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벨라 버드 비숍 / 제임스 S 게일 / 바츨라프 세로셰프스키
'구한말'이라 함은 구한국(舊韓國:대한제국) 말기라는 뜻으로, 통상 조선시대가 막을 내린 시기 즉, 대한제국이 성립된 1897년부터 대한제국이 멸망한 1910년까지의 15년 사이를 일컫는다. 하지만 그보다 조금 더 이르게 1860년대 개화의 물살이 밀려오기 시작한 시간부터 나라를 빼앗긴 1910년까지의 혼란스럽고 비참한 사건들의 연속이었던 40년 기간을 말하기도 한다. 어찌 되었건 구한말이라는 단어는 우리나라 역사에 있어서 가장 비극적이고 가슴 아픈 병치레 기간이자 진통의 기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역사를 존중하고 그 의식이 남다른 우리나라는, 선조들의 훌륭한 저작들과 기록을 바탕으로 학창 시절부터 제대로 된 역사교육을 배워오고 있는데, 여기에 덧붙여 구한말 우리나라의 모습을 외국인의 눈으로 묘사한 훌륭한 책들이 있어서 감히 적극 추천하지 않을 수 없기에 이렇게 자판을 두드려본다.
1.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 (Korea and her neighbours) / 이사벨라 버드 비숍 (영국 왕실지리학자) / 1898
2. 조선, 그 마지막 10년의 기록 (Korean Sketches) / 제임스 S. 게일 (캐나다 출신 선교사) / 1898
3. 코레야 1903년, 가을 / 바츨라프 세로셰프스키 (폴란드 작가, 민속학자, 정치인) / 1905
영국의 저명한 여성 지리학자인 이사벨라 버드 비숍은 1894년부터 1897년까지 극동아시아 탐험을 진행하던 중 한국을 4차례 방문한다. 어려서부터 병약했던 저자의 불행한 개인사는 짧게 설명하기 힘들지만, 내적인 병마와 정신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미지의 세계로 탐험하고자 하는 목표를 세웠던 것 같고, 아메리카뿐만이 아니라 이슬람 국가들, 그리고 아시아까지 걸쳐서 전 지구적인 탐험을 완성하는 대가로서, 한국을 방문할 당시부터 이미 영국에서는 대단한 유명인사가 된 이후였다.
저자는 나이 든 여성이었지만(한국을 방문할 당시 64세), 탐험에 대한 열정과 동아시아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것 같다. 1800년대 말, 우리나라의 환경이라는 것은, 여러 선교사나 외국인들의 저서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바, 마땅한 숙박 시설이랄 것이 없고, 통역과 환전과 위생에 대한 개념조차 희박하던 때였으니, 나이 든 여자의 몸으로 조선시대 성리학의 사상이 아직도 지배적이었던 시기에 여사가 남장을 하고 갓을 쓴 채 여행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도 있다.
그녀는 우리나라가 역사적인 변환기를 거치는 시기에 왔다. 그녀는 치밀한 관찰능력과 뛰어난 분석력을 겸비하였으며, 이미 오래전부터 인정받은 시인과 작가로서의 능력을 발휘하여 사진으로 꼼꼼하게 기록하고, 글로 정밀하고 아름답게 집필하였다. 탐험가와 작가로서 이미 유명하였으며, 또한 영국의 유서 깊은 성직자 집안 출신이었던 그녀는 우리나라에서 이전부터 활동하고 있던 여러 선교사들과의 교분과 인연으로 당시 우리나라의 경제상황과 정치상황, 민생에 대한 이해와 지리학적 정보를 빠르게 섭렵할 수 있었다.
