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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back Oct 04. 2021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 한나아렌트 / 1963

한나 아렌트 / 1963

  인류의 역사를 관통하는 성서의 예언과 그 비극적 사건의 한가운데에 서있는 기분이다. 현시대 사람들이 살아있는 동안, 차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 일어났고, 아마 훗날의 역사학자들은 자신들의 저서에서 이 시기를 어떠한 챕터의 커다란 분기점으로 기록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혼돈의 20세기였으며, 이른바 '세계2차세계대전'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그 사건은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도 연결되어 있다고 느껴진다.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라는 화두를 던지며, 인간이라는 존재가치의 부조리함과 진부함을 꼬집은 한나 아렌트의 명저를 접하고 난 뒤, 오히려 그 논제와는 반대로 인간의 사유가 얼마나 깊고 세밀한지 다시금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바로 그러한 책이다. 지구촌 한쪽에서는 아무런 생각 없이 본인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고 싶어 하지도 않고 그 일이 어떠한 파장을 미칠지 생각하기 싫어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냉철하고 객관적인 관찰과 비판으로 현상을 파악하고 분석하여 후손들이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유대인 학살의 현장에 직접 몸담고 있던 장본인인 아돌프 아이히만(Otto Adolf Eichmann)이, 전후 아르헨티나로 도피하여 본인의 과거와 정체성을 숨기고 살다가, 1961년 이스라엘  당국에 의하여 붙잡혀 끌려가 재판을 받은 뒤 처형당한 과정을, 한 유대계 독일 지식인이자 미국 시민인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라는 지식인(당시 뉴요커와 협업)에 의하여  철저하게 분석, 정리된 보고서의 형태로 출간된 책이다.


  1906년 독일 태생 유대인이었던 저자는 독일에서 철학을 공부하였으나, 나치의 유대인 탄압을 피해 프랑스로 탈출하였다가 독일의 프랑스 점령 이후 다시 한번 미국으로 망명한 뒤 철학 대신 정치이론분야에서 활동한 20세기 위대한 지식인이자 사상가이다. 그녀가 1961년 미국에서 머무를 당시 언론사 뉴요커를 위하여 아이히만 재판을 위한 특별취재를 담당하였으며 1961년부터 1962년까지의 아이히만 재판 과정을 참석, 전 과정을 정리하여 1963년 축약본 형태의 기사로 게재하였으며, 몇 개월 후 정식 책으로 출판하게 된다. 우리에게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재판 때문에 유명해졌지만, 사실 미국을 비롯한 서구권에서는 이미 그보다도 훨씬 이전에 전체주의의 기원(1951), 인간의 조건(1958) 등을 발표하며 이미 세계적인 사상가로서의 입지를 다져놓은 상황이었음을 알아야 한다.


저자인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나치 홀로코스트 사건을 체계적이고 치밀하게 분석한 사람으로 대표된다. 독일 태생 유대인 철학자로, 프랑스를 거쳐 미국으로 망명하였다


  일반적으로 한나 아렌트의 언어는 매우 길고 정교하면서도 복잡한데, 여차해서는 한 번에 문장을 읽어내기 힘들며 주어와 서술어 사이에 너무도 길고 긴 수식어의 목적어가 들어가기 일쑤여서 문맥의 앞뒤 상황과 그녀가 하고 싶은 말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고 읽지 않으면 어쩌다 마주치는 한두 마디의 반어와 비판에 목이 걸려 밥을 넘기기도 힘든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물론  나 같은 공돌이는 한나 아렌트 같은 철학자, 혹은 정치이론가의 깊고 치밀한 필력에 언제나 당황스럽지만, 한나 아렌트의 수준 높고 난해하기로 유명한 다른 저작들에 비하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그나마 끈기를 가지고 차근차근 읽어나갈 수 있는 수준이 되었으며, 주제 자체가 일반인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분야였으므로 어렵사리 이 작품을 완전히 체험할 수 있었다. 이 책의 전체적인 흐름은 이스라엘 재판장의 분위기에 대한 개괄부터 시작한 후 아이히만에 대하여 소개를 하고, 그가 어떻게 성장하였으며 나치당원이 되었는지, 어떻게 고위 관료로 진급하였는지, 맡은 업무가 정확히 무엇이었는지, 그가 바라던 이상향이 무엇이었고 어떠한 가치관을 가지고 복무에 임했는지 차근차근 풀어나간다. 그가 권력을 갖게 되었을 때 유대인을 이주시키는 문제를 정식으로 담당하게 시작하였으며, 감당할 수 없는 숫자의 유대인이 동부로 몰리면서 결국 이주 대신 수용소에 가두게 되고, 최종 해결책이라는 커다란 분기점으로 인하여 유대인을 절멸시키는데 일조하게 된 상황을 매우 상세하고 치밀하게 정리하고 있다.


