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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back Aug 26. 2021

골프를 좋아하십니까 2

  팔자에도 없는 골프라는 것을 타의에 의해서 배우기 시작한 지 8개월, 아무리 억지로 한다고는 하지만 그나마 내 돈 내고 연습장을 다니는 것이니만큼 여러모로 집중하게 되고 노력도 하게 된다. 평소 상체운동을 하지 않았던 터라, 골프를 시작한 이후부터 여기저기 아픈 곳이 계속 생기는데 그 통증이라는 것이 꼭 나를 뒤쫓아오는 방해꾼인 것만 같아서 한사코 오기를 부려 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두고 보자는 식으로 덤벼들고는 하지만 결국 나에게 돌아오는 것은 그 주변으로 계속 나를 놀리듯 번져나가는 다른 부위의 통증일 뿐, 나약한 인간일 뿐인 내가 자연의 현상과 물리적 결과에 대항할 수가 없음을 절실하게 느끼는 요즘이다.


  그건 그렇다 치고, 나처럼 골프를 시작한 지 1년이 안된 초보들은 몇 개월 내내 비싼 고액의 사설 레슨을 받기가 부담스러워서 망설일 것 없이 인터넷 유튜브의 골프 관련 영상을 찾아보고는 하는데, 시국이 시국인지라 이놈의 유튜브 골프레슨 영상들은 이제 속된 말로 도를 넘어선 지경에 와있는 듯하다.


  그 시국이라는 것은, 코로나 때문에 모든 자영업자들이 4인 초과의 모임 규제 때문에 몰살당하고 있는 와중에도 유독 골프장만은 캐디를 포함하여 5인이 하나의 카트를 타고 돌아다녀도 멀쩡하게 영업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스포츠를 즐기고 싶은 사람들이 골프라는 것에 모여드는 현상을 의미하고, 도를 넘어섰다는 것은 골프 광풍의 분위기 때문에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는 레슨 영상들의 절박한 묻지 마 시청률 경쟁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나는 골프라는 단 하나의 스포츠를 접하면서 우리나라의 민족성과 현시대의 문화, 신체구조를 통한 움직임의 물리학과 경기를 대하는 자세에 대한 심리학 같은 것을 두루두루 공부하고 있는 중이다. 그 어느 것 하나 가볍다랄 것 없이 모두가 기이한 현상들이고 하나하나 괴이한 진풍경이다. 기(奇)와 괴(怪)가 합일하여 하나의 문화현상을 만드는 과정은 반드시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새로운 문화적 가치를 양산할 수도 있는 것이지만, 대부분은 순수한 문화적 본질을 왜곡한 채 그것의 영향력과 이익만을 가로채는 사람들이 등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일단 우리나라는 사람들의 DNA 자체가 뜨겁고 얇으면서도 탄성이 강하여 어떠한 문화적 현상에 대단히 빠르게 반응하고 흡수하고 소화시키는 특징이 있다고 본다. 흔히들 말해왔던 빨리빨리 문화라는 것이 얼핏 듣기에는 그저 우습고 망측해 보이는 것 같지만, 시대의 변화에 재빨리 대응하고 그 속에서 우리만의 새로운 질서를 찾아 그것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구축하는데 속도가 빠르다는 뜻이 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오랜 시간을 거쳐서 무언가가 차츰 쌓이고 농축되고 그것이 그 시대와 공간 속에서 차근차근 발효되고 완성되는 것과는 정반대로, 단시간 내에 강력하게 집중력을 발휘하고 치고 올라가는 분야에서 두각을 많이 나타냈던 것이다. 집중 집약된 목표를 향하여 강력하고 세밀하게 치고 들어가는 능력! 그것이 바로 한민족의 특성이고 능력이다. 양궁이 그러하고, 탁구가 그러하고, 골프가 그러하고, 사격, 펜싱이 그러하다. 경제발전이 그러하였고 반도체가 그러하였고 아파트 건설이 그러하였고 한류가 그러하였다. 오랜 시간에 걸쳐 역사적 맥락과 함께 쌓아 올린 문화의 노련하고 원숙한 가치가 아닌, 짧은 시간 안에 최대한 능력을 발휘하여 치고 올라가는 분야에서 우리는 두각을 나타낸다. 


  PC방과 노래방, DVD방, 커피빈의 붐(boom)을 기억하는가. 우리는 붐을 좋아하고 붐의 몰락에도 익숙하다. 그런데, 요즘 골프판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니 그때의 기억이 아스라이 지나간다. 혹시 이 골프 붐 또한 그 boom 이 되는 것은 아닐까. 우리나라 사람들의 열정이 이렇게 빨리 뜨거워졌던 분야는 그 이후에도 쉽게 식어갔지 않았던가. 더욱이, 골프 관련 유튜브 레슨 영상들을 보고 있노라면 90년대 말 용산의 용팔이 호객행위가 떠오를 정도로 골프 교습가들의 영상 호객행위가 그야말로 정점을 찍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그 비싼 돈을 내고 아주 어릴 때부터 프로 골퍼를 목표로 하여 골프를 전문으로 쳐왔던 사람들이 이제 20~30대가 되어 그 좁은 투어프로의 관문에서 낙마한 채 레슨가의 시장에 넘쳐나고 있는 현실. 인플레이션은 이제 골프레슨 시장에까지 퍼진 것이다. 일반적으로 초등학교나 중학교 저학년 때부터 프로선수를 목표로하여 제대로된 골프를 시작한 사람은 평균 1년에 6천만 원~1억 원 정도의 비용을 들여가며 10년 이상 훈련을 받는다고 한다. 1년 코스에는 기본적으로 레슨 비용이 있고, 장비비, 의복비, 액세서리, 그리고 합숙훈련부터 시작해서 주기적인 필드 이용비, 해외 전지훈련비 등이 포함된다. 그런 수많은 골프 지망생들이 이제 30대가 되어, 바늘구멍보다 더 어렵다는 투어프로의 관문은 고사하고, 여타의 경기에서 우승 한번 못한 채 개인 레슨 연습실을 하나 마련하기 위하여 발버둥 치는 다급한 현실은 유튜브의 각종 레슨 영상의 썸네일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지구상에서 가장 골프 잘 치는 방법

이것만 알면 ~ 무조건 해결됩니다.

