을 하기 시작했다면 육신이 죽을 때까지 항상 올바르고 신실하게 살아가려고 노력을 해야지만 구원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기억하라. 지우개는 인간의 발명품이 아니라 하나님의 발명품이라는 것을.


[출애굽기 32:3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시편 69:28]

저희를 생명책에서 도말하사 의인과 함께 기록되게 마소서


[요한계시록 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요한계시록 22:18-19]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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