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 작가를 단 하나의 문장으로 설명한다면, '현실을 다소 비관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자신의 내면에 탄탄하고 건강한 개인주의를 쌓은 작가'라는 말 보다 더 적절한 표현은 없다고 생각한다. 사실, 작가라면 대부분 그러한 성향을 가지고 있겠지만, 명료하게 하나의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을 만큼 자신의 이미지를 구축한 작가가 흔하지 않은 시대이다. 즉, 지금 MZ세대라 불리는 사람들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요즘에 김영하라는 작가는 하나의 이정표가 되었다. 역사의 격변기를 감내한 20세기 작가들의 시대와는 완전히 구분된, 21세기의 대한민국 작가들을 대표하는 인물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했다.
개인적으로는 김영하 작가의 소설들보다 에세이들을 더 좋아한다. 물론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문학계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문인이고 작품성 있는 소설도 많이 발표하였지만, 그가 갑자기 유명해졌던 몇몇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발휘한 그 사람 특유의 차분하고도 센스 있는 언변(言辯)은, 자칫 경박하고 가벼워지기 쉬운 TV예능이라는 인식을 완전히 뒤바꾸어 놓았을 정도로 영향력이 컸다. 쉽게 웃고 즐긴 후 쓰레기통으로 집어던져야 할 듯한 TV 예능 프로그램에 무심한 표정의 얼굴로 등장하여, 별다른 몸짓이나 거추장스러운 행동 없이 언어를 자연스럽게 형상화(形象化) 하는데 완벽히 성공한다. 시청자들은 공감했고,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지만 쉽게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웠던 정서와 가치관의 부분 부분들을, 그는 정확하고 의미 있는 문장들로 알기 쉽게 번역해 주었던 것이다. 그의 에세이에는 그러한 촌철살인의 보석 같은 언어들이 알알이 박혀있다.
보다, 읽다, 말하다 로 구분된 3권의 에세이 집은 2014~2015년에 출간되었다. '보다'의 경우 작가의 인생의 단면을 스쳐간 여러 가지 일화를 등장시켜, 인간내면과 삶의 방식, 사회현상 전반을 아우르는 다양한 시선과 통찰을 선보인다. 작가 자신이 직접 '보고 느낀 것들'을 바탕으로 하여 한 사람의 1인분 인생으로 이 각박한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면서 살아야 하는지, 이전과는 다른 21세기에 어떠한 가치관이 요구되는지, 치밀하고 논리적이면서도 아주 예리한 필치로 정확한 단어들을 선택하여 우리에게 제시한다. '읽다'의 경우, 일종의 김영하 작가만의 독서론이다. 자신을 작가로 만든 여러 가지 독서의 경험과 고전 명작들의 특징과 힘을 기존과는 완전히 다른 시선으로 설명한다. 소설은 왜 존재하는가? 소설은 왜 쓰는가? 소설은 왜 읽는가? 에 대해서 다양하고 재미있는 기대를 하면서 읽을 수 있다. 인간의 삶을 다루는 소설이라는 것과, 인문학이 인간에게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 각자가 새롭게 정의 내릴 수 있는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말하다'의 경우 작가가 강연한 내용들과 인터뷰한 내용들을 바탕으로 하여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보다'와 '읽다'에서 나타난 김영하의 여러 면모가 구어체 방식으로 재탄생했다는 느낌도 받았다. 세 권 모두 각기 다른 방향과 시각으로 작가 자신을 표현한 재미난 시도였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화폐경제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교환이 불가능한 것들은 무가치하다고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 그러나 독서는 다르다. 소설을 읽음으로써 우리가 얻은 것은 고유한 헤맴, 유일무이한 감정적 경험이다. 이것은 교환이 불가능하고 그렇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
현대의 기업들은 우리를 소비자라 부른다. 구글 같은 기업은 우리를 빅데이터의 한 점으로 본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몰개성적 존재로 환원되는 것을 거부할 수 있다. 바로 우리 안에 나만의 작은 우주를 건설함으로써 그렇게 할 수 있다. 현실의 우주가 빛나는 별과 행성, 블랙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면, 크레페 케이크를 닮은 우리의 작은 우주는 우리가 읽은 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것들이 조용히 우리 안에서 빛날 때, 우리는 인간을 데이터로 환원하는 세계와 맞설 존엄성과 힘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민족의 격변기 역사들이 점점 우리 일상에서 멀어져 가고, 20세기와는 전혀 다른 질서를 맞이하는 시대에 태어난 세대들이 다시금 주인공이 되어가는 시기이다. 기존과는 다른 언어와 감성으로 나지막하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집단과 군중으로 치부되는 기존의 낡은 가치관을 거부하고, 건강한 개인주의를 바탕으로 한 자기애와 진정 행복한 삶을 추구하라고 가르치는 이 성실하고 유능한 문학 선생님을, 우리들이 학창 시절에 학교에서 만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왜! 우리는 중고등학교 시절 이러한 인문학 선생님을 만나지 못했던 것인가!
저는 인간을 믿는 사람들, 인간을 믿는 휴머니즘 또는 어떤 종교를 믿거나 하는 사람들이 저지르는 수많은 역사의 악행들을 생각해보면 인간에게는 아주 굳건하고 경건한 허무주의가 필요하고, 그런 이들의 가장 좋은 벗은 소설이라고 생각해요. 소설과 함께 세계의 무의미를 견디고 동시에 휴머니즘이나 일본주의나 광신자들이 저지르는 역설적인 독선과 아집 그리고 공격성 이런 것들을 견딜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아직도 사람을 우왕좌왕하게 만드는 낡은 정치체계 속에서 어떻게든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이 시대의 모든 친구들과 후배들과 선배들에게 이 작은 3권의 에세이집을 추천하면서 글을 마친다.
끝.