바로 이렇게 고래의 상황, 이 말 할 수 없는 관습의 세계, 이 치유 불가능하고 개정되지 않은 동양 주의의 땅, 중국을 하나로 묶는데 도움이 되는 인종적 강인함을 지니지도 못한 중국의 패러디인 이곳에 서양 문명의 효모가 발효하기 시작한 것이다. 수 세기에 걸친 잠에서 거칠게 뒤흔들려 깨워진 이 미약한 독립 왕국은 지금, 반쯤은 경악하고 전체적으로는 멍한 상태로 세상을 향해 걸어 나오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놀라울 정도로 꼼꼼하게 우리나라의 모든 것을 관찰하고 분석하고 정리하였다. 동학농민운동과 민비 시해, 청과 일본의 권력다툼과 고종의 아관파천 등을 비롯한 정치 사회적 상황은 물론이며, 부산-제물포-서울-금강산-원산-개성-평양-순천 등을 돌아다니며 우리나라 서민들의 일상과 종교, 무속신앙, 각종 풍습과 심지어는 무역 데이터와 외교문서들까지 조사하여 당시 우리나라에 대한 백서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이닐 정도이다. 세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정립한 객관의 귀, 미세한 물건 하나까지도 자세하게 관찰하는 탐험가의 눈, 정확한 언어와 뛰어난 단어를 사용하는 작가의 정신, 그리고 인간을 사랑하며 그 가능성을 발견하고 책을 읽는 사람들과 후세의 사람들에게 지식과 희망을 전달해주는 시안의 마음까지 지닌 이사벨라 버드 비숍의 이 책은, 당시 우리나라를 설명하는 가장 친절한 논문이자 해설서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백두산의 고도는 2,400여 미터에 이르고 한국인에 의해 신성한 산으로 여겨진다. 이 산줄기들은 멀리 남쪽으로 분명한 산맥이 되어 해안선을 따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이어지며 서쪽으로는 많은 산맥과 지맥을 내어 놓는다. (한국의 지형에 대해서 탁월한 관찰력을 드러내는 부분)
돛에 쓰이는 천은 투박한 직물로 만든 것이다. 이는 비스듬히 움직이는 대나무들로 지탱되고 있으며 그 각각에는 밧줄이 묶여있다. 이들은 아딧줄로 비로소 하나의 돛이 된다. 이 아딧줄에 의해서만이 돛은 기능할 수 있다. 아니 그나마 기능이 가능하다는 표현이 더 옳을 것이다. 실제로 항해는 가벼운 순풍이 불 때 이루어진다. 바람이 강해질 때마다 돌돌 말아 묶어 놓은 천과 대나무의 결합은 요란하게 밑으로 펼쳐진다. 노를 젓는 과정 또한 무시할 수 없는 항해의 요건이다. 한 부류는 배의 고물에서, 다른 부류는 선체의 중심부를 따라 위치하는 비스듬한 선폭에 매어 있는 밧줄 걸이로 노를 젓는다. (상황 설명에 대한 묘사)
그녀는 1894년부터 1897년 사이, 만 11개월간 우리나라의 구석구석을 직접 몸으로 체험하면서 장차 이 나라의 운명과 가능성을 예견하고, 또한 외세나 부패한 관리 집단이 만연한 암울한 상황에 대해서 경고한다. 외국인이 가질 수밖에 없는 편견을 극복하고, 한 명의 똑같은 인간으로서 한국사람을 바라보고 생각하는 자세와 수 천년의 역사를 가진 민족이 처하게 될 운명을 우려하는 어머니의 심정으로 저자는 한국을 부지런히 묘사하였다.
