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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back Aug 29. 2021

언어 왜곡의현실

  나이를 먹고 이것저것 잡다한 지식이 쌓여가고 사회생활도 하다 보니,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형태와 다양한 언어생활과 다양한 의사소통 수준을 접하게 된다. 조금 어렸을 때에는 그다지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살았으나, 이제 단어 하나로 중요한 지침을 내리고 문장 하나로 집단의 이익을 좌지우지하는 하는 일에 익숙하다 보니 그만큼 더욱더 언어생활이라는 것, 즉 말(言)이라는 것에 집중하게 되고 신중하게 된다.


  최근 2~3년간 코로나 시국이라서 더욱 그러하기도 하겠지만, 각종 뉴스와 사람들 사이의 대화나 커뮤니티 활동 같은 것들을 모두 온라인에서만 접해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얼굴 없는 글들만 떠다니는 사이버 고간 속에서 여간 스트레스를 받는 게 아니다. 글이야 안 보면 그만이고 소리야 안 들으면 그만이라지만 그것도 내가 보고 싶어서 보는 것도 아니고 듣고 싶어서 듣는 것도 아닌지라, 눈만 뜨면 인터넷이고 귀만 열면 각종 방송 영상물이니 속된 말처럼 눈, 귀, 입을 막고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일반적으로 누군가가 어떠한 제품을 리뷰한다든지 혹은 영화, 음악작품 같은 것들을 리뷰하는 경우라고 할 때에는 그 리뷰의 대상과 기능과 내용이 명확하게 정해져 있어서 그 리뷰가 잘못되건 잘되건 듣는 사람이 어느 정도의 기준과 잣대를 가지고 감상하고 평할 수 있지만, 어떠한 음식점에서의 점원의 태도에 대한 타인의 평가라든지 직장 내 타 부서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소문, 그리고 정치인들이나 정치색을 가진 사람의 행동이나 발언을 제3자가 전달하는 경우에는 그 말을 최종적으로 듣는 사람이 어떠한 기준을 가질 수 없어서 오로지 말을 전달하는 사람의 말에만 기대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누군가가 타인의 행동이나 발언 등을 전달할 때에는 그 발원지를 정확히 찾아가서 사실 그대로 파악한 뒤 전달하는 것이 기본이겠지만 사실 사람의 말이나 행동이라는 것은 그 앞뒤 맥락과 뉘앙스, 제스처, 억양, 분위기 등이 모두 섞여 있어서 마치 무 자르듯 일정 부분을 정확하게 재단하여 이것은 이러한 뜻이고 저것은 저러한 뜻이라는 식으로 전달할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오랫동안 대부분의 언론매체들이 어떠한 사건이나 유명인의 발언 같은 것을 언론사의 의도대로 해석하고 특정 집단의 이익에 부합하도록 앞뒤 맥락을 자른 채 보도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이는 비단 언론사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나 포털, 유튜브나 광고 등에서도 매한가지로 나타나는 문제이다. 


  이는 사람들이 인터넷이라는 매체에 더욱더 많이 의지하고 몰입할수록 심해진다. 특정 정치성향을 가진 인터넷 커뮤니티에 들어가면, 어떠한 동일 사건이라고 할지라도 그 커뮤니티 집단이 원하는 방식대로 기사를 해석하고 발췌, 재단하여 글을 포스팅한다. 우리나라처럼 좁은 땅덩어리를 가진 나라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몇 분 이내로 전 국민이 다 알게 되어있는 시스템이고 그러한 기사가 등장함과 동시에, 심하게 편중된 정치성향의 커뮤니티를 몇 군데 들어가 보면 혀를 내두를 정도로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자기네들의 가치관과 기호에 맞도록 게시판 분위기가 도배가 되는 형상을 목격할 수 있다. 어떠한 유명인이 나서서 화이트라고 외치면 그것을 블랙이라고 소문내기는 힘들겠지만, 그레이 톤으로 발언을 하면 좌우로 치우친 극단의 커뮤니티들이 그 글을 실어 날라 블랙이니 화이트니 온갖 분위기를 조성하여 리포스팅하고 도배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 되어버렸다.


