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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back Jan 02. 2022

남과 비교하는 인생

  우리는 왜 아직도 남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살고싶어할까. 억울함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 나만 못난 것일지도 모른다는 공포심? 수백 년간 우리 민족의 DNA에 깊숙하게 박힌 노예근성의 한스러움을 털어버리기 위해서 과연 우리는 몸부림치고는 있는 것일까. 포악한 양반 관리들이나 마을 군수에게 수탈을 당하더라도 다른 사람보다 덜 괴롭힘을 당했으면 그나마 나은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억울하다는 의식구조 때문일까. 아니면, 혈연 지역 학연 등이 맞물려 돌아가는 전통적인 성리학 근본의 '얽혀 살기' 문화 때문에 우리 자신을 타인과 분리시키기 어려웠던 오래된 관습 때문일까. 우리는 왜 남과 비교하는 버릇을 아직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코로나 때문인지, 아니면 새로운 정권 때문이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근 3년간 사회적으로 많은 변화들이 일어났다. 사람들은 서로를 격리하기 시작하였고, 스스로를 보호하기 시작하였으며 타인을 불편하게 생각하기 시작하였고 집에서 편하게 앉아서 배달원의 얼굴을 마주하지 않고 음식을 시켜먹는 것에 익숙해지기 시작하였다. 타인의 흔적, 타인의 손때, 타인의 온기, 타인의 숨소리까지 거북한 것이 되었으며 엘리베이터에서 누군가 같이 타기라도 한다면 더욱 마스크를 조여매고 거리를 둔다. 이것이 변화의 시작일까. 우리 민족은 된장찌개에 서로 숟가락을 섞어가면서 서로서로 인심 좋게 얽혀 살았던 민족인데? 옆집의 김치가 떨어지면 이웃에서 인심 좋게 나누어주고 모자란 생필품이 있으면 빌려주던 민족인데? 이렇게 갑자기 한순간에 서로를 독립적으로 생각하고 개별적인 일상들이 전개되기 시작한 것인가? 코로나라는 하나의 사건 때문에? 


  한편 아파트에 대한 과도한 제한 정책은 우리나라 사람들 특유의 - 자기 집에 대한 집착과 공포감, 불안감, 보유 심리를 자극하여 그에 대한 보호본능으로 더욱 집값을 치솟게 만들었고, 젊은 사람들이 집을 구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몰아간다. 우리나라는 수백 수천년간 전 국민이 대부분이 농민이나 노비로 살아왔기 때문에 자기 땅을 소유하지 못한 한이 서려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집이나 땅에 대한 집착이 대단하다. 자동차나 금이나 쌀보다도 집이나 땅이 자신을 지켜주고 보호해준다는 알 수 없는 믿음이 박혀있는 듯하다. 빚을 져서라도 땅과 집을 구입해야 했고, 그러면 그 재산이 폭등하였고 그것이 실제로 자신들의 인생을 지켜주었던 것이다. 독재정권과 부조리한 국가시스템, 각종 부정과 부패가 서민들의 일상을 지켜주지 못하니, 사람들은 각자 자신만의 변치 않는 재산, 영원히 값지고 정착의 안도감을 선사하는 땅과 집에 목숨을 걸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닐까. 그런데, 그러한 땅과 집과 아파트에 대해서 칼을 댄다고 하니, 그것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보호 심리가 발동해서 아마도 부동산 시장이 더욱 견고하게 문을 걸어 잠그고 스스로의 가격을 높인 것이 아닌가. 노무현 정권 때에도 그 좋은 뜻으로 부동산 정책을 실행하였으니, 그 뜻과는 반대로 부동산은 폭등하였고, 이명박근혜 정권 때에는 거꾸로 규제를 풀자 오히려 가격은 내려갔다. 그런데, 똑같이 현 정권에서 부동산 규제를 시작하니, 역시 아니나 다를까 과거 2000년대 초반의 그 부동산 악몽이 다시 되살아난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이것은 악몽이 아닌지도 모른다. 집을 이미 한두 채씩만 보유하고 있던 사람들은 진보건 보수건 간에 치솟은 자기네들의 아파트값 때문에 모두 쌍수를 들어서 미소를 짓고 있으니 말이다. 애꿎은 젊은 청년들만 고달프게 되었다. 덧붙여 이러한 부동산 정책의 과열을 우려하여 현 정권은 재작년부터 금융과 증권에 바람을 불어넣기 시작하였으니 사람들은 규제가 심해지는 부동산을 피해, 증권과 투기판으로도 몰리게 된 것이 아닌가. 게다가 비트코인 열풍까지 엎친데 덮친 격으로 그야말로 이 나라는 전체가 불로소득의 투기판 광풍이 불고 있었던 것이라고 본다. 2020년 1월, 코로나 시작 이후부터 2021년 12월까지, 정확히 만 2년간의 미친 광풍의 역사가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근 2년간의 믿지 못할 투기판의 아비규환으로 인하여 직장인들은 재산과 부에 대한 인식을 바꾸게 된 듯하다. 이제는 직원들이 10년 이상 회사에서 오래 생활하였던 상사와 선배들에 대한 존경심을 갖지 않는다. 불과 3~4년 전 아파트 한 채를 운 좋게 구입하고 비트코인에 소소한 금액을 투자해서 1년간 수억을 벌어들인 사회 초년생은, 20년 이상 회사에 몸 바치고도 집 하나 장만하지 못한 나이 많은 상사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안절부절 진급에 목매지 않고 아등바등 야근하기 위해서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일부이기는 하지만, 머리 좋은 사람들은 스마트폰 터치 몇 번과 마우스 클릭 몇 번 만으로 큰돈을 벌 수 있고, 무주택 청약통장으로 서울 근교 아파트 하나를 분양받는다면 대박이 터지는 것과 마찬가지가 되었다. 이 사회는 오랜 시간 동안 자기 커리어에서 우직하게 실력을 쌓아온 사람들을 우대하지 않는다. 대신 어리건 나이 많건 상관없이, 짧은 시간에 돈을 많이 번 사람들을 주목한다. 인터넷 유튜브에서는 20대에 대학을 자퇴하고 서로 마음이 맞는 몇 명이 모여서 합숙하면서 코인과 주식을 하면서 수십억씩 버는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존경받는다.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돈을 버는 사람이 우상시되고 칭송받는다. 우리는 수십 년간 사회정의를 지키면서 사는 사람들을 바보로 만든 미디어에 지배당하면서 살았고, 비겁하고 간악하게 타인의 재산을 가로채면서 부를 쌓은 사람들을 천재로 만든 미디어에 지배당하면서 살았다. 그러한 환경에서 젊은 사람들이 자기 아버지 시대의 바보들처럼 평생직장을 찾아 전전긍긍하며, 몇십만 원의 연봉 인상을 위해 셀 수 없이 야근해야 하는 짓을 거부하기 시작한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부동산과 코인과 금융의 돈잔치가 다소 그것을 부추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남과 비교하는 문화는 우리 역사의 슬픈 단면이다. 우리는 수백수천 년간 수탈당하고 갈취당하는 인생을 살아온 각각의 DNA가 쌓여서 이 사회의 굳건한 정의를 기대하지 못한 채, 자신이 타인보다 덜 고통스러운 것이 정의라는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살아온 것이 아닌가. 이제 21세기, 2022년이 된 이 시점에서도 타인과 비교하는 문화가 근절되었다고 볼 수 있을까. 