진정한 애국심은 빈곤했다 할지라도 한국의 일반 백성들은 임금의 신성한 권위를 아름답게 여겼기에 임금이 당하고 있는 수모에 치를 떨며 분노했다. 일본의 성공 여부에 개인적으로 이해관계가 걸린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한 한국의 관료 계급은 거의 모두가 새로운 제도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였고 모든 변화에 대하여 분개했다. 이들 관료 계급은 일본에 의한 개혁이 백성들을 수탈하고 뇌물 등의 부당 이득을 취할 수 있는 권력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임을 알아차렸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행해진 많은 개역들은 일본의 영향을 받았지만, 한국은 그것을 받아들일 여유를 가지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 개혁을 수행하고 변화를 위한 조화로운 계획을 실천하기에는 너무도 경험이 없어 보인다. 게다가 그 계획을 수행해야 하는 사람들은 거의 모두 전통과 인습에 의해 타락해 있다. 모든 개혁의 시도들은 너무 조급하게 시작되어 너무 빨리 조각나 버린다. 일본이 지도한 개혁은 국가적인 관례에 끼어들고 작은 문제를 간섭하기를 좋아함으로써 한국인들을 분노하게 했을 뿐이다. 곳곳에 드러나는 사건들을 보고 내가 판단하건대, 일본이 한국의 개혁을 부르짖는 목적은 한국을 자신의 것으로 하기 위한 명분을 축적하려는 것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당시 우리 민족의 역사적 비극과 개화기 혼돈 상황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볼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들이 외국인의 글에 의해서 일말의 오차 없이 정확하게 묘사되고 있는 부분, 그리고 앞으로 닥쳐올 일제 식민의 악몽이 부패한 관료들과 친일파들에 의해서 바탕이 되고 있는 부분을 살펴볼 때, 우리가 이러한 책을 통해서 뼈아픈 과거를 되돌아보고 불행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는 이유를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1세대 선교사라고 불리는 제임스 S. 게일에 의해 쓰인 이 책은, 1888년부터 1898까지 저자가 조선에서 선교활동을 하면서 겪은 여러 가지 일들과 생각들을 책으로 펴낸, 감동적인 기록이다. 저나는 물론 그 이후에도 계속 한국에서 선교활동을 하면서 우리나라 개신교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는데, 목사로서의 종교적인 활동 및 성경번역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최초의 한영사전 편찬부터 시작해서, 우리나라의 고전문학을 번역하여 해외에 전파하기도 하였으며, 영어본 명저들을 한글로 번역하여 우리나라에 소개하는 활동도 꾸준히 하였다.
이사벨라 버드 여사의 책이 학문적이고,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것에 대해서 총망라하는 일종의 논문이라고 한다면, 이 책은 지구 반대편에서 혈혈단신 종교적 사명감 하나만을 가지고 들어와서, 산간 오지를 누비면서 우리나라를 20차례도 넘게 돌아다닌 목사의 생생한 선교 경험담이며, 인간을 중심으로 사색한 종교적 회고록이다. 저자의 글은 어디까지나 사람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에, 개별적으로 만난 인물을 자세하게 관찰하는 데에 그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는 서양인의 고정된 시각에서 벗어나서, 특정한 시간과 공간, 사건과 문화에 속해있는 인간에 대한 연민과 이해를 강조하였으며,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의 순수함과 소박함, 성실함 같은 것들에 대해서 각별한 존경심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그는 필력은 감동과 웃음을 선사한다. 그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당시 그 장소에 가서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듣는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합리성을 바탕으로 하는 서양인과, 유교적인 사상을 바탕으로 하는 조선인의 대화는 그야말로 부조리와 웃음과, 대립과 창조의 신세계이다. 너무도 다른 문화가 겹치고 부딪쳐서 만들어내는 일화들을 읽는 내내 박장대소하고 미소 지을 수 있었으며 때로는 먹먹하기도 하고, 구슬프기도 하였다. 개화기의 혼돈스러웠던 우리나라가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이고, 어리둥절해하고 습득하고 변화되는 모습들이 그와 같았을 것이다.
서둘러 들어간 방구석에서 치직치직 소리를 내며 헐떡이던 호롱불과 빛이 드러난 흙벽, 흙 천장, 흙바닥,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덮고 있던 담배냄새. 혹시 이곳이 고대 설화 속 저승으로 가는 길목에 있다는 그 여인숙은 아닐까. 나는 상상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섬을 둘러보고 식사를 하기 위해 서둘러 내려왔는데, 김 씨는 변변히 차린 게 없다며 미안해했다. 그렇게 기어 들어간 방은 늘 그렇듯 천장이 낮고 답답했다. 비록 김 씨가 변변한 것이 없다고 이야기했지만, 이미 나는 조선사람들이 손님 접대하는 것을 많이 경험해본 터였기에 큰 상으로 한 상 받을 것을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그 기대는 현실이 되었고, 바다에서 나는 모든 것이 올라와 있는 듯 빈틈없이 꽉 찬 상이 내 앞에 차려졌다. 흰 생선, 검은 생선, 몸통은 없고 전부 꼬리인 것 같은 생선, 중국 사람처럼 뼈대 없이 미끌미끌한 장어, 가슴이 두툼하고 단단한 게와 바닷가재까지. 나는 이 고기들이 최근 발표된 진화론상 어디에 속하는 놈들인지는 전혀 궁금해하지 않고 너무나 맛있게 그냥 먹어 치워버렸다. 너무나 착한 김 씨는 차린 것도 없는데 내가 깊이 배려해서 한 그릇을 말끔히 비워주었다며 영광스러워했다.