그의 양심에 대해 그는 자신이 명령받은 일을 하지 않았다면 양심의 가책을 받았을 거라는 점을 완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저자는 히틀러의 나치 독일에서 근무하던 아이히만을, 생각하기 싫어하고 자신이 하는 일이 타인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 되돌아보기를 포기한 일종의 무심한 관료의 하나로 표현한다. 수백만명의 유대인을 이리저리 이주시키고 소개(疏開)하였으며, 끝내는 몰살당할 것을 알았으면서도 학살지로 내몰아 이동시키고 방관하였던 나치 친위대 관료에 대해서, 타인의 관점에서 생각하기를 그만둔 한심하고 터무니없이 멍청한, 다시 말해 사유를 허용치 않는 기계 톱니바퀴의 일종이라고 설명한다.


그의 말을 오랫동안 들으면 들을수록, 그의 말하는데 무능력함은 그의 생각하는데 무능력함, 즉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데 무능력함과 매우 깊이 연관되어 있음이 점점 더 분명해진다.
아이히만은 아이고도 맥베스도 아니었고 또한 리처드 3세처럼 악임임을 입증하기로 결심하는 것은 그의 마음과는 전혀 동떨어져 있는 일이었다. 자신의 개인적인 발전을 도모하는데 각별히 근면한 것을 제외하고는 그는 어떠한 동기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이러한 근면성 자체는 결코 범죄적인 것이 아니다. 그는 상관을 죽여 그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살인을 범하려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문제를 흔히 하는 말로 하면 그는 단지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결코 깨닫지 못한 것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친위대 관료들이 갖고 있던 자세들이 바로 그러했던 것이리라. 제3제국이라는 전체주의의 강력한 허상과, 총통의 명령이라는 이름 모를 망령, 국가와 민족이라는 보이지 않는 단체성은 개개인의 책임과 의무의 농도를 흐리게 했을 것이며 그러한 사상은, 뿌리 깊은 관료주의의 허울을 뒤집어 쓰고 커다란 흐름 속에서 본인은 아무런 사유도 공감도 하지 않고 그저 시키는 대로 따라 하는 것이 나와 모두를 위한 것이라는 명목 아래 사람들 각자의 가치관과 독일 국민 전체, 유럽 사회의 분위기를 휘감았을 것이다.


