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ilverback Feb 28. 2022

나치의 아이들 / 타냐 크라스냔스키 / 2016

  인류 역사에 있어서 가장 비극적인 대학살극이 일어났던  독일 나치 제국의 시간으로 되돌아가 본다. 그 시기는 일반적으로 1933~1945 년으로 정의할 수 있으며, 히틀러가 정권을 잡고 유대인을 공식적으로 탄압하면서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시기이다. 나치는 스스로 그 기간을 과거 신성로마제국, 그리고 프로이센 제국에 이어 제3제국(Drittes Reich, The Third Reich)이라 일컬으며 히틀러를 우상으로 하는 세계 점령의 망상에 몰두하고 있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이 비극적인 역사를, 약간 다른 시각에서 들여다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나치 전범들의 가족과 그 자녀들에 포커스를 맞춘다. 왜냐하면, 그 역사적인 범죄는 불과 지금으로부터 70여년 전에 일어난 일이고, 전범들의 혈통을 물려받은 자녀들이 아직도 일부 생존해있기 때문이다. 그 작가는 그러한 죄악의 유산과 시간의 연결고리 속에서 역사를 재조명하고 싶어 하는 듯했다.


  이 책의 작가 타냐 크라스냔스키는 독일인 어머니와, 프랑스계 러시아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고 독일과 뉴욕, 런던을 오가며 생활하는 프랑스의 여성 변호사이다. 그녀의 출신은 서방세계의 여러 문화를 거치면서 다양한 시각을 갖게 해 주었다는 것을 가늠하게한다. 특히 독일이라는 출신배경의 영향력은 그녀에게 절대적이었으며, 오랫동안 공부해오던 형법과 감옥에 대한 연구를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나치에 대한 관심을 돌렸으리라 짐작한다.


타냐 크라스냔스키 (Tania Cras­ni­an­s­ki)


  작가는 책의 서두에서 범죄 당사자의 후손들에게 개인적인 판단을 내리지 않으려 했으며, 자신들이 저지르지 않은 일에 책임이 있다고 간주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녀가 이러한 글을 쓰는 이유는 그녀 본인의 태생적 특이성과 역사에 대한 관심, 그리고 법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마주하게 되는 인류학적 범죄연구에 대한 본능이었으리라.


  이 책에는 8명의 유명한 나치 전범과 그 가족들이 등장한다. 우리는 그 사람들의 이름만 들어도 그 지위와 역할을 알 수 있으며, 각각의 얼굴들을 떠올릴 수 있다. 온화한 얼굴로 나치 무장친위대 SS의 수장 역할을 하였던 하인리히 히믈러와 그의 딸 구드룬 히믈러. 사치와 향락에 중독된 제국 원수 괴링과 그의 딸 에다 괴링. 광신적 나치즘의 대변자이며 히틀러의 후계를 자청했던 루돌프 헤스와 그의 아들 뤼디거 헤스. 크라쿠프 게토의 총책임자이자, 폴란드의 왕을 자처하던 한스 프랑크와 그의 아들 니클라스 프랑크. 히틀러의 비서가 되어 나치 2인자의 지위를 획득한 마르틴 보어만과 그의 아들 아돌프 보어만. 아우슈비츠 수용소장이자 유대인 학살의 상징적인 인물로 자리매김한 루돌프 회스와 그의 자녀들. 히틀러의 야심을 건축물로 실현시키려고 노력한 건축가 알베르트 슈페어와 그의 아이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죽음의 천사라고 불리던 의사 요제프 맹겔레와 그의 아들 롤프 맹겔레 까지 여덟 가족의 운명과 비극의 드라마가, 간결하지만 힘 있는 어조를 띤 작가의 노련한 필체로 드라마틱하게 그려진다.


"저기 모퉁이에, 운전사, 멈춰요! 여기에요. 저들이 만든 코르셋은 어찌나 아름다운지! 아, 마지막으로 모피가게만 들렀다 갑시다. 여기서 기다려주세요. 니클라스 너도 여기 있으렴. 곧 올테니."... 어느 날  어머니는 그에게 가장 질 좋은 코르셋을 살 수 있는 곳이 바로 저기, 유대인들이 살고 있는 데라고 말했다... "나의 어머니는 몹시 냉소적이면서도 몸이 허약했다. 그녀는 모피 코트에 미쳐 있었고, 결핍에 쫓겨 캐미솔을 구입하려 SS 호위대를 대동해 벤츠를 타고 게토로 떠나곤 했다. 확실히 그곳의 유대인들은 캐미솔을 만드는 솜씨가 뛰어났다. 어머니는 그들이 죽게 될 거라고 비웃곤 했다."