제임스 S 게일 목사는 우리나라 서민들을 유난히 사랑했던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인 초창기 선교의 시스템이 권력가나 관청, 각종 기관들을 통해서 위에서부터 서민으로 내려가는 구조였다면, 제인스 S 게일 목사 같은 몇몇 안 되는 선교사들은 직접 우리나라의 국토를 종횡단하면서 하층민들의 삶에 깊게 들어가서 같이 생활하고 체험하고 말을 배우고 신문물을 전파하였다. 일종의 아래에서부터의 선교였다고나 할까.... 그 과정에서 우리나라 서민들을 대부분 구성하는 농민, 상민과 천민들을 직접 마주할 수밖에 없었으며, 특히 열심히 일을 하고 분주히 돌아다니고 노려보고 소리지르고 낮잠 자고 게으르고 의심하고 때로는 심성 고우면서도 강인하며 독특한 존재, 즉 저자의 여행과 선교 과정에서 항상 마주할 수밖에 없었던, '상놈'에게 주목했던 것 같다.
상놈을 감싸고 있는 것은 무기력이 아니라 평온함이었다. 무기력하다고 하면 어떤 것이 조화를 이루고 있지 못한 상태를 떠올리게 되는 반면, 평온함은 완벽한 일치 상태를 가리킨다. 그 고통스러운 자세로 몇 시간 동안 앉아 있을 수 있는 것이 다가 아니었다. 이들은 작열하는 동방의 태양 아래에서 머리를 푹 숙이고 입을 활짝 벌린 채 잠들었다가는, 마치 푹신한 침대에서 밤새 편히 잔 다음 아침에 일어나 목욕까지 끝낸 것처럼 상쾌하게 다시 일어날 수도 있었다. 그것이 바로 그들이 무기력증에 빠진 것이 아니라는 증거였다. 만약 아니라면 아마 벌써 일사병에 걸리고도 남았으리라, 그렇게 상쾌하게 일어나서 다시 담뱃대를 빼 물고 즐긴다는 사실, 바로 그것이 평온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나는 제임스 S 게일 목사의 이 소중한 기록을 읽으면서, 초기 개척 선교인들이 가졌던 그 폭넓고 따스했던 인류애와 자애, 형식적인 율법이나 규율의 속박에서 벗어나서 사람의 내면을 사랑하고 그 사람들이 보다 나은 삶을 살게 해 주기 위하여 초종교적으로 활동한 그 정신에 감동받을 수밖에 없었다. 구더기와 파리, 바퀴벌레와 쥐가 드나드는 하층민들의 토방에서 같이 먹고자며, 고집 센 조랑말에 의지해서 수 천 킬로를 직접 돌아다니고,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을 설득해서 여행과 선교를 이룩 해내고야 마는 사명감에 탄복하였다. 나는 비록 신실한 종교인은 아니지만, 21세기의 여러 가지 전 세계 종교인들이 보여주고 있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과는 전혀 다른, 마치 알 수 없는 어느 행성에서 마법처럼 나타나, 각종 고관대작들과 양반들에게 괴롭힘과 수탈을 당하고 혜택 받지 못하는 농민들과 상민, 천민과 노비들에게 보다 나은 삶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글을 가르쳐주고,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설명해주며, 인간은 모두가 동일하다는 것을 일깨워주고, 무속신앙보다 훨씬 합리적이고 풍요한 삶을 누릴 수 있게 해주는 종교가 있다는 것을 설득하는 제임스 S 게일 목사의 모습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떤 사람을 대할 때, 어떤 옷을 입었는가 혹은 얼마나 부자인가로 그를 판단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가끔 아무것도 가진 것 없고, 아무 옷이나 입은 사람의 눈이 우리의 영혼을 뒤흔들고, 그 주름진 얼굴이 눈물을 흘리게 한다. 