8000만 명으로 이루어진 독일 사회가 동일한 방법, 동일한 자기기만, 거짓말, 어리석음을 통해 현실과 사실성으로부터 분리되었다.
독일 국민 전체에 대해 가장 효과적인 거짓말은 히틀러나 괴벨스가 만든 '독일 민족을 위한 운명의 전투'라는 구호였다. 이 구호는 세 가지 면에서 쉽게 자기기만에 빠지게 해 주었다. 그것은 첫째로 전쟁은 전쟁이 아니라고 암시했다. 둘째로 전쟁을 시작한 것은 운명이지 독일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셋째로 전쟁은 독일 국민들의 생사가 걸린 문제로, 이들은 적을 전멸시켜야지 그렇지 않다면 전멸당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수천 년을 이어내려 온 핍박과 수난의 유대인 역사를 우리를 알고 있다. 이집트 파라오 시대에도 그러하였고, 로마 빌라도와 예수의 시대에도 그러하였다. 400년 전 영국의 셰익스피어의 작품 속에서도 유대인은 악명 높은 고리대금업자로 등장하였으며, 20세기 초반 세계대전이 지구를 휘감은 혼돈의 유럽에서도 유대인은 배척의 대상이었다. 디아스포라의 표본으로 여겨지는 유대인들의 분산된 생활방식은 생활 거처나 터전에 집중하기보다는 고정되지 않은 것,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집중하도록 형성되었다고 본다. 이는 부동산이나 토지 같은 것보다는 현물이나 재물, 금융 같은 것에 집착하도록 하여 기나긴 역사의 시간 속에서 그들은 항상 돈을 쥐고 있는 자, 혹은 고리대금 업자로 상징되었고, 결정적으로 1차 세계대전의 배상금 문제와 지독한 경제난 속에서 허덕이던 독일과 독일 국민들 사이에서 눈에 띄게 구분되는 모습으로 존재하였을 것이 자명하다. 물론 당시 독일이 유대인을 대하는 방식에 강력하게 반대의사를 표했던 북유럽 일부 국가도 있기는 했지만, 독일 뿐만이 아닌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 독일이 유대인을 다루는 방식에 매우 호의적이었으며 독일에 점령당한 국가들 또한 유대인을 제거할 목적을 가지고 독일과 같이 움직였다는 부분은, 이 선택받은 민족(이스라엘은 스스로를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민족이라고 여긴다)이 짊어져야 할 길고 긴 고난과 비극적 민족사의 쓸쓸한 결말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한나 아렌트는 이 보고서를 뉴요커에 처음 게재하기 전부터 유대인과 독일인 양쪽으로부터 엄청난 공격을 받았다고 알려진다. 이 책을 자세하게 읽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한나 아렌트의 어조는 처음부터 끝까지 체계적이고 단단한 어조로 유대인과 독일 양쪽을 구구절절 비판하고 있다. 그 어디에서도 유대인들이 숨 쉬고 살 곳이 없다고 배척하던 독일과 그 주변 국가들의 행태에서부터 시작하여, 그들을 가스실의 한 줌 잿더미로 여기고 있던 수많은 나치 친위대 관료들의 비인간적인 자세, 학살당할 유대인 명부를 서둘러 제작하여 독일 측에 넘기던 유대인 관료들의 어이없는 경쟁심과 부조리함 또한 집요하게 파헤친다.


농부들에게 격려 연설을 하기 위해 1944년 여름 바바리아로 갔던 한 여성 지도자는 독일인들이 염려할 필요가 없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비심 많게도 모든 독일 국민들을 위해 전쟁이 불행한 종말을 맞을 경우를 대비하여 가스사용을 통해 편안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해 놓았기 때문이다."
유대인 장로회는 아이히만과 그의 부하들을 통해 각 열차를 채우는데 얼마나 많은 유대인들이 필요한지에 대해 들은 다음 수송될 사람의 명단을 만들어주었다. 유대인은 등록을 하고 무수히 많은 서류들을 작성하였으며 재산을 보다 손쉽게 탈취할 수 있도록 하는 여러 장의 재산 관련 질문지들을 작성하고 또 작성했다. 그리고 그들은 집결지에 모여 열차에 탑승했다. 일부 숨거나 탈출하려는 사람들은 유대인 특별경찰에 의해 검거되었다. 아이히만이 아는 한에서는 아무도 저항하지 않았고 아무도 협력을 거절하지 않았다.