  오랜 시간 동안 회사에 몸 바쳐 온 나보다, 신출내기 신입사원이 돈을 더 많이 벌고 있으면 일이 손에 안 잡힐 것이다.  나보다 힘들게 살았던 가족 형제나 친척이 최근 몇 년간의 변화로 갑자기 부자가 되었다는 소리를 들으면 마음 편하게 잠을 잘 수는 없을 것이다. 학창 시절 빌빌대던 친구 녀석이 코인으로 큰돈을 벌었다던가, 혹은 니보다 좋은 주식 종목을 골라 탔던 친구 녀석이 돈을 많이 벌었다면 그다지 축하해주고 싶은 생각만 드는 것은 아닐 것이다. 평소 학교에서 우리 집 자식을 괴롭히던 아이가 성적이 좋으면 시기 질투가 날 것이고, 학교에서 100점을 못 맞아도 반 전체 아이들의 성적이 형편없다면 안도감이 들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타인과 비교하는 문화 속에서 자라났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직도 만연해있다. 우리는 코로나니 뭐니 해서 선진국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믿고 있고, 이 사회가 점점 변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 의식의 깊고 깊은 곳에 내려진 '비교문화'의 뿌리와 종양은 단시간에 제거되는 것이 아니다. 단지 마스크를 쓰고, 타인과 거리를 두고 있고 핵가족화되고 있으며 개개인의 인권이 성숙하고 있다고 자위하고 있지만, 본질은 그것이 아니다. 온갖 뉴스와 인터넷과 유튜브에서는 타인의 정보를 보여주며,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부추긴다. 끊임없이 돈 많이 번 타인을 보라고 하고, 성형 수술한 미인을 주목하라고 한다. BTS가 국위선양을 하고 한국영화가 오스카에서 대접을 받고, 대통령이 OECD에서 주목을 받아도 우리 문화 자체에 타인과 비교하는 습관이 남아있는 한 선진국이 될 수 없다. 화장실을 고치는 배관공이 의사나 변호사보다 못하다는 비교의식이 남아있는 나라는 선진국이 아니다. 각자의 인격과 모든 개별적 직업이 그 고유성으로 인하여 자체적으로 대우받는 문화. 내 주변 사람이 갑자기 졸부가 되어도 나의 인생은 그것과 상관없이 독립적으로 가치를 갖는 분위기. 행복이라는 것은 나 자신의 상대적 발전과 성취감에서 온다는 확고한 인식이 바로서야 선진국이라 할 수 있다.


  내일, 내가 아는 누군가가 변신을 하건 말건 나의 일상이 흔들림 없이 고유의 가치를 갖는 그러한 삶을 살아야 한다. 결국은 그것이 유일한 정답이다. 쉽지는 않겠지만...


  무작정 돈을 많이 벌고싶어하는 사람들의 수 많은 한숨소리를 들으며, 막연하게 여러 생각이 들었던 잡설을 줄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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