그것이 의심의 눈이든 믿음의 눈이든 간에, 세상을 자신의 좁은 창으로만 바라보고 살아온 약한 영혼들은 미움과 냉정으로 가득 차 무쇠같이 단단한 진짜 세상을 만나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너나 할 것 없이, 서로 핵무기를 수천 개씩 보유하고 서로를 집어삼키기 위해서 으르렁거리는 부조리한 시대에, 그 어느 나라, 어느 종교인이든, 우리나라 개화기 선교사들의 마음과 같다면 그 어찌 우울하다고만 할 수 있겠는가. 이 보석 같은 책을 접하면서, 나는 참된 종교인이 우리나라에서 행한 선한 영향력이 얼마나 위대하고 소중했던 것인지 다시 한번 곱씹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던 것이다.
이사벨라 버드 비숍의 책이 고요한 아침의 나라를 알고 싶어 하는 오리엔탈리즘의 선구자적인 역할을 한 광범위한 논문이라고 한다면, 제임스 S 게일 목사의 책은 어디까지나 사람을 중심으로 한 인간애와 선교의 사명이 녹아든 생생한 체험담이자 회고록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바츨라프 세로셰프스키의 이 책은 폴란드 출신의 작가이자 정치인이자 민속학자의 시선으로 관찰한 동방의 미지의 나라에 대한 작가적 관찰과 학자적 탐험기라고 할 수 있다. 앞서 설명한 두 권의 책이 어머니의 시선과 아버지의 시선 같은 느낌을 준다면, 이 책은 이미 러시아와 중국, 일본 등에서 여러 민족을 공부하고 책을 쓴 노련한 작가의, 쇄락해가는 옛 조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최대한 객관적이고 상세하게 분석하려는 의지가 돋보이는, 마치 진료실의 의사 같은 느낌을 준다.
1850년대 당시 러시아 제국 아래에 있었던 폴란드 태생의 작가는, 러시아 황제에 대항하는 사회주의 노동연맹에서 활동하여 꽤 오랜 기간 동안 유배를 가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몽고 야쿠트 족에 대한 연구부터 시작하여, 타민족에 대한 민속학자로서의 면모를 갖추어나가게 된다. 이후 중국과 일본과 한국을 오가면서 아시아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게 되고, 1903년 한국에 머물면서 체험한 내용을 책으로 펴내게 된다. 그가 한국에 머문 시간은 약 한 달 정도밖에 되지 않아서 군데군데 정보의 오류가 있기는 하지만, 이미 폴란드 지역에서는 유명한 작가가 되어있던 저자의 관찰력과 필력은 위에서 언급한 두 권의 책보다도 더 상세하고 예리한 부분이 많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어느 주막에서건 마주치게 마련인 식사를 묘사해보련다. 부엌에서 커다란 소음을 내기 시작한 지 반 시간쯤 지나면, 어린 아이나 남자 주인이 직접 작은 쟁반상을 내오는데, 크기와 모양은 일본 것과 아주 흡사하다. 이럴 경우에 여자는 절대로 상을 내오지 않는다. 그 위에는 자극적인 고추 소스가 잔뜩 뿌려진 발효된 채소가 종류마다 따로따로 도자기나 목기 그릇, 접시 등에 가득 담겨 빽빽이 놓여 있다. 김치, 절인 생선조각, 새우젓 한 줌, 그리고 조개와 버섯 종류도 있다. 증기로 쪄낸 둥그렇고 물기 없는 흰쌀밥이 매 끼의 핵심인데, 거기에 소금은 넣지 않고 이따금 작고 맛있는 갈색 콩을 섞기도 한다.