  어느 명석한 한 관찰자가 비운의 시대에 태어난 돌연변이 같은 무능한 관료의 말로를 보면서 읊어대는 세기말의 장송곡. 한나 아렌트는 그렇게 비정상적이고 우스꽝스러운 학살의 비현실성을 진부함, 혹은 평범함이라는 - 마치 피 비린내 나는 처형장에서 꼬리를 흔들며 떠돌아다니던 어느 집 애완견의 티 없는 모습처럼 - 아무것도 아닌, 그저 단순히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찰나의 노력이 결여된 악의 덧없는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녀의 말을 빌리자면, 아이히만은 철저하게 악인도 아니었으며 철저하게 무능한 사람도 아니었다. 그는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성실하게 이행하는 사람이었으며, 가족을 사랑하고 지극히 평범한 사고를 하며 살아가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다만, 그에게는 타인의 고통을 헤아리는 공감능력이 결여되었던 것이고, 그러한 것이 권력과 엄청난 힘을 가지게 되었을 때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이 기나긴 페이지의 책으로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 책은 아이히만 한 사람이 아닌, 당시 전체적으로 병들어있던 독일 국민들 전체와 유럽 전체, 자신들의 운명을 움켜쥐지 못한 채 혼돈의 도가니 속에서 서로를 등 떠밀던 유대인 공동체 자체, 그리고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익명성의 탈을 쓴 현대인들에게 시사하는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시대가 발전하고 문명의 수준이 높아지면서 인권이라는 것이 더욱 강조되고는 있지만, 과연 그 인권이라는 것이 측정이 가능하도록 수치화할 수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을뿐더러, 당시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수많은 핵무기와 천문학적 군사장비들이 지구촌 곳곳에 즐비한 이 시대에 우리가 무엇을 바라보며 인간을 정의할 수 있을지 고민해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간 각자 한 명 한 명이 엄청난 가치를 가지고 살아가는 시대. 그만큼 무거운 권력과 책임도 동시에 가져야 하는 미래. 반세기 전, 인간의 나약함과 부족함을 간파한 한 현자의 두꺼운 보고서 속에서 우리가 다시 인간의 본모습을 자세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면 분명히 가치는 있을 것이다. 예루살렘의 재판에 부족함을 느낀 작가가 스스로 아이히만을 재재판하며 선언한 판결문을 첨부하며 글을 마친다.


피고 자신은 전대미문의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 주된 정치적 목적이 된 국가에서 산 모든 사람의 편에 서서 그 죄가 현실적으로가 아니라 오직 잠재적으로만 유죄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내적이고 외적인 어떠한 우연적 상황을 통해 피고가 범죄인이 되는 길로 내몰렸는지 간에, 피고가 행한 일의 현실성과 다른 사람들이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라는 잠재성 사이에는 협곡이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오직 피고가 한 일에만 관여할 뿐, 피고의 내적 삶과 피고의 동기에서 가능한 비범죄적 본성 또는 피고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범죄적 가능성에는 관여하지 않습니다. 피고는 피고의 이야기를 불운에 찬 이야기로 만들어 들려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상황을 알고 있는 우리는 어느 정도까지는 만일 상황이 보다 유리했더라면 피고는 우리 앞이나 또는 다른 형사재판소로 나오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당신에게 인정해줄 용의가 있습니다. 논증을 위해서 피고가 대량학살의 조직체에서 기꺼이 움직인 하나의 도구가 되었던 것은 단지 불운이었다고 가정을 해봅시다. 피고가 대량학살 정책을 수행했고, 따라서 그것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는 사실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마치 피고와 피고의 상관들이 누가 이 세상에 거주할 수 있고 없는지를 결정한 어떠한 권한을 갖고 있는 것처럼) 이 지구를 유대인 및 수많은 다른 민족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기를 원하지 않는 정책을 피고가 지지하고 수행한 것과 마찬가지로, 어느 누구도, 즉 인류 구성원 가운데 어느 누구도 피고와 이 지구를 공유하기를 바란다고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당신이 교수형에 처해져야 하는 이유, 유일한 이유입니다.


아이히만은 1960년 5월 아르헨티나에서 체포되어 이스라엘로 압송되었고, 1961년부터 수개월의 재판을 거쳐, 1962년 6월에 처형당했다. 좌측 유리 파티션 내부 아이히만의 모습


좌측부터 벤야민 할레비(Benjamin Halevy) 판사, 모쉐 란다우(Moshe Landau) 재판장, 이치하크 라베(Yitzhak Raveh) 판사.


피고 아이히만 측 변호사 세르바티우스(Robert Servatius) 박사


이스라엘 측 검사인 이스라엘 검찰청장 기드온 하우스너(Gideon Hausner)


유리 파티션 내부에서 재판을 받는 아돌프 아이히만 (Otto Adolf Eichmann)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위원회의 위원으로 활동하며 유대인이 몰살당하는데 일조한 사람으로 대표되어 증인으로 출석한 유대인 핀하스 프로이디거(Pinchas Freudiger)



<참고>

1.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 한길사

2. 한나 아렌트의 말 / 마음산책

3. 아이히만 재판 및 항소 판결문 첨부

(출처 : The T.M.C. Asser Instituut)

4. 아이히만 재판 영상 중 일부 session.52 (유튜브)

https://youtu.be/FsLeAk3Vg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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