이렇게 하면 ~ 자동으로 맞습니다.

~ 이러한 분들은 꼭 보셔야 합니다

조금 있다가 삭제할 영상 ~ 꼭 보세요

이것만 하면 초보도 고수되는 ~

이걸 모르면 10년동안 헛수고 ~

프로들은 일부러 안 가르쳐주는 레슨 ~


  나 같은 초보 골프 수습생들이야 항상 궁금하고 갈급한 마음이니 무심코 레슨 영상들을 클릭해보게 되지만, 막상 위와 같은 제목의 영상을 보고 나면 드는 생각이 무엇인고 하니, 이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20년~30년 이상 골프를 친 사람들인데, 왜 5분 10분만 투자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하는가...라는 것이다. 그 사람들의 이론은 대부분 다 맞는 말이고 오랜 경험에서 나온 자기들만의 고유한 테크닉이 확실하지만, 본인들이 수십 년 동안 피땀 흘려가면서 쌓은 테크닉들이 아니었던가. 몇 개월 동안 내가 그러한 티칭프로들의 영상들과 관점을 유심히 관찰해본 결과 그들은 기본적으로 썸네일의 제목 앞에 [적어도 3년 이상은 피 터지게 연습한다는 가정하에]는 말을 제외시켜 놓고 있다고 생각한다. 위에 써놓은 목록들 앞부분에 반드시 [적어도 3년 이상은 피 터지게 연습한다는 가정하에]라는 말을 같다붙여 놓고 나면, 그 모든 레슨들이 이해가 된다.



  또 하나 덧붙이자면, 생존경쟁에 몰린 유튜브 골프 프로의 다급함이라는 것이 너무 티가 나는 경우는 바로 레슨을 빙자하여 마지막에 자신들의 물품을 팔거나 특정 물품을 홍보해주는 것인데, 아니나 다를까 (자칭) 프로 골퍼 들의 절박함이라는 것은 그들이 처한 골퍼 인플레의 생존경쟁과 수십 년간 투자된 돈의 회수를 위한 장삿속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하면 내가 너무 이기적인 것일까. 들리는 말로는 티칭프로들의 유튜브 영상은 구독자와 조회수를 늘리려는 목적도 있지만, 그것을 겸비하여 오프라인 레슨과 스튜디오의 홍보를 위한 것이라고도 하니 이놈의 골프 붐이라는 것이 말 그대로 붐으로 끝나는 시기에 그 사람들의 생존경쟁도 극에 달할 것이라는 암울한 망상을 해보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



  골프는 다른 구기종목과는 달리 유난히 신사적이고, 다급하지 않으며 치열하지도 않다. 내가 목격한 프로 골퍼들의 경기에서는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법도 없고, 기분이 상했다고 삿대질하는 경우도 없으며 열을 올리며 점수에 집착하는 사람도 없다. 유난히 실력이 좋은 골프선수일수록 이 운동 자체가 운도 좋아야 하고 컨디션도 좋아야 한다는 점을 믿는다. 그래서 그들은 대부분 겸손하고 결과에 인색하지 않다. 자신의 플레이를 받아들이고, 상대방의 버디에 고개를 끄덕여주고 경기가 끝난 후 웃으면서 악수를 건네는 말 그대로 젠틀맨들이다. 그러한 슬로 에티켓과 예의범절의 정점에 올라와있다고 하는 골프라는 스포츠가, 우리나라에서 유난히 '붐(boom)'이라는 현상으로 자리 잡고 언제 불타올랐다가 사그라들지 모르는 모습의 뜨거운 감자처럼 이렇게 달아올라 있는지 씁쓸할 뿐이다. 전국의 골프장에서는 평일이나 주말이나 예약을 잡지 못해 안달이고, 필드에서는 7분마다 후발 팀이 밀고 들어와 후다닥 코스를 뛰고 건네주어야 하며, 정해진 듯 짜인 조식과 그늘집과 저녁식사 코스는 마치 유물 사진을 찍기 위해서 유럽여행을 가던 풋내기 대학생들의 허세 같은 것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라고 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나는 이 좁은 땅덩어리에서 비즈니스를 하기 위해서 골프를 배우고 있고, 나 자신의 만족을 위한 스포츠로 여길 여유가 없이 오늘도 또 다른 레슨 영상을 찾아보는 신세에 비참함을 느낀다. 뭐 이러한 취미 하나 가지고 이렇게 심각하게 생각하느냐고 질타할 사람도 있겠으나, 우리는 그 무엇이든 우리 각자를 위한 것으로 만들지 못하고 타인의 눈치를 보고, 생색과 허세의 관성에 들씌워져 살아가는 것에 익숙해진 것 같다. 내가 이 모든 환경의 제약을 뛰어넘어, 골프라는 운동을 오로지 나 자신의 취미와 여가로 생각하며 즐기는 날이 올 때까지 갈비뼈에서 오는 통증에 그리 기뻐할 수만은 없을 듯하다. 끝.



<참고이미지>

골프 독학 싱글되기(발행후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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