한국인 부모가 다 자란 딸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대해서는 정말 할 말이 없는 것이, 도무지 밭이나 거리에서 잠깐 스쳐간 것 외에는 열 살 이상 된 딸이 부모와 함께 있는 것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집안에서도 딸들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곤 한다. 갑작스레 옷을 여미고는 안채로 뛰어들거나, 장옷 주름 아래로 잽싸게 얼굴을 감추면서 말이다. 언젠가 부자의 자택을 돌아보는 자리에서였는데, 집주인은 우리를 안마당으로 안내하기에 앞서 하인을 먼저 들여보내 여자들로 하여금 자리를 피하게끔 사전 조치를 취한 적도 있다. 여인들이 기거하는 안채에 이러르보니 땅바닥에는 수예품, 의자, 그 외 잡다한 물건들이 널려 있었고, 그것으로 미루어 그들이 급하게 자리를 피한 것이 분명했다.
그의 필체는 장황하지 않고 차분하며 기복 없이 여유롭게 흘러간다. 풍경이나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도 마치 다큐멘터리 카메라가 슬로모션으로 이동하면서 패이드 아웃하는 느낌을 준다. 최대한 개인의 감정을 배제하고 낯선 외국인이 새로운 땅에 와서 보이는 것들에 대해서 가감 없이 솔직하게, 그리고 최대한 건조하면서도 간결하게 묘사한다.
나는 메모를 마친다음 깨끗한 바닥에 깔린 여행용 담요 위에 만족스럽게 몸을 뉘었다. 바닥 아래로 연기의 이동에 따라 구들이 따뜻해져 있었다. 뜰로부터 문풍지를 통해 숲을 돌아다니는 바람소리와 불어난 급류의 물소리, 돌다리를 두드리는 가을 폭우 소리가 들려왔다. 이 계절이면 산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소리들이다.
하지만, 당시 19세기 말 제국주의 열강들의 팽창 정책에 편승한 아시아 여행기가 줄줄이 쏟아져 나오고 서양인의 위치에서 묘사하는 한국의 모습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미개하고 덜 문명화된 원시인에 가까운 모습이었을 테니, 책을 읽는 독자들은 아마도 작가의 편향된 시선과 고정관념에 불편해하는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도 그것은 사실이었고 우리나라가 발전하기 위한 진통이었다. 러시아 황제의 독재에 항거하고 사회주의 체제에 심취해 있던 저자는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산천과는 반대로 그 속에서 고통받으면서도 열심히 생을 일구어가는 농민들과 상민, 천민들의 모습을 보면서 비하나 조롱보다는 어떻게든 상황을 돌파하고 개혁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산간지역의 특색에 맞는 독특한 씨앗의 품종을 꼼꼼히 잘 선별해서 재배했으며, 새로운 품종의 옥수수, 완두콩, 채소를 개발해냈고, 그때까지 잘 알려져 있지 않던 보리, 귀리, 밀 등 북부지방 곡물을 도처에 보급했다. 그로 인해 혹독한 한국에서의 일반적인 농작 고도 한계선과 쌀의 성장 한계선은 천혜를 입은 땅인 일본에서보다 훨씬 높아지게 되었다. 이는 인간이 극복하지 못할 장벽이란 없다는 것을 증명해준다. 다만 이처럼 타협하지 않고 바람과 추위, 눈보라를 굴복시킨 끈기와 불굴의 용기를 지닌 한국인들이 왜 관리들의 횡포와는 맞서 싸우지 않는지가 이상할 따름이다.
이상 3명의 전설적인 탐험가들의 희생적인 노력과 기록에 의해서, 현시대를 사는 내가 100년을 넘긴 시간을 가늠해보고, 우리 선조들이 살았던 그 비극적인 19세기 말 조선의 그 선명한 이미지를 머릿속에 그릴 수 있게 해 준 것에 매우 감사한 마음뿐이다. 각각의 작품이 갖는 역사적 무게와 가치 이외에도, 당시 외국인의 시각에서는 매우 신기해 보였을 우리나라의 특징들이 각 작품들마다 자주 겹치는 부분들이 있어서 몇 가지만 적어보자면 아래와 같다.
