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이의 목소리에는 독특한 주파수가 있다.
말로 설명하기는 힘들다.
그르렁거리는 마녀의 읊조림 같기도 하고
부들거리는 소녀의 하소연 같기도 하다.
그런데 호소력이 있다.
문장으로 끊어지는 음색의 끝부분에 무언가를 부여잡는 손아귀의 힘이 느껴진다.
그렇다고 거친 남성적 힘은 아니다.
앳된 소녀의 한이 서린 무게다.
아마도, 무슨 말을 하고 싶은 모양이다.
그래서 귀를 기울이게 된다.
언젠가 TV에서 흘러나온 버스킹...
잘은 모르겠지만, 몇 년간의 공백을 깨고 세상에 나온 듯
이전에 알던 이하이에서 어딘지 모르게 성장한 느낌이었다.
그 성장이란 뭐랄까...
자기 수행이나 훈련 같은 것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도피나 재충전 같은 것이었을까...
무언가 차분히 가라앉고 정련된 밀도의 녹진함으로 다가왔다.
오랜 시간 강바닥에 침전된 고운 진흙결처럼
얇았지만 단단하고 부드러웠다.
당시의 버스킹에서 흘러나온 이하이의 3곡은, 내가 글을 쓸 수밖에 없게 만든다.
Rose / 한숨 / Skyfall ...
특히 'Rose' 같은 경우에는 원곡과 전혀 다른 분위기로 전환되었다.
원곡이 마치 하우스 리듬같이 속도감이 있고 저돌적인 것이었다면,
최근 버스킹에서의 편곡은, 바로 이 곡이 원곡이라고 느낄 정도로
가사의 해석과 곡의 템포, 또한 목소리가 절묘하게 들어맞았다.
어쿠스틱 기타의 현음 만을 배경으로 한 시적인 읊조림이
이 곡의 주인을 찾았다고 외치는 것 같았다.
Rose는 원곡의 템포가 아닌, 바로 이 어쿠스틱 템포가 맞았다고 본다.
중간중간 키를 높일 때 드러나는 미간의 긴장.....
이하이가 도대체 몇 년간 잠수를 타더니
어느 절에서 득도를 한 것이 아닌지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자기만의 무기를 만들어온 느낌을 받았다.
이 가수는 아직 어리지만, 매우 강력한 무기와 함께 성장해서 돌아온 것이다.
쇄골과 목 사이의 얇은 피부 사이로 보이는 핏줄과 실루엣 같은 목걸이,
펜으로 그린 것 같은 옆머리 라인도 좋았다.
왼쪽의 귀걸이는 약간 덩어리가 있어서 실패라고 생각했는데,
마이크를 든 소매의 끝부분 색상과 매치가 되는 것을 뒤늦게 확인할 수 있었다.
게다가 차갑고 무심한듯한 표정이 없었다면 이 곡은 아쉬움을 남겼을 것이다.
보는 음악이 이러한 힘을 갖는다는 것을 다시금 느낀다.
'한숨'의 경우에는 남자가수와 같이 부르지 말았어야 했다.
정승환의 목소리는 탐이 나지만,
비음과 부드러움이 강조되다 보니,
종현이 이 곡을 작곡할 때의 처절한 외로움이 다소 상쇄되었다.
이 곡은 부드러움 보다는, 약간 허스키하고
그르렁거리는 이하이의 마찰력으로 끌고 가는 것이 맞다.
호소하면서 뱉어지는 한숨이 그것과 어울리기 때문이다.
'Skyfall'의 경우에는, 개인적으로 원곡 가수인 Adele 보다 잘 부른 것 같다.
Adele 은 몸으로 부르고, 이하이는 소리로 부른다.
곡 전체의 향기와 영화와 어우러지는 맥락으로 본다면 Adele의
사악하면서도 주술스러운 목소리가 일품이기는 하지만,
곡을 해석하고 리듬의 강약을 조절하면서 잡았다 놓았다 하는 부분에서는
이하이가 압권이다.
두 곡을 연이어서 블라인드로 들어보면,
쉽게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줄 수가 없을 것이다.
이하이는 작은 거인이다.
게다가 사악하다.
그런데 아름답다.
...Femme fatale'
악녀는 소리로 다가온다....
영상출처 : jtbc 비긴어게인 유튜브 페이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