  작가는 나치의 수장들이 사회적이고 공적인 모습으로 보이는 형태가 아닌, 가족 내에서 은밀하고 사적으로 보이는 모습을 아주 탄탄한 자료들을 동원해서 묘사한다. 각각의 등장인물들 간의 사건들은 모두 객관적 고증과 정확한 사료에 기인한 서술로 표현된다. 하지만 주목해야할 것은, 한 명의 범죄자가 국가와 민족 앞에서 어떠한 임무를 수행하려고 하는 모습과, 가족과 자식들 앞에서 다정다감하고 가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모습 사이에는 형언할 수 없는 이질감과 어색함이 개입한다는 사실이다. 작가는 그 거리에 대한 의문을 품은 듯하다. 수백만 명을 학살하면서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잔인함과, 집 안에서 바퀴벌레 한 마리도 죽이지 못하는 인자한 아버지의 소심함 사이에 존재하는 이 부조리는 당시 독일 국민 및 유럽 대부분의 나라가 유대인을 바라보던 자세와, 광신적 제국주의의 위험성이 얼마나 만연해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인간 본성의 민낯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각각의 자녀들은 아버지의 사상과 가치관을 물려받고 아직도 그들을 옹호하는 입장을 가지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그 반대편에 서서 잔혹한 학살의 주범이라고 인정하면서 뉘우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종교인이 되어 세계 여러 곳을 다니면서 선교활동을 하는 자녀도 있었고, 나치의 전범들을 후원하는 모임에 가입하는 자녀도 있었으며, 유대인과 결혼하여 과거의 흔적에서 무관심한 모습을 보이려는 자녀도 등장한다. 하지만 그들은 공통적으로 전 인류사에 명백한 기록을 남긴 학살 주범의 자녀로 살아간다는 족쇄에 발이 묶여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끊임없이 고통받는다는 사실을 가지고 있다. 좋건 싫건 그 자녀들의 삶에는 아버지라는 존재의 영향과 역사의 진실이라는 증표가 항상 드리워져있는 것이다. 아마도 작가는 역사의 범죄자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접한 가족과 자녀들의 입장을 통해서,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을 더욱 다양하게 하고, 우리가 평소 몰랐던 그들의 일상과 삶과 생각들의 사소한 부분들의 뉘앙스를 세상에 드러내어서 그 사건과 범죄가 가족과 주변인과 더 나아가서 인류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그것이 우리들의 후세들에게 어떠한 방식으로 전달되고 어떠한 가치로 인식되어야 하는지를 보다 폭넓게 검증하고 싶었으리라.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한 인물과 사건을 바라보는 스케일감을 새롭게 정립할 수 있었다. 이는 일종의 한나 아렌트가 그녀의 저작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다루었던 바로 그 맹목적이고 사유 없음에 대한 공포심 -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에 대한 무심함과, 아무런 죄책감이나 고뇌 없이 집으로 귀가하여 소박한 모습으로 가족과 일상을 공유하던 이중적 삶에 대하여 자아도취의 연극을 보는 듯한 인상과 동일한 것이다. 우리는 역사와 사건을 대할 때 이러한 범죄 가해자의 입장을 다양한 방면에서 바라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치의 전범들은 한결같이 가정적이고 온화하였다. 밖에서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한 모습으로 귀가하여 귀엽고 이쁜 아들딸들을 끌어안고 기도하고 저녁식사를 했을 것이다. 그들은 전쟁이라는 것도, 그리고 학살이라는 것도 어디까지나 개인의 생각과는 전혀 상관없는 공적인 일과 업무의 작은 한 부분이라고 생각하였고, 가정에서는 그야말로 전형적으로 모범적인 가장의 역할을 했기 때문에, 그와 함께 생활한 가족들은 전쟁이 종식되고 그들이 재판을 받고 사형당한다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누군가가 도움을 필요로 할 때, 부모님은 나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단호한 의무가 되도록 만드셨다. 부모님은 내가 부모님, 선생님, 사제님, 그리고 하인들을 포함한 모든 어른의 바람과 명령을 그 자리에서 지체 없이 따라야 하고, 그들이 말하는 것은 언제나 옳기 때문에 어떤 일이 있어도 그런 의무를 회피해서는 안된다고 끊임없이 내게 상기시키셨다."... 영국군의 포로였던 회스는 폴란드 당국으로 넘겨져 1947년 3~4월 동안 폴란드 최고 법정에 출두한다. 모범적인 수감자였다. 그는 또한 모범적인 피의자로 인식되었다. 그는 책임을 회피하는 일 없이 질문에 정확히 대답했는데, 이것은 분명 그가 자신이 저지른 일의 참상이 얼마나 큰 것인지 한 번도 가늠해보지 않았기 때문인듯하다. 그는 오래전부터 인간적인 감정을 느끼기를 포기했다고 말한다.


  작가는 말한다. 괴물보다 무서운 것은 평범한 사람들이고, 침묵을 끊고 역사와 대면해야 한다고.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홀로코스트 현장에 존재해야 했던 수많은 나치의 자녀들의 시선과 입장을 우리는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비록 그 자녀들에게 죄가 없을지라도 또다시 이러한 인류사의 비극을 막기 위해서, 그 범죄의 뿌리와 근원을 관찰하고 그것이 발현하고 영향을 미치는 관계를 다각도로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한 의미에서, 어려운 환경과 따가운 시선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저돌적이고 탄탄한 필력으로 무장한 작품을 만든 작가에게 경의를 표한다. 끝. 



하인리히 히믈러와 구드룬 히믈러


헤르만 괴링과 에다 괴링


루돌프 회스와 그의 가족들


2017년 갈라파고스 출판사 1쇄를 끝으로 절판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625 이야기 / 박완서 / 1992~1995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