1. 서울 한 복판에서도 쓰레기와 오물이 넘쳐나며 관개시설이 미비하다
2. 빨리빨리를 외치면서도 막상 행동은 매우 느리고 게으르다.
3. 이동에는 무조건 조랑말이 사용된다.
4. 시골 깊숙한 산천의 풍경이 상당히 아름답다
5. 양반과 관리들은 매우 부패해있다.
6. 방이 후라이팬처럼 뜨거워서 잠을 잘 수 없다.
7. 호랑이가 자주 출몰하여 아무리 방이 뜨거워도 문을 닫고 자야 한다.
8. 상민이나 농민들이 매우 지저분한 것에 비해서, 비현실적으로 양반들의 옷은 깨끗하다.
9. 일본인들이 자리 잡은 곳은 잘 정비되어 관개시설이 갖추어져 있고, 위생상태가 양호하다.
10. 여성들은 여간해서 얼굴을 보기가 힘들며, 삶이 비참할 정도로 구속되어 있다.
11. 색안경(지금의 썬글라스)이 나름대로 유통되고 있었다.
12. 서민들은 양반들에 대해서 매우 적대적이었으나, 왕에 대해서는 충성심이 대단했다.
13. 돈에 대한 관념이 부족하여, 돈 대신 믿음과 신뢰를 얻어야 도움을 얻기가 편하다.
14. 붉은 고추가 많이 사용되고 있었다.
15. 장례문화에 영향을 많이 받아, 상중에는 여러 행동제약이 있다.
16. 서양인에 대해서 매우 적대적이고, 사람이 아닌 귀신이나 요물로 생각한다.
17. 시골 주막이나 일반 서민의 사랑방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지저분하고 불결하다.
18. 지구가 평평하고 하늘이 둥글다고 생각한다.
구한말, 외국인이 쓴 한국기행문은 생각보다 많이 있다. 이 3권은 그 중에 일부이다. 그것도 페이지가 많고 전문데이터들이 섞여 있어서 일반인의 입장으로 읽기가 벅찰정도였다. 하지만, 이 시대의 이러한 책들을 읽다보면 우리나라 역사와 당시의 시대상을 아주 정확하게 가늠해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공통적으로 언급하는 것들이 역사적인 사실들과 서로 크로스오버되어 정확히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일부 다분히 서구인의 우월적 시각과 비극적 한국의 운명을 개탄하는 정복자적 입장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지금 우리가 이렇게 과거 정말로 존재했던 모습을 기억하고, 역사의 진실한 시간들을 올바르게 마주하여 보다 나은 나라로 성장하려하고 하는 노력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러한 사람들이 그 시대를 목격하고, 관찰하고, 분석하고 기록했기 때문이리라.
책의 힘이란 바로 이러한 것이다. 훌륭한 책은 발로 쓰인다는 말이 있다. 두 발로 직접 삶의 생생한 현장으로 파고들어가 기록한 노력을 그 무엇이 따라올 수 있을까. 이렇게 사람들의 일상을 직접 체험하고 관찰하고 그리고 묘사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인문학이 아닐까. 개화기 혼란스러웠던 상황과, 조선의 척박한 여행환경, 동학농민운동, 청일전쟁, 일본의 민비시해와 식민지배까지 겹쳤던 것을 감안한다면 이들의 우리나라 탐험은 가히 목숨을 내놓은 흔적이라고 봐야 한다. 온갖 역경을 무릅쓰고 우리 선조들의 생생한 기록을 남겨준 3명의 위인들에게 깊은 존경의 마음을 표하며 글을 마친다.
덧붙임.
2022년 1월 현재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 [코레야 1903년 가을] 두 권의 책은 절판되어 새책 구입이 불가능하다. 국공립 도서관 등에서 찾아 읽어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