  가끔 민감하고 심각한 사안의 기사들이 커뮤니티 사이트나 포털 뉴스에 나올 때, 그 당사자가 한 말이나 행동을 원본 동영상을 찾아가서 유심히 관찰해보면 그 사건의 앞뒤 맥락과 그 현장의 분위기, 그리고 발언의 뉘앙스와 사용 단어들의 조합 등으로 발언자의 의도와 뜻이 뉴스 기사나 커뮤니티 루머와는 얼마나 많이 다른지를 발견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정치인들의 발언은 말할 필요도 없을뿐더러 연예인들의 사건사고, 성범죄, 음주운전이나 위법한 교통사고라든지 음식점에서 일어나는 다툼들, 각종 이익이 걸린 여러 소송 등의 뉴스들에서 말이 전달되는 과정의 오염도를 쉽게 확인하게 된다. 어떠한 사건이 기자에 의해서 그 기자의 이익에 의해서 한 번 변형이 되고, 그 기사를 퍼오는 사람들과 커뮤니티의 이익에 의해서 2차 변형이 되고, 또한 그것을 받아들이는 최종 네티즌들의 각각의 이익에 의하여 최종 변형이 된다. 손에 칼을 든 사람이 있었다고 하면, 그 사람은 그 사람을 바라보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과 집단이 이기심에 의해서 칼로 살인을 한 사람도 될 수 있고 그 칼로 수술을 해서 사람을 살린 사람도 될 수 있다. 



  오늘도 아니나 다를까, 거의 매일 들어가보게되는 커뮤니티와 포털에서 특정인이 많이 거론되기에 그 사람의 발언 영상 원본을 찾아가서 자세히 들여다보니, 자칭 진보와 보수 쪽에서 자기네들의 시각과 가치관만을 가지고 색안경을 낀 채 가지고 노는 꼴이 너무 한심하였다. 이는 좌, 우 어느 한쪽 낫다랄 것 없이 노골적으로 편중되어있다. 그러니 지켜보는 사람들만 피곤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가 직접 목격하지 못했던 것에 대해서, 아무런 죄책감 없이 그 상황을 각자의 이익에 부합하도록 변형하고 왜곡한다. 그것은 모든 것을 인터넷을 통해서 감지하고 전달하는 시대에 이것은 정말 엄청난 권력이고 무기이다. 문제는 이러한 사실 왜곡 보도나, 헛소문, 근거 없는 루머 등을 제제할 수 있는 강력한 법적 조치가 없다는 것이다. 하긴, 만약 제제를 하고 조치를 취하는 집단조차 자기네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입장이라면 현실은 말 그대로 거짓말이 판치는 세상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실제 세상을 지배하는 힘은 돈도 지배도 아닌 거짓말' / Sin City 2005 -


  앞으로 코로나가 종식되더라도, 우리는 인터넷이라는 공간을 벗어나서 오프라인 만으로는 살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사람들의 얼굴을 대면하지 않고, 생전 보지도 못한 사람들과 익숙한 척 이야기를 하게 될 것이고,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을 평가하고 판단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주장하고 증명하기 위해서 단정하게 옷을 차려입고 사람을 만나 얼굴을 맞대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인터넷을 통해서 몇 가지의 텍스트와 이미지 자료 등을 통해서 서로를 파악하고 판결할 것이다.

 

결국 우리는 말이 아닌 기사로 우리를 증명하게 될 것이다 / 밥 우드워드(워싱턴포스트 부편집인)


  앞으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제대로 파악하기는 더더욱 힘들어진다. 더불어 그 사람과 관련된 사건과 발언, 이야기도 원래 만들어진 의도대로 이해하지 못할 것이고 믿기도 힘들어질 것이다. 모든 것이 인터넷이라는 가상의 공간을 통해서 부유할 것이고, 진실이라는 가치는 블랙홀처럼 깊고 깊은 곳으로 숨어버릴 것이다. 어쩌면 진실이라는 것 자체가 필요 없을 수도 있겠지. 우리가 보고, 듣고, 만지고 느끼는 모든 것은 거짓말로 만들어진 달콤한 기사들일 것이고 우리도 우리 자신의 행복과 이익을 위해서 거짓말을 제조하고 흩뿌려야 할지 모른다. 


  나 자신마저도 나를 믿지 못하는 때가 오지 않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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