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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back Jul 25. 2021

딸과 엄마와 아빠

  태양과 지구와 달의 움직임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아빠와 엄마와 딸의 관계를 생각나게 한다. 남자와 여자의 감정이 다르고 자식과 부모의 감정이 다른데, 그 두 가지 알고리즘이 상호작용하면 참으로 재미있는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마치 태양과 지구와 달이 서로를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자기 스스로 자전, 공전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 집의 따님이 엄마와 말싸움을 할 수 있게 된 나이가 되었던 그 시기에, 나는 옆에서 가만히 그 두 사람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노라니 여느 중학교 자식 키우는 집의 모녀관계가 그러하듯 그것은 공부 스트레스로 인한 불평불만에 관한 것이었는데 1시간 2시간 계속 언성이 높아지고 방 안에서 무언가를 집어던지는 소리까지 나게 된 상황을 내가 견디다 못하여 중간에 끼어들어 진정시키고는 하였던 것이다. 나도 처음에는 감정의 물살에 휩쓸리기도 하였고 갈등에 익숙하지 못하던 터라 아내에게 화를 내기도 하였으며 따님을 타이르는 둥 싸우는 사람들끼리 서로 잘난 것이 없다는 식으로 중재하고 의도적으로 억눌러 갈등을 잠재우려고 하였는데, 그것이 말이 쉽지 당사자들끼리의 다툼이라는 것은 사실 옆에서 누군가가 끼어들면 마치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는 것처럼 싸움꾼들의 감정을 더욱 북돋는 효과가 있는 것이고, 그 투사들의 호전적 감정을 격앙시키기도 하는 것이었다.


  엄마와 딸의 싸움 속에서 도대체 아빠에게 무슨 잘못이 있으리오만은, 막상 두 사람의 극렬한 싸움을 말리던 아빠는 한껏 얼굴이 뜨거워지고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심하게 스트레스가 쌓여서 그것이 하루 이틀 이상 마음의 불편함이 지속되는 것이 아빠라는 타이틀을 지닌 남자라는 존재의 특성인 것을 명백하게 언급하는 바인데, 어찌 된 일인지 집안의 두 여인은 바로 엊그제 집안이 부서질 듯 싸우고 난 뒤 바로 그 다음날 아침부터, 생전 언제 그랬냐는 듯, 서로 스마트폰을 보면서 웃고 떠들어대며 저녁에는 급기야 TV 드라마까지 소파에서 같이 보면서 마치 친 자매처럼 일상을 자연스럽게 소비하는 것이 아닌가.  아빠이자 남편인 나는 어제의 기분과 감정의 온도가 아직 식지도 않아서 한껏 인상을 쓰고 집으로 퇴근하여 조용조용 분위기를 보며 무게를 잡고 있는데, 이 철없는 두 여인네의 방정맞은 깔깔거림은 괜히 두 당사자들의 다툼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었던 나를 오히려 저 멀리 밀쳐내고 자기들만의 짧고 반복적인 일상의 그래프를 그려내고 있던 것이었다. 


  그로부터 수개월이 지난 후 나는 이 여인들의 감정과 이성의 덫에 걸려들지 않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하였는데 어느 날 갑자기 예전처럼 심하게 두 사람이 다투거나 언성이 높아지는 경우가 있기라도 하는 날이면, 나는 일부러 태연하게 나의 고요한 일상을 음미하고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척 취미를 즐기는 방식으로 나만의 공간 속에서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터득하고야 만 것이다. 여지없이 그 다음 날에는 누가 그랬냐는 듯 이 여인들의 감정은 제자리로 되돌아와 있었으니, 나는 괜히 고래싸움에 등터진 새우가 되지 않았다는 티를 낼 수 있었으며 심연의 구렁텅이에 더 이상 빠지지 않고 이 귀찮은 두 위성을 관조하며 처연하고 무덤덤하게 나의 자리를 지킬 수 있게 된 것이다.


  나의 마음은 이제 고요하다. 이 세상의 모든 고통과 행복은 반복되며 흘러간다. 인생은 큰 크림을 그리며 완성되는 것. 철부지 두 여인들의 건강만